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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r 26. 2024

한국청년들만 불행한 이유

아니,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

친구가 카카오톡 메신저로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주말 저녁인데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어제는 제천 리조트에 갔다. 또 다른 친구가 묻는다.

“야, 우리 제천까지 놀러 왔는데 이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 하며 맛집을 인터넷으로 고르고 또 골라 김치찜과 송어, 향어 회를 담아와 안동소주와 함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쇼핑도 한번 보자. 저번주 일본을 가 가방을 사는 데 둘중에 고민이 됐다. 어떤 게 어울리냐고 두 제품 다 사진을 찍어 여러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그중 대다수가 남색가방이 이쁘다고 이야기한다. 남색가방을 결국 선택한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난 사실 검은색이 더 이뻤는데•••’

내 주관은 매사의 결정에 있어 대개 개입되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에 매몰된 채 그것이 최선책이라 믿으며 내 선택지는 차선책으로 밀어 넣는다. 전형적인 주객전도다.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사람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왜냐하면 이 물건을 살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에 의해서 내 자아가 통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살 때 (남들이랑 비교했을 때) 최저가에 사면 물건의 구매에 대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갖는다. 전 세계에서 유독 한국인만 그렇다. 여행을 가도 여행에 대한 기쁨보다는,

‘비행기 왕복티켓을 팔십만 원에 끊었다!’ ‘명품가방을 남들보다 백만 원 싸게 구매했다!‘ 가 곧 본인의 가장 큰 자랑이며 뿌듯함이다. 실제로 최저가를 알아보고, 그곳에 가는 데의 본인의 노력이나 시간의 매몰비용은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경제적 이익보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한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청년들은 남들에게서 오는 인정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최저가로샀으면 남들이 “너무 부럽다, 어디서 산 거야?”하며 부러워하고, 한국에 없는 제품을 샀으면 남들에게서 인정을 받아 우쭐해지거든.

서울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더 넓은 평수의 집, 외제차, 골프, 해외여행, 대기업/공기업/전문직에 목숨 거는취업문화까지•••자기만족은 사실 크게 질적인 면에서크게 다르지 않다. 24평에 사나, 32평에 사나 그게 그거고, 외제차를 타나 국산차를 타나 똑같다. 외제타라고 국산차보다 몇십 배 빠르나? 아니다. 이동수단으로써 사실 다 잘 굴러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월급은 좀 많을 수 있지만 어차피 다 같은 월급쟁이. 보이는 것이 다른 거다.

이처럼 돈과 명예, 권력, 우열을 가늠할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인정으로부터의 만족이 바탕이 된다. 마치 플레이스테이션의 조이스틱같다. 우리는 화면에 비친 캐릭터고, 조이스틱은 본인이 생각하는 비교대상인 타인이다. 그들이 조종하는 대로 우리는 가야만 하고 기술을 써야 하고, 사냥을 해야 한다. 축구게임에서 그들이 슛을 차라고 슛버튼을 눌렀는데 내가 패스를 하면 그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기계가 고장 났다고 생각하겠지. 지금 우리의 삶은 그렇게 그들에게 고장 안 났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행하는 것들이다. 대한민국 청년들 거의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자, 그럼 다시 생각해 보자. ’인생을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라, 대한민국 청년들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라는 원론적인 해답 앞에는 우리가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명확히 존재한다. 진짜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남들의 인정에 목매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대한민국 청년들의 속 깊은 사정은 뭘까.

먼저, 무시받지 않기 위함이다. 나를 포함한 가족, 내 주변사람들 왜 다 그렇게 안 해봤겠나. 모두가 각자만의 개성으로 하고 싶은 걸 도전해 보면서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걷고 싶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한 달에 백만 원~이백만 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 자녀를 개성 있게 키우려고 다양한 걸 경험시킨다.  그들도 내 자녀가 공부 1등을 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미래를 위해 검소하게 살면서 겉보단 내면을 가꾸는 일에 집중하게 내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나아가 우리 본인도 그렇게 크고 싶었다.

근데 이 세상이 그렇지 않다. 여자들은 결혼식에서 명품백 하나 안 매면 무시를 당하고, 남자들은 30대가 넘어 차 없으면 주변에서 왜 없는지를 물어본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는 줄 안다. 정말 필요가 없어서 사지 않는 건데도 말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있어 암묵적으로 상향평준화 된 기준을 갖고 있어야만이 무시당하지 않고 깔보지 않는다. 설령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를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고는 그 준거집단은 그들만의 자랑과 재력을 서로 공유하며 인정해 주고 그걸 미덕으로 삼는다. 자랑할 게 없는 이들은 자연스레 소외당한다. 근데 나 혼자 나만의 줏대를 가지고 타인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나만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 그들속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며 용기 있는 행동이다.

두 번째, 그 준거집단은 가만히 그들만의 리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역을 더 펼치기 위해 본인의 집단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조언이랍시고 먼저 질타하고 무시하고 힐난한다.

“너는 나이가 서른인데, 자라나 에잇세컨즈 이런 스파브랜드 옷만 입어서 되겠어? 비싼 외투 하나는 있어야지”

“요즘 20대, 30대 중 누가 갤럭시 쓰냐? 아이폰 안 쓰는 사람들은 센스도 없고 그냥 아저씨네 아저씨”

“야, 30대 됐고 몇 년 직장 생활했으면 경력도 있겠다, 이직준비 안 해? 지금 놓치면 너 평생 대기업 못 가”

걱정, 조언이라는 타이틀로 이들을 비참하게 깎아내린다. 철저히 이를 배제한 채 나만의 길을 가기가 어떻게 이 사회에서 쉽겠는가. 하루아침에 비정상인이 되어버리는데.


내가 세상에 얘기한다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만 글의 힘을 믿을 뿐이다.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는 계속 늙는다. 행복해 보이려 살지 말고 지금 그냥 행복하자. 그러고는 행복한 지금을 추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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