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의 고비는 있었지만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해가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서 보였다.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그런데 머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옛날에 유행하던 일명 ‘바람머리’ 같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마치 반사적으로 아이들 무리 속에 숨어 일명 고바위길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아버지가 창피해서. 또 하나는 무서워서.
무서운 이유는 커가면서 엄마한테서만 들은 아버지라는 사람의 ‘정의’가 아주 못나고 형편없고 책임감 없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자마자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러자 엄마의 얼굴에서는 분노로 가득 찼다. 그 상황에서 나는 참 묘하게도 뿌듯함을 느꼈다. 마치 엄마에게 ‘나 잘했죠?’라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며칠이 지나서 또 아버지가 정문 근처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그런데 아뿔싸! 이날은 머리에 가발도 안 쓰고 오셨다. 말 그대로 '광'이 났다.
저 반짝이는 머리를 보면서 햇빛이 뜨거운데 머리가 따갑지는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냅다 뛰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떨리면서도 용기를 낸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지 않았다. 반갑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을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화목한 가정을 망쳐버린 인간. 그 사람이 아버지니까.
그 일 이후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몇 년 뒤에 오셨는데 이야기 좀 더 뒷부분에서 후술 하겠다)
저녁에 잠이 들기 전이면 꼭 이 일이 생각났다. 그때 만약 내가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한 번은 그 생각에 골똘히 잠긴 적이 있었는데 뭔가 쾅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사자의 포효였다. 사자 얼굴 그 자체인 외할아버지가 잠긴 문을 발로 꽝꽝 차대며 당장 문을 열라고 포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순간 무서워서 문을 열어주면 안 되냐고 하자 할머니와 엄마는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한참을 공포로 떨고 있다가 잠잠해져서 방문을 열고 문을 보니 외할아버지의 실루엣이 없었다.
‘아, 가셨구나!’
창문을 열어서 외할아버지가 나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뒷모습에서도 분노가 느껴졌다. 그 분노는 꺼지지 않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활활 타올라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나중에 커서 안 사실은 외할아버지는 도박에 빠진 호구(?) 셨는데 돈이 모자라자 외할머니에게서 돈을 뜯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외할아버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외할머니에게 하고 말았다. 그 일 이후로 저녁이면 문을 잠그기 시작했고 사자의 포효로 인한 공포가 쭈-욱 이어져 온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어리기도 했고 시야도 생각도 넓지 않아서 오로지 ‘화목한 가정’, ‘만나고 싶지 않은 아버지’ 이렇게 두 개만 생각했었다.
커서 생각해 보니 엄마는 도박에 빠져 가족을 괴롭게 하는 외할아버지와 무책임하고 철없고 혼자밖에 모르는 아버지, 아직 어리기만 한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https://youtu.be/hmOOkmynj4A?si=tX5QvPDuF4ZyLp6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