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Sep 26. 2023

비행기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띄워주고 가둬야 우리는 책을 읽는다

여태껏 업무나 여행을 갈 때나 비행기를 참 많이 탔다. 어쩌면 남들보다 한참 늦게 20살이 돼서야 생애 첫 비행기를 탔지만, 그 이후 본의 아니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았다. 그게 여행이었든, 업무상 출장이었든 어쨌든 비행기모드를 해 본 기억이 많기에 이는 곧 비행기 안에서 보냈던 물리적인 시간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가수 해시스완의 <Air plane mode>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https://youtu.be/i-9kckr4zqU?si=HD7FiXN9rxELRiS0

 “벚꽃은 잠깐이기에 더 아름답지” “우린 그때 알 수 없는 언어의 영화 자막을 보는 듯했지” 와 같은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별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두 가지, 양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석하기로는 첫 번째, 지금은 전 여자친구와 이별을 한 상태이며,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비행기모드를 함으로써 그녀에게 어떤 피해를 끼친다거나, 신경을 쓰이게 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주지 않고 그렇게라도 곁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미련의 의미다.

두 번째 해석으로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에 대해 궁금해하고, 다시 재회를 꿈꾸지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본인은 상대방이 비행기를 타서 비행기모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연락을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해석이 조금 더 해시스완의 이미지상 맞다고 보인다. 그가 이 가사를 썼지만, 이것이 본인의 얘기를 하는 것인지, 직접 지어낸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와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소름돋을 문해력과 언어적 감각을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

 이 노래와 같이, 우리는 비행기모드를 떠올리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연락이 안 되는 것이다. 연락도 안되고 하늘 위에 있기 때문에 누굴 만날 수도 없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도 없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할 수도 없고, 아무런 취미생활도 할 수 없다. 흡연자라면 담배도 피울 수 없다. 그냥 자리에만 앉아서 최소 10시간 이상 가야만 한다.(미주권이나 중남미의 경우)

 나는 비행기를 탄 순간을  '해변 앞 비치체어에 누워있는 것' 이라고 늘 비유한다.  이코노미석이라면 체어에 그냥 눕지는 못하고 앉아있는 것이겠지. 일관된 배경 앞에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멍 때리거나 옆에 있는 주스나 맥주를 마시거나 낮잠을 자거나, 이게 다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때 책을 읽는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 책을 읽으면 감정이입도 잘 되고, 머릿속에 내용이 더 잘 들어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육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책을 읽음으로써 여유를 찾게 된다. 진정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비행기 안도 똑같다. 사람은 워낙 간사해서 하늘로 띄워주고 가둬둬야 그때서야 책을 손에 든다. 가만히 앉아서 할 게 없기 때문이다. 기내에 나오는 다큐멘터리나, 예능은 재미가 없고, 미리 오프라인으로 다운받은 영상은 몇 번이나 더 돌려봐도 아직 7시간이 남는다. 그때서야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 소홀했던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비행기 안에서는 평소 내가 관심 있고 좋아했던 영화 한 편을 미리 오프라인으로 다운받아 놓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비행시간 동안 영화 한 편을 본 뒤, 밥을 먹고 곧장 책을 읽으면 된다. 조명을 켜면 나에게만 불빛이 들어오고, 온 사방이 조용하기에 책을 읽기 그토록 적합한 환경은 없다.


 두 번째는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적을 내용이 없는데? 너는 브런치 작가니까, 글을 좋아하니까 글을 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정 없다고 하면 아까 좀 전에 다운받았던 영화 한 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그냥 적어보는 것이다.

 영화평론가들은 왜 영화평론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만을 목표로 달려온 사람들일까? 원래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사람들일까? 절대 아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된 글을 하나둘 씩 써내려 갔기에 본인만의 철학과 인사이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20대 때는 보통 출발지 국가에서 기념엽서를 하나 사서, 도착지로 이동하는 도중 그 엽서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 짧은 편지를 써 왔다. 그 짧은 편지들을 실제로 우표를 붙여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고, 엽서자체를 구매할 기회가 없었던 적도 있었기에 요즘은 잘하지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펜을 들고 글을 쓰는 것은 참 의미 있다고 여긴다. 그 글을 읽는 수신자가 없다 해도 상관없다. 독백이어도 된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사실상 내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앞으로 할 수 있는 것, 도착지 국가에 가서 해야 할 일 LIST를 수첩이나 종이에 적어보며 나를 돌보는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본다는 것이 보양식을 먹고, 여행을 가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만큼 나를 철저하게 돌보는 것은 없다. 글을 쓰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뇌에서 훨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또 다른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참 위대하다. <Air plane mode>를 작사한 해시스완도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를 추억하고, 회상할 수 있기에 그런 가사를 직접 쓸 수 있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펜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를 정량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의 삶의 격차가 분명히 생긴다는 것이다. 펜을 들고 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삶을 더 체계적으로, 생산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사실 우리는 기차를 타거나, KTX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탈 때에는 크게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할 뿐이다. 하지만 많은 교통수단 중 유일하게 비행기를 탈 때에만 우리는 매우 설레어한다. 보통은 비행기라고 하면 먼 지역(해외)을 말하는 것이기에 여행의 목적이 크고, 휴식을 하러 간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지구촌 시대, 앞으로 훨씬 더 비행기를 타게 될 기회가 많은 우리는 그 안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스카이다이빙을 하면 보이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