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동갑내기 사촌네 집에서 지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같은 집에 살던 친척들은 반여동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 두 번 버스를 타야 했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버스가 늦게 오고 차가 막혀서 학교에 지각을 한 적이 있었다.
여태껏 지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교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다독여가며 교실에 들어섰다.
“지각한 사람들은 저기로 가!”
담임 선생님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검지 손가락으로 교실 뒤편을 가리키며 말하셨다.
나는 그 와중에 나 말고도 지각을 한 친구들이 있음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고, 두려움이 줄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한 명씩 다가가 왜 늦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렇게 내 차례가 왔다.
“왜 늦었어?”
“… 버스가 늦게 와서요.”
“참 나~ 그것도 변명이니? 버스를 일찍 탔어야지!”
“일찍 갔는데 버스가 제시간에…”
담임 선생님의 눈빛을 보자 나는 더 이상 말하기를 그만뒀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철벽의 눈빛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내 딴에는 억울하고 서러워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가 아파서 반여동에서 지내고 있어요.’
‘저는 엄마 아빠도 없이 친척네 집에서 등교합니다.’
라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누가 좀 내 마음을, 내 사연을 알아달라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힘없이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해야지.‘
속으로 다짐하면서 삐져나오려고 하는 눈물을 삼키고 버스를 탔다. 반여동으로 가는 길을 보면서 내일은 어떻게 버틸까 생각하며 가니 금세 친척집에 도착했다.
사촌들은 학원에 간다고 나 혼자 집에 남겨져 있거나 큰 숙모와 단 둘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때때로 큰 숙모에게 크게 혼난 적이 꽤 있었다. 그러면서 뒤에 하는 말들은 잊히지 않았다.
“너희 엄마가 지금 이렇게 아프고 고생하는데 네가 이렇게 해서 되겠니? 이제 철 좀 들어야지.”
혼난 것보다 엄마가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가 더 슬프고 괴로웠다. 애써 외면하려는 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 번은 유독 크게 혼나 눈물 콧물을 다 뺀날. 저녁에 큰삼촌도 오셔서 가족들이 다 같이 식사를 했다.
밥을 다 먹고 오순도순 티비를 보면서 얘기를 하다가 큰삼촌과 사촌들이 장난을 치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다. 내게 있어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마치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아픈데… 사촌들은 같이 살 때나 지금처럼 따로 살 때나 여전히 오순도순 행복하구나.‘
‘엄마! 이제 말썽 안 부릴게요. 얼른 나아서 오세요.‘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면서 잠에 들었다.
https://youtu.be/LUD1zbivuBs?si=Debs2fsAAGf4gT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