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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pr 11. 2024

사회생활, 자존감 높은 사람 특징

자존감은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라디오스타> 방송에서 김구라가 박명수에게 일침을 가한다.

“무한도전 유재석 없으면 빠지고, 세바퀴는 적응 못해서 도태되고, 해피투게더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하는 게 하나도 없지 않냐?“

그러자 박명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다 완전 도태되겠죠”


이 대답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 개그적 요소나, 개인의 천재적인 재치를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바로 자존감이다. 박명수는 항상 유재석에 뒤쳐지고 유재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다. ‘1.5인자’라는 말까지 들으며 대중에게 그렇게 이미지가 자리 잡혔다. 근데 이 대답을 하는 걸 보면서 박명수가 진짜 일류 개그맨이고, 진정한 일인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는 말한다. 지금 방송을 다섯 개 하고 있어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고, 방송이 하나도 안 하고 있던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감사하다고. 도태된다 해도 어떤 상황이든 그냥 매 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그냥 이것 안되면 저것도 해보고, 다 부딪혀 보는 거라고. 내면이 누구보다 단단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존감은 현대사회에서 왜 중요한 걸까. 세상의 공격 속에서 나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함이다. 유재석은 유재석이고 박명수는 박명수다. 유재석이 잘하는 게 있으면 박명수가 잘하는 게 있다. 각자 타고난 분야가 있다는 거다. 유재석이라고 해서 박명수가 잘하는 걸 자기 걸로 만들어 똑같이 대중을 웃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데 이 사회는 어떤가. 하나를 했을 때 그 하나의 일과 맡은 일이 그 사람의 전부라 평가하고 단정 짓는다. 이 타인의 평가에 따라 개인의 평판과 보상이 나뉘기에(회사든, 사업이든 똑같다) 이 모든 걸 무시하면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단순히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본인 인생을 살라’, ‘본인에게만 집중하라’는 맹목적인 단어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연성이 한참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국인은 철저히 관계주의 속에 살아간다.  늘 개인보다 관계 속에서 사회를 꾸려가며 사는 법을 어릴 때부터 터득해 왔기에 타인을 특히 조직 속에서 신경 안 쓰고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보자.

4명의 친구가 중식집에 갔다. 누구 하나 자기 주관을 가지고 메뉴를 정하는 사람이 없다. 메뉴판을 좀 보다가 말한다.

“너넨 뭐 먹을 거야?”

내가 속한 집단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따라 얼마든지내 의견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난 짜장면을 먹고 싶은데 얘네 셋 다 짬뽕을 먹겠다고 하네? 아, 그럼 메뉴가 같으면 빨리 나오니까 이번에는 나도 짬뽕시켜야겠다 ‘라는 생각이 사로잡힌다.

늘 어딘가에 이끌려 다니고, 집단의 의사결정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뭐 하나를 잘못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자존감이 부족해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나를 방어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이 요구된다. 그저 내가 오로지 나로 존재할 때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취업이 안 돼도, 돈이 없어도, 꿈을 못 이뤄도, 여자친구와 헤어져도, 소중한 친구를 잃어도, 당당한 연습을 해야 한다. 바닥을 짚어본 사람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어 다시 한번 바닥을 찍어도 올라오는 속도가 배는 빠르다. 상황은 언제나 가변적이고 그 안에서 올곧은 단단한 정신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박명수처럼. 그가 도태된다고 답했을 때 이 질문을 한 김구라의 표정을 봐라. 얼마나 당황스러운 표정인가. 실제로 맞다. 공격하기 위해 말한 날카로운 질문에(물론 대본에 있었다고 판단되기에 김구라가 그런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저렇게 대답하는데 무슨 말을 하랴. 그냥 계속 쭉 도태되고 그 도태된 상태에서 또 무언가 계속해보면 그만이다. 단,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


저 대답을 할 수 있는걸 보아 박명수는 본인이 도태되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알고 있으니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내가 미래에 도태될 것 같으면 불안해서 절대 저런 말을 꺼낼 수 없다. 저 말을 들으면서도 김구라에게 "나는 유재석 라인 쫓아 컸는데 너는 너만의 길을 개척했다" 며 상대방을 칭찬하기까지 한다. 이 대답을 함으로써 행여나 질문자가 난처해하지는 않을지까지 걱정하며 두수 아니 삼수 앞을 보고 저 말을 꺼낸 것이다. 그것도 질문과 동시에. 유튜브 <할명수>나, 라디오나 하는 것마다 대박을 치는 이유가 있다. 그냥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내면에 깔려 있거든.


또 그는 성공의 정의를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유재석처럼 무명이 길었던 사람이 시련이 있어 지금의 유재석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꼭 시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이 있어야 기회가 온다는 것은 다 개소리다. 시련은 오히려 길수록 깨달음보다 인생의 해가 되고 타락의 길로 접어든다. 다 잘되고 나서 돌아보니 시련이 미화되어 '성장의 발판'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할 뿐이다. 박명수는 데뷔 초부터 유명세를 타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늘 최고는 아니더라도 계속 본인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당연히 시련은 데뷔 이래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로써 성공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성공을 하거나 유명세를 타면서 그 유명세를 탄 기간 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은 본인만의 시간들이 성공의 시간을 확장시킨 것이다.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더 재미를 주는지 유명세를 타면서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의 박명수가 있는 것이다. 서장훈도 마찬가지다. 운동계에서 탑을 찍어본 사람이라 그 내공을 가지고 예능에도 입문해 바로 지금 정상을 찍었지 않나.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안다.


그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다른 사람과 본인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어제의 본인보다 오늘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 단점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허점까지도 자기의 부분이라고 그걸 인정하는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아내를 만나고, 지금 일도 더 잘풀리고, 어느새 예능 계 독보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사회생활에서 이 생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사회는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파고들어 물어뜯고 사람을 뭉개버린다. 한국사람들의 냄비근성을 봐라. 뭐 하나 터지면 모두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당사자를 재기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린다.그리고는 일주일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모두 잊어버린다. 장점은 물어뜯겨서 확장돼버린 그 단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다.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서는 내 허점까지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내가 포개야 한다. 내가 포개고 보듬어 단점을 내 영역 안에서 조금씩 줄여나가거나, 장점을 특화시켜 사회에 비쳐야한다. 그것이 박명수의 삶이 말하는 삶의 방법이다.

바로 '비교에 대응할 수 있는 삶'. 대한민국은 사람 간의 비교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 비교는 김구라의 "이미넌 도태되었지 않냐?"라는 질문에서부터 벌써 느낄 수있다. 모두가 보는 공중파 방송에서도 은연중에 비교의식이 깔려있다는 거다.  


인생은 누구나 잘 풀릴 때가 있고, 안 풀릴 때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곧 이 비교에 지쳐 본인만의 소박한 삶을 꾸려갈 것이다. 그래서 미니멀리스트가 지금 대세가 된 것이고, 이 소박하고 미니멀한 삶, 성공의 정의를 아는 삶은 모두 이 자존감이 근간이 된다. 그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을 나만의 자존감을 꼭 지켜내야 한다.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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