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Nov 17. 2023

평가받으며 산다는 것의 의미

타인의 평가에 대하여

가면을 쓴 머리말의 내 모습처럼, 우리는 늘 출근과 동시에 가면을 쓰고 산다. 진짜 내 모습을 숨긴 채 타인의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눈치를 살핀다. 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다 보니 가면을 벗을 수가 없다. 늘 행동을 감시하고 좌우하는 이 많은 관객들의 조용한 권력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를 읽어보기로 했다.

누군가 내게 소개팅을 해준다고 하자.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직업을 물을 것이다. 성격은 어떤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도. 소개팅에 직접 나가서는 내가 잘하는 걸 어필할 할 것이다.

 잡지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사진작가 섭외를 위해 입소문을 거친 유명인 혹은 이력서를 통해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 경력을 보고 경쟁으로 섭외한다. 큰 곳에서 일했다고 하면 능력이 있을 거라 판단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칼럼을 쓸 때도 작가의 글을 읽어보고 어떤 책을 냈는지, 경력을 유심히 살핀다. 세상만사가 똑같다. 이 모든게 명성과 관련되어 있다.

 명성, 평판, 평가. 우리는 유명 셀러브리티를 제외하고이와는 대개 상관없는 동떨어진 삶을 살지만, 내가 속한 조직(가족, 친구회사)에게 늘 이야기되고 평가받는 삶을 산다. 이 책은 단순한 관계에서의 위로, 처세가 아니라 진정한 명성, 평판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거기서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해야 하는지 심오하게 전달한다.평가와 평판에서 늘 시름하는 현대인에게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일깨워준다.

 

 명성을 움직이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트럼프를 보아라. 도널드 트럼프는 유세현장이나 대부분의 자리에 늦게 온다. 본인을 기다리고 원하는 사람들의 관심정도를 파악하고 충성심을 느끼기 위해서다. 이들을 결집해 본인을 모욕하는 집단에게 그 자리에서 몰아세우며 명성을 이용해 비난과 조롱을 한다. 본인만의 위험을 넘나드는 수위 높은 단어로 명성을 지키고 그 물리적 공간, 트럼프의 영역에서 왕으로 군림해 역적들을 쫓아낸다. 특히 트럼프는 명성을 획득하는 방법이 굉장히 이색적인데, 본인은 전형적 사기꾼집단의 정치세력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당당하며표현에 거침이 없다. 막대한 부와 지저분한 사생활을 덮으려 하지 않고 더 드러낸다. 재력을 강조함으로써   ‘나는 정치에 안 나와도 되고 정치를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나도 같은 일반 미국 시민이라는 내집단의 원조를 자처해 시민들의 동질감과 공감을 산다.

 이처럼 명성을 획득하는 법은 각자 다른데,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선량함과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선량함이라는 말은 다소 막연하고 포괄적이라 헷갈 릴 수 있다. 선량함은 곧 신뢰다. 사람과의 신뢰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평판에서 자유로워진다. 사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그 사람이 특정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예측하는 데서 기인한다. 내적으로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고 하면 거기서 오는 긴장과 모순을 우리는 해결해야 하며, 그 자체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성실함, 꾸준함, 도덕성, 진실됨 이 모든 선량함이 곧 평판을 만든다.


 다음은 경쟁력이다. 경쟁력은 남들이 갖지 않은 천부적 재능이나 기술, 월등한 두뇌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사람들이 선량함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경쟁력이 부족하면 나만 불편하면 되지만, 선량함이 부족하면 내 주변이들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둘을 모두 가질 때에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선량함과 경쟁력의 부조화도 있다. 사람은 한 사람의 동기와 능력의 일관성이 의심받을 때 불안을 느낀다. 가령 ’나는 착하고 공부도 잘해‘라고 말은 하고다니는데 거기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이래서 중요한 것이 자기 객관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평가받으며 산다는 것의 정답은 곧 자기객관화된 선한 영향력이라 본다. 누군가를 돕고, 그들의 인생을 보다 행복하게 조금이나마 만들어줄 수있다면 그것이 자연스레 내적동기인 선량함과 경쟁력이 일치하는 길이다. 나의 선한 마음과 내가 가진 능력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알고 이걸로 누군가를 돕는 것.

타인의 평가에서 해방된다.


 사람은 평생 객관적일 수 없다. 평가에서 늘 주관적인 견해와 생각이 개입되며 정치, 경제, 문화 한 사회를 둘러싸는 모든 것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각자 다른 견해 속에 평가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늘 사유하자. 특히 평가하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사유 속에 먼저 내 비판부터 돌아보고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두자.

누군가에게 혹시 평가받는 것이 두려운가?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이 불편한가?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한다. 평가에 잠식되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타인의 평가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관계에서, 평가에서, 평판에서 우리는 100% 자유로울수 없다. 그 둘의 균형을 지키는 삶은 모두가 아는데 실천이 쉽지 않다.

 뮤지컬의 주인공을 보자. 관객에 너무 익숙해져도 그들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그들의 호응이나 평가가 가치없어지고, 관객에만 또 너무 빠져도 나를 잃어간다. 그냥 최대한 자유롭게 타인에게 노출되고 평가받는 삶이가장 이상적이라 하겠다.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 사람은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타인의 평가는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는 모습 사이에서 끊임없이 사유해 간격을 좁히고 자기 객관화를 하자. 그리고 조금씩 내 걸 더 키워나가자. 그걸로 우리는 타인의 평가 이전에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매사를 평가하며 그 평가대로 줏대 있게 인생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게 정답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에서 수능은 딱 5%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