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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는 왜 멕시코에서 배워야 할까?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면, 스페인이 아닌 멕시코로 가라

by 홍그리

멕시코를 처음 소개할 때, 단연 처음 할 수 있는 얘기가 스페인어였다. 멕시코 인구는 1억 3천이 넘는다. 면적은 세계 13위다. GDP는 올해 4월 기준 14위로, 우리나라를 거의 따라잡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멕시코의 이미지와 달리 발전가능성으로 보나, 내수시장으로 보나 정말 거대한 국가는 맞다.

GDP 순위


이 많은 인구와 넓은 면적 속 거대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쓰는 인구와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스페인어 열풍이 불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반이 개설되고, 대학 스페인어학과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강남 스페인어학원은 매월 초 수강대기를 해야 할 정도다.

대한민국 굴지의 많은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로 글로벌화를 언급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이 좁은 땅덩어리 소국 내수시장으로는 매출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20년 전과 달리 내수시장으로만으로는 절대 먹고살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기업의 존폐 여부는 글로벌화로 나아가느냐, 내수시장에 머무르냐에 있다. 그중에 중남미는 아직 온전히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곳이며, 앞으로 정부와의 수교아래 기업의 교류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주재원이나, 업무상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멕시코는 스페인어를 배우기에 어떤 환경일까? 사람들은 항상 이 얘기를 하면 의문을 품는다. 마치 영어를 미국에서 안 배우고 필리핀에서 배우는 게 더 이득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연히 미국이나 영국에서 배우는 게 진짜 원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사실 스페인에서 배우는 게 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먼저 앞서 스페인어를 잠깐 얘기하자면 스페인의 스페인어와, 중남미의 스페인어로 나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단어 사용이나, 문장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사용 측면에서 다른 부분이 많으므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혹은 넷플릭스의 자막을 선택할 때 español castellano, español latino와 같이 두 분류로 나뉜다.

정통스페인어는 단연 스페인에서 배운 espanol castellano이고, 중남미에서 가장 정확한 스페인어라고 얘기할 때 보통 사람들은 콜롬비아 스페인어를 말한다. 콜롬비아 스페인어가 가장 정통 문법과 가까우며, 사투리도 없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2위로는 나는 페루와 멕시코를 꼽고 싶다. 멕시코는 멕시코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가 일부 있다. 모국어가 스페인어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나와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고도 사람들은 내가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배운 한국인이라는 것을 진작에 눈치챈다. 그만큼 멕시코 특유의 억양과 단어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배우는 데 있어 나쁜 환경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꼭 배워야만 한다고 얘기하는 걸까?


첫째로, 친밀감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외향적이며 긍정적이라 새로운 만남에 있어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다가온다.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사람 혹은 스페인어로 말을 걸면 오히려 그것을 존중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가르쳐 주려고 한다. 단, 멕시칸들과 함께 거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가장 잘했다고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은 맨 처음 스페인어를 배울 때 멕시코에서 외국인 기숙사에 간 것이 아니라, 직접 발품을 발아 멕시칸과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다. 이는 스페인어를 빨리 배우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멕시코의 문화, 생활환경에 더 빨리 적응하는 데 한몫했다.

스페인에서는 인종차별도 어느 정도 있고, 동양인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실 언어라는 것이 계속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는 것인데, 현지인 친구 사귀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멕시코는 어학당에서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외향적이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스페인어 초급단계에서는 현지인들과의 대화보다 서로 스페인어 어휘 수준이 비슷한 외국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스페인어 향상에 더 큰 도움이 된다. 현지인은 말이 너무 빠르고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외국인이면 모국어가 스페인어인 사람보다 어떤 부분에서 막히고 힘든지 알기 때문에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

멕시코를 처음 갔을 때 스페인어의 ¡Hola! (올라!)만 알 정도로 완전 기초 수준에서 수업을 들었다. 어학당 수업과 병행한 다른 수업도 있었는데, 실제 국제관계학과 멕시코 현지 대학생 1학년이 듣는 수업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수업의 단 5%만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현지인의 수준에 맞게 교수님은 나를 배려하지 않았고 과제도 멕시칸들과 똑같은 수준의 과제를 부여했다. 학점 또한 공정하게 매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사귄 멕시코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을 할 정도로 평생지기 친구가 됐지만, 그 수업에서 같이 있던 프랑스 외국인 친구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내가 어떤 곳에서 지금 힘들어하는지,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내 스페인어 향상에 1등 공신이기도 하다. 그 친구와 나는 현재 가장 낮은 레벨에서 스페인어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둘째, 스페인어 프로그램이 아주 잘 짜여있다. 멕시코시티나 과달라하라 같은 큰 도시에 가면 대학교에 부설어학당이 있다. 학교와 자매결연이 맺어진 대학교 교환학생의 경우 모두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다. 특히 멕시코시티의 우남대학교는 대한민국의 서울대학교와 같다. 그만큼 수업의 질도 우수하며 시험과 숙제, 프로그램도 많아 외국인이 스페인어를 접하는 데 무리가 없다.

나는 푸에블라라는 도시의 대학교에서 연수를 했는데 시설도 너무 좋고 위험하지도 않았다.

대학교 내 수영장

심지어 스페인어의 교육비용 또한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지불하는 돈에 대비하여 프로그램이 우수하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자매결연 대학교는 국공립이나, 재정상태가 양호한 사립대학교인 것이 특징이므로 수업의 질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에서 1년 유학할 돈으로 장담컨대 멕시코에서는 2년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색다른 경험이다. 처음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왜 스페인을 안 가고 위험한 중남미를 가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역시 경험만이 내 자산이며, 본인이 겪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은 배신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은 단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바로 돈과 경험이다. 멕시코를 간 것은 인생일대의 최고의 선택이었으며,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유럽은 기회가 될 때 나중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20대가 아니라면, 스페인어를 배우고자 멕시코, 중남미에 가지 않는다면 언제 대한민국 반대쪽 이곳에 와보겠는가? 삶에 치여 이 먼 곳을 굳이 올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정해진 지역과 정해진 숙소에서 안전하게, 모든 것이 다 잘 짜여있게 유럽에서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서 편하게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렇게 스페인어를 배웠다면 지금까지 남는 것 하나 없이 매 순간을 후회 속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택시강도를 당하면서 삶에 대한 경의나 소중함, 사람에 대한 경멸, 멕시칸들의 정, 긍정적인 마인드셋, 직접 발품을 찾으며 나 스스로 집을 구하면서 온전히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그 자신감과 확신이 지금 나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다. 다 멕시코가 만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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