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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an 24. 2022

패키지도 여행이다_콘야에서 술을 찾아 헤매다

낯선 설렘: 터키

터키의 대표 종교는 이슬람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더라도 국민의 무려 99%가 이슬람이라고 하니, 

정치, 경제, 일상에 이슬람 율법이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부분이,

(물론 모든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바로 술이 아닐까 싶다. 


술에 있어서는 진심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지에서의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한 번은 자신의 인스타에 남겨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할 테니. 


게다가 우리는 주당들이 아닌가! 


첫날부터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술을 마셨던 A와 B. 그리고 나. 

우리의 모습을 몇몇 일행들이 봤는데, 

첫날부터 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안 좋아 보였는지 ㅋ) 

지난밤에 마을의 Bar에서 술을 마셨던 

우리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일행 전부에게 돌았다. 


그런데 분위기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졌다. 


"엥? 술을 팔아요?"

"이슬람 국가라고 해서, 한국에서 싸온 술만 호텔에서 몰래 마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가게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요?"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다들 수학여행에서 담임 몰래 술을 마시려고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처럼,


"오늘 저녁에는 저도 좀 데려가 줘요."

"저도 낄래요."

하면서 우리에게 붙었다. 


술이야 많은 사람들이 시끌거리면서 마시는 것도 맛있고, 

무엇보다 계속 붙어 있을 사람들인데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A와 B. 그리고 나는 오겠다는 사람은 안 막고, 함께 어울렸다. 


그렇게 터키 여행을 하는 내내, 

밤이면 밤마다 술파티를 열렸다. 


다행히 술을 마시지 않는 일행들도, 

(겉으로는) 우리를 좋게 봐줬고, 

다들 에너지가 넘치신다면서 웃어주었다. 


A와 B는 여자의 촉으로, 

저건 비꼬는 거라고 알려주었지만, 

글쎄, 눈치가 없어서 일까, 난 그대로 믿었다. 


아무튼, 

내일 밤마다 숙소에 도착하면 숙소 근처에 Bar나 술을 파는 상점을 미리 알아봤고,  

밤 10시가 넘어가면 일반 상점에서는 (술이든) 냉장고를 걸어 잠그고 술을 팔지 않기에, 

우리는 숙소에서 밤새 마실 술을 사기 위해 미리미리 거리로 나갔다.


저녁에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쇼핑을 하다가도, 숙소로 돌아올 때엔,

다들 가방에 맥주를 가득 사 담아왔다.  


매일 밤, 

오늘은 너희 방에서, 

오늘은 우리 방에서,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멤버는 날마다 바뀌었지만, 

날마다 꼭 참석하는 고정멤버, 주당들이 생겼다. 


대략 5명이었는데, 

매일 밤마다 붙어있다 보니, 

남들보다 더 친해졌고, 

서로 더 챙기게 되고,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진을 찍어주고, 보내주곤 했다. 


쇼핑을 하다가도, 

자기 꺼 사다가, 하나 더 사기도 하고, 

특이한 길거리 음식을 발견하면, 사 와서 밤에 안주로 풀고 그랬다. 


그런 주당들에게.

콘야는 좀 특별한 추억을 선물했다. 


터키의 수도 콘야라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저물었다. 

밤 10시가 되기 전에 술을 사두려고 했는데, 

숙소 근처의 가게에서 술을 팔지 않았다.


어? 정말?


혹시나 싶어서 몇 군데를 더 돌아다녀봤는데, 

역시나 술 자체가 진열대에 없었다. 


술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주당들은 금단현상이 일어났다. 

웬만하면 포기하고 오늘은 건너뛰겠지만, 

우리 주당들은 매일 술을 마시겠다는 기록이라도 세울 것처럼, 

오늘 꼭 술을 마시겠다는 결의를 하고, 밤거리로 나왔다. 


9시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미 깜깜한 거리를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녔다. 


숙소를 중심으로 뺑뺑 돌면서 점점 반경을 넓혀갔다. 

(가이드가 나중에 알고 기겁을 했던.... 

그러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정말 엄청 민폐가 되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권하지 않는....

그럼에도 우리 주당들은 그날은 무엇에 씐 것처럼 술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아, 여기는 정말 술이 없나 보다."

"이제야 정말 이슬람 국가에 와있는 것 같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하긴. 

의외로 그동안 터키에서는 술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관광지만 돌아다녀서이기도 하겠지.

그래서, 

하루 5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울려 퍼지는, 

모스크(Mosque)의 기도소리가 없었다면, 

내가 여행 온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포기하지 마! 우리가 술 없이 이 긴긴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왜 술이 없겠어."

"분명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랬다. ㅡ..ㅡ

그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기어코 하려고 하는 우리 주당들이었다. ㅡ..ㅡ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한참을 뭉쳐서 돌아다니다 보니, 

왠 터키 남자가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능숙한 영어로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물었다. 


그랬다. 

우리는 복장부터 여행객. 

그리고 두리번대면서 단체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표적이 되긴 쉽겠지. 


Bar를 찾는다. 

술을 찾는다. 

짧은 영어로 띄엄띄엄 대답을 하니까. 

터키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경계의 눈빛을 하고, 

터키 남자를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데,

자꾸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계속 이렇게 따라가도 돼?"

"뭐하는 얘야? 술집 삐끼야?"

"우리가 숫자가 많으니까 싸우면 우리가 이겨."

"여차하면 튀는 거야 알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터키 남자가 다 왔다면서, 어느 건물의 철문 앞에 섰다. 


뭐야 여긴?

간판도 없고, 

불빛도 없는.

낯선 건물 앞에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터키 남자는 다시 또 웃으면서 굳게 닫힌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쿵짝쿵짝 음악소리. 

우리 주당들은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그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1층과 2층이 뻥 뚫린 넓은 홀이 나오고,

그 홀의 끝에는 조그만 무대가 있고, 그 무대 위에서 밴드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무대 앞에는 많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수만큼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그렇지!

다 이렇게 숨어서 술을 마신다니까. 


둘러보니, 외국인, 관광객은 우리 주당들 뿐이었다. 

모두 현지인들로 보였고, 우리는 로컬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규모가 크긴 했고, 술값이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싸긴 했지만, 

분위기는 꽤 건전(?)했다. 


무대 위 가수는, 

외국인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지, 

손님들에게 멀리 한국에서 친구들이 찾아왔다면서 대대적인 건배를 외치기도 했다. 

(아.... 콕 집어 왜 한국을 밝히는지, 다들 테이블 밑으로 숨고 싶어 했다.)  


아무튼, 즐거웠다. 

끊기지 않고 술을 마셨다는(?) 목표도 달성했고, 

패키지라는 다소 답답한 룰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도 느꼈고. 

제대로 된 일탈을 해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이유는 담배연기 때문.

다들 테이블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비흡연자들이 버티기엔 쉽지 않았다. 


우리 주당들은 한 명 빼고는 다 비흡연자들이어서,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화생방에서 탈출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런데.

숙소에 들어오니, 

우리를 뺀 거의 모든 일행들이 1층 식당에 모여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니,

앗! 이게 뭔가? 

소주? 우리나라 소주?


콘야는 숙소 근처에 술을 파는 곳이 없어서 

그 사실을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가이드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소주 한 박스를 챙겨두었다가, 

이쯤에서 푼다는 사실을 몰랐었던 것이다. 


패키지의 비공식 특별 서비스랄까?

아, 미리 좀 말해주던지.


우리 주당들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몇몇은 기가 빠졌는지, 아니면 찌든 담배냄새가 싫었는지 씻고 잔다고 했고, 

나를 포함함 A와 B는 한 잔 더 하겠다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날.

가이드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연애(이별) 이야기부터,

왜 가이드가 되었는지, 가이드가 좋은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난 잠시지만, 

가이드의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술자리는,

그날도,

새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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