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철학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친한 지인이 쇼펜하우어 책을 선물해 줬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이어서 선물한 것이 아니라, 이 친구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아픔과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글이 이 책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실제로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어떻게 이겨낼까? 내 주변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간다. 여행에서 잠시 현실의 아픔을 잊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걸 보며 리프레쉬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를 줬던 그 주체를 해결할 수 있는 용기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한다. 여행을 가든, 책을 읽든, 좋아하는 음악을듣든, 운동을 하든, 결국은 이와 같은 외적인 행위로 내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영혼의 충만함을 위해,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결국 여가시간에 무언가를 선택해서 하는 것이다.
서점에 가보면 인문학 서적 1위가 쇼펜하우어다. 하나의 책이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말을 재구성하여 낸 출판사의 책들이 거의 대체로 베스트셀러다. 우리는 왜 지금 쇼펜하우어에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결국은 답은 같다. 정신적 가난에서 벗어나 영혼적인 충만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결국은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사회다. 만약 A라는 사람이 B보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자기 분야에서 노력했다면 당연 B보다 더 높은연봉과 많은 자산을 가졌을 것이다. B보다 더 많이 벌고, 많이 가졌다면 결국은 A 본인은 더 열심히 살았다는 게 증명되니, 이는 충분히 자랑할만한 가치라 떵떵거려도 문제가 없다. 부와 명예라는 것이 내 노력으로 일군게 아니라 금수저처럼 출생부터 정해져 있는사람들도 물론 있다. 이건 그냥 이대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근데 문제는 한국인은 유독 이를 내 안에서 찾지 않고 타인에서 찾으려고 한다. 바로 ‘비교’.
대학도 더 이상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취업양성소로 전락했다. 자연스레 취업이 잘되는 학과 공대, 의대에 정부는 온갖 예산을 붓고, 취업 안 되는 학과는 통폐합을 한다. 지방대를 졸업한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거의 많은 대학들이 인문대학교 학과를 통폐합을 추진 중이다. 대학도 여기에만 집중하는데 정작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문학과 철학은 등한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연스레 내 삶의 기준은 내 안이 아니라 취업이나 경쟁 외적인 삶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
인문학과 철학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나는 살아가는지, 무엇을 하며 살건지를 답을 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학문이다. 결국은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알아가는 학문이다. 사람들이 철학 책을 찾는 이유는 지독하게도 불행하지만 잘 살고 있는 척하는 SNS문화가결국 현실에까지 번져 거품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남이 좋다는 건 해야 하고, 남이 사는 건 사야 하고, 눈치는 봐야 하고, 내 개성하나 지키지 못한 채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한국인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게 철학이다. 철학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쇼펜하우어를비롯해 옛사람의 철학을 되새기며 삶을 바꿔보려는 발버둥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도파민에 절여가는유튜브나, 쇼츠가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서는 책을 펼쳐든다. 인간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한국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철학이고, 그 철학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곡점에 서 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이나 SNS 버튼 하나만 눌러도 내 주변에 누가 얼마를 가졌고, 연봉이 얼마고, 요즘 몇백만 원짜리 가방이 유행이고, 대학 서열, 직업 순위, 모든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이 모든 건 철학과 책 앞에서는 결국 영혼 없는 껍데기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코어가 없는데 남만 따라 한다고 겉돌면 그럼 정작 나는 어디 있나? 총이 없는데 총알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
지금 한국인은 타인이 기준이 된 이 비교문화에 한없이 지쳐있다. 정신적인 가난을 물질적 가난으로 착각하고 이상한 데 과한 돈을 소비하고, 그걸 남과 비교하면서 정신승리한다. 무한 악순환의 굴레.
한국인의 비교는 크게 세부류로 나뉘는데 서열문화, 교육문화, 나이문화다. 서열문화는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 계급화하며 암묵적인 서열을 나눈다.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못 배운 사람 취급하고, 이는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그대로 수직적인 문화로 드러난다. 남자들은 대다수 군대를 가기 때문에 까라면 까는 군대문화도 이 수직적인 문화에 한몫한다.
다음은 교육문화다.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이 비정상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내신성적부터 시작해 위장전입해 학군이 좋은 중고등학교에 보낸다. 실제로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70%가 세입자다. 수능성적으로 대학을가는 건 이해하나, 이게 평생 따라다니며 차별당해야 한다. 공부를 좀 못해서 스펙이 없어 대기업을 못 간다고 하면 사회에서 실패자 취급을 받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월급 300 이하는 직장인 커뮤니티(블라인드 등)에 댓글도 달지 말라고 한다.
마지막은 나이문화다. 한국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나이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 나이를 알고 나면 그 나이에 맞게 모든 게 평균이상으로 갖추어져 있는지 스캔을 한다. 심지어 이 평균도 왜곡된 평균이다. 가령, 30살이면 당연히 결혼을 했거나 준비해야 하고, 좋은데 취업해서 돈을 벌고 있어야 하고, 서울에 내 집은 아니더라도 최소 전셋집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차도 필수다. 각자의 영혼이 물질로 생각하는 관념이 굳어진다.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환자가 급증하고 우울, 불안 속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데 그걸 남들도 그렇게 하니 정상으로 착각하는 사회다.
그런데 나만의 코어가 있으면 내가 가진 것, 내가 선택한 것에 만족하며 행복해한다. 지금 내 앞에 반정도 남은 이 커피도 누군가는 ‘아, 벌써 반밖에 안 남았네, 몇모금 안 마셨는데. 컵이 왜 이렇게 작아’라고 생각할 수있고, 누군가는 ‘아, 반이나 남았네! 레귤러 시키길 잘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철학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시간과 사색을 즐겨야 한다. 인문학과 철학은 행복의 가치를 밖이 아니라 진짜 안에서 찾게 도와준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런 책을 사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계속 드는 거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는 거다.
유교문화의 단점만 남은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정신적 가난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