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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Jun 09. 2024

알고 보니 나는 몽상가



 공상


 -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상상함.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그리는 일.


 - 상습적으로 공상에 빠지거나, 공상과 현실의 구별을 못하는 것은 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실 생활에 대한 적응에 장애가 생기고, 현실에 대한 관심도 차차 잃게 되는데, 이런 사람을 ‘몽상가’라고 한다.



 몽상가


 - 쓸데없이 상념을 하는 사람,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하는 사람.



 나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중에 하나로 공상을 대표로 둘 수 있다. 내가 나를 되돌아보았을 때 공상의 시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6살인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엄마와 단 둘이 살 때였다. 홀로 나를 키우기 위해 항상 밖으로 나가시면 나는 혼자 집에 남아 티비로 나오는 만화를 즐겨 보곤 했다.


 그 당시에 나오는 만화영화는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본인의 능력, 재능과 주변에 인물들의 도움으로 극복해 나가는 게 대부분의 스토리였다. 만화 주제가 또한 그러한 내용의 가사들이었다. 그런 주인공을 보며 나를 주인공에 대입, 이입해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고는 만화가 끝나고 현실에 돌아와서도 나는 공상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도 불쌍하거나 슬픈 아이가 아니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가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하게 주눅이 들곤 했다. 잘못을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부모 가정에 가난이 나를 짓눌렀다. 주변에 아이들과 다른 내가 무섭고 싫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지냈다. 그런 무서운 현실에 직시할 수 없어 공상으로 도망을 간다. 두 분이 재혼을 해서 가난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이성에 대한 공상에 자주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정말 드라마나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한껏 외모를 꾸미며 공상에 빠지는 시기를 보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기적을 바랐고 기적 같은 순간이 오는 공상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재발한 엄마의 그 당시 불치병이 기적적으로 다시 깔끔히 낫고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서로 웃으며 끝나는 그런 해피엔딩의 공상을…


 역시 공상은 공상인 걸까. 어린 시절의 공상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 허무맹랑한 공상이 이루어 질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아파했다. 나의 공상은 그냥 하는 공상이 아니라 바람과 욕구를 담은 공상이었다.


 나는 공상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현실과 공상에서 현실보다는 공상에 많이 치우쳐 있었기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외면하거나 도망치는 내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기에 싫었다. 그렇다고 아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공상은 지옥 같은, 시궁창 같은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주고 버틸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상을 자주 한다. 여전히 바람 섞인 공상 말이다. 내가 그리는 인생,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상상하며 이 현실을 버티고 버틴다.


 꿈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그 이외에 공상은 현실을 살아가기에 너무나 큰 좌절과 실망을 느낀다. 현실을 직시할 때는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상상한다.


 몽상가의 또 다른 뜻은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는 자’이다. 위에서 설명한 몽상가에서 꿈을 꾸는 자라는 뜻의  몽상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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