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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Feb 21. 2024

우연히 병원 가니 수술하래

수술 후 느낀 단상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눈이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저번주부터 이는 절정에 다 달았고 시간 내서 꼭 병원을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친구가 갑자기 눈을 왜 그렇게 깜빡이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듣고 당장 그날 병원에 갔다.

정밀검사 끝에 나온 결과는 안구건조가 매우 심각하다는 거였고, 양안의 망막 열공으로 지금 당장 레이저수술을 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의사가 그렇게 말하겠지만 만약 이를 방치하고 계속 놔뒀으면 망막이 찢어져 응급수술을 해야 했을 것이라고한다. 그 수술을 만약 하게 되면,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원래 시력으로 회복할 수 없다고 한다.

망막열공 레이저술은 간단하게 말하면 유리체가 망막의 주변부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젊을 때는 주로 열 명 중 한 명 정도 생긴다. 망막에서 완전히 떨어지면 박리라고 해서 큰 수술이 필요하다. 이 레이저 치료는 레이저를 쏜 부위 주변에 방벽을 만듦으로써 찢어진 부위가 더 이상 확장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러 레이저를 통해 작은 흉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망막이 새살이 돋듯 단단히 유착되도록 하는 것이다. 유착된 부분 밖으로는 더 이상 구멍이 확장되지 않는 원리다. 당일에 레이저술을 하고 집 가는 길, 많은 생각이 든다.

먼저, 늘 ‘나중에’라고 미루던 것을 지금 당장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늘 ‘나중에,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산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과의 여행도 시간이 없고, 친구들 경조사도 시간이 없고,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하지 못한다. 친구들과 “언제 한번 보자” 는 말은 절대 날짜를 정해서 만나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뿐.

친구 말을 듣고 안과에 가서 망정이지, 미루고 미루다 이를 방치했더라면 더 큰 수술을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던 것을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친한 형에게 30대가 어떻게 간 것 같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냥 뒤돌아보니 40대란다. 짧지 않은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는 표현이 맞겠다.

Time flies. 시간은 진짜 날고 있다. 지금 하자.


다음은 고통의 확장은 내면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레이저로 상처를 만들고 더 단단한 방벽을 만드는 이 수술은 마치 고통 속 성숙해지는 인간의 삶과 같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다시 역경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근성과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알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더 깊고 잔잔해진다.

헬스를 봐도 똑같다. 근육에 압력을 가하면 그 근육은 찢어지고 다시 새로운 근육이 자리한다. 그러면서 근육이  더 커지는 원리로 우리는 몸을 만든다. 어쩌면 이망막열공 수술법과 흡사하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이들이 부러운가? 그 화초는 온실에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온실에 있어보지 않은 잡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누군가에게 뿌리를 뽑힐 위험을 처해도 다시 자라지 않나.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공들여 이뤄낸 본인의 목표나 꿈, 오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자격이나 본인의 소중한 흔적들이 멸시받는다.  과거에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에 의해 겉으로 포장된 말로 오염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쉽게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찰나의 허상인지도 모른 채.

더 고통받고, 인내하고, 무언가에 힘써본 사람만 이제 가지게 된다. 돈이든, 권력이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할 만한 것들 모두. 이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효리 국민대 졸업축사를 우연히 봤다. 거기서 기억나는 말이 하나 있다.

"이래라저래라 위하는 척하면서 이용하려는 잡다한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라.

살면서 내가 체득한 것만이 내 것이 된다. 많이 부딪히고 다치고 체득하면서 진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

이 말을 듣고 누군가는 자만 섞인 이기주의라고 힐난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원론적인 해석이다. 지금 이효리가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곡절이 많았던 본인의 경험으로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짜들이 하는 말이다. 내 눈 수술이나, 헬스나, 성공한 사람들의 명언이나 고통 없이 결과가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 모든 만물의 원리가 이런데 왜 우리는 잠깐의 호기심과 욕심 때문에 속고 있는 걸까.

자본주의는 믿을 게 하나 없다. 내 돈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가기 위해 사람들은 그 어떤 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뼈 빠지게 일해서 얻는 노동의 가치를 무시한 채 입에 발린 말로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무수한 사기꾼들의 광고들이 숱하다. 대기업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가게나 카페 차린다는 게자기계발로 추켜세우는 세상이다.

유튜브를 보자. 거기에 퇴사라고 두 글자만 쳐보자. 몇 천 개가 넘는 브이로그가 있다. 본인의 선택을 강요하고 선동하는 건 본인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까, 그걸로 돈을 벌고자 함일까.

이제 우리는 이를 가릴혜안을 가져야 한다. 내 고통과 내 신념이 자리한 정보만 믿고 그것에 올인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의 큰 결심은 절대 잊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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