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희 Sep 28. 2024

내가 사랑한 그림책 eric) 인간에 대한 예의

 금요일, 방과 후 수업을 맡은 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윤(가명)이가 갑자기 팔로 몸을 감싸고 몸을 떤다는 말을 전했다. 얼굴까지 창백해져서 무슨 일인지 물어도 도통 대답을 안 한다고. 따로 불러 이유를 물어도 답을 않던 아이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초등학교 때 남자애 몇몇이 사내 녀석들 몇몇이 자기를 괴롭히던 장면이 가끔 떠올라 몸이 떨리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다고. 당시 매일 학교 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덧붙이는 기윤이 사연은 이미 기윤이 어머니께 들어 알고 있었다. 기윤이는 특수교육 대상자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상흔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괴롭힘이나 왕따에 노출된 죄 없는 아이들은 괴로웠던 장면을 끊임없이 소환하며 오랜 시간 벌을 받는다. 그런 벌은 때로 피해자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평범한 삶의 기회를 박탈하기까지 할 만큼 누군가에겐 치명적이다. 이미 6년 이상 지난 일이 지금까지 기윤이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걸 보며 궁금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왜 이리 잦을까. 세상에서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흔히들 자존감 낮은 아이들이 남을 괴롭힌다고 한다. 하지만 악한 성정은 타고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만한’ 사람에게 늘 무례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남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과시 못해 안달인 부류도 분명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숀 탠의 <eric>은 아름답고 잔잔한 그림과 문장으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지 사색할 기회를 주는 작은 그림책이다. 





Some years age we had a foreign change student come to live with us.

We found it very difficult to pronounce his name correctly, but he didn’t mind.

He told us to just call him ‘Eric’.

몇 년 전 우리는 외국인 교환학생을 받아 함께 살았어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가 아주 어려웠죠.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는 자기를 그냥 ‘에릭’이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생김새부터 남다른 에릭은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애써 정성스레 마련한 방을 마다하고 식료품 저장실에서 공부하고 잠을 자는가 하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것에 관심을 보인다. 


Most of the time Eric seemed more interested in small things he discovered on the ground. 

대부분 에릭은 그가 땅바닥에서 발견한 작은 것들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Nevertheless, none of us could help but be bewildered by the way Eric left our home : a sudden departure early one morning, with little more than a wave and polite goodbye.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누구도 에릭이 우리 집을 떠난 방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죠. 손을 흔들며 공손히 작별인사를 한 게 전부였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던 에릭은 떠난 방식도 희한하기만 하다. 며칠이 지나서야 에릭이 완전히 떠난 걸 파악한 ‘우리’는 에릭에 뭔가 화가 났는지 계속 불편하기만 하다. 에릭이 남긴 ‘이것’을 보기 전까지. ‘이것’은 보는 순간 밀려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질감이 감동은 그림책을 펼쳐보는 이가 ‘온전히’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미리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낯선 이방인의 기이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복하는 문장은 소개하고 싶다. 타인을 바라볼 때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담긴 문장이라 생각한다.


 ‘It must be a cultural thing,’ said Mum. ‘As long as he is happy.’

 ‘문화적인 차이일 뿐이야. 그가 행복해하는 한 말이야.’


 타인이 나와 다를 때 그리고 그 다름에 대해 잘 모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한다. 배타적인 태도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eric>에 등장하는 ‘우리’처럼 타인을 다름을 그저 인정한다면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폭력이 많은 부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금요일 기윤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기윤아, 네 마음에서 너를 괴롭히는 그 애들 흘려보내자.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네가 힘들어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잖아.

반 채워진 똑같은 컵을 앞에 두어도 어떤 사람은 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물이 아직 많다고 여유를 갖는대. 

이미 벌어진 나쁜 일은 우리가 돌이킬 수는 없지만 지금 네 마음을 덜 힘들게 하는 선택은 네가 할 수 있어. 

아픈 과거도 불안한 미래도 생각 말고 딱 오늘 하루치만 행복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기윤이를 다시 방과 후 수업에 들여보내고 생각했다.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싫어질 땐 <eric)의 문장들을 상기하자고.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 The Invisible) 투명인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