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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25. 2024

아무도 모르게 돈이 많다면?

말하지 않는 기쁨이란 어떤 걸까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바로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건 단순히 반대를 넘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생각은 '아, 소문은 빠르다는 얘긴가?' 싶을 것이다. 근데 단순히 비밀을 퍼트리는 걸 넘어 겸손과 평정을 지키는 게 그만큼 어렵다. 비보일 경우에는 전자에 해당될 것이고, 낭보일 경우에는 후자에 해당된다.


비보부터 보자. 대개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꼴사납다. 다른 사람 봐봤자 사실 다 거기서 거기고, 고통스러운 일들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삶은 원래 지속적인 고통과 간헐적인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하루 중 자기 전 드는 생각이라고는 '아, 오늘도 아무 일 무사히 잘 보냈네'가 가장 먼저 자리한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폰을 보면 잠이 든 사이에 온갖 벌어진 사건사고들로 가득하다. 그 사고는 계획성 범죄일 수도, 우발적 사고일 수도 있다. 사소할 수도, 심각할 수도 있다. 경중을 떠나 어쨌거나 '무사하고 평범한 삶' 자체가 현재로서는 꿈이 된 시대다. 이 현대사회가 고통인 이유도 어쩌면 고통스러운 사람이 애초에 많아서그렇다는 귀납적 추론도 가능하겠다. 작게는 오늘 시험 점수를 망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투자한 주식이나 부동산이 폭락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자발적인 퇴사를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크게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 사고를 당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이런 비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빨리 퍼진다. 사람들은 대체로 아니 선천적으로 그냥 남 말하기를 즐긴다. 실제로 이 비보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가족 빼고는 없다고 자부한다. 극단적으로 어떤 이는 꼬시다고 좋아하거나, 더 안되도록 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내 주변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다 티를 안 낼 뿐이다.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많은 사람이 더 안되길 바란다. 그래야 본인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주변은 가족마저 서로가 안되길 바라는 데도 봤다.

친구나 지인 관계를 넘어, 회사나 사업을 하며 사회생활을 한다면 이는 정점에 달한다. 이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눈 뜨고 코베이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내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어. 주변에서는 당연히 나를 위로하겠지. 겉으로는 그렇게 하고 그냥 끝이다. 뒤돌아서면 그냥 며칠 안 가 신경 안 쓴다. 왜? 본인 일이 아니거든. 본인 살기도 바쁘거든. 나쁜 것이 아니라 이는 당연한 것이다. 면접, 승진, 사업, 기회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 다 똑같다.

슬픔을 나누면 어떻게든 약점이 된다. 이런 비보 소식 자체가 안주거리가 되기 때문에 소문은 빨리 퍼지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 술자리를 하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든 보통 50% 이상은 남 얘기지 않나. 이것만 봐도알 수 있다. 만약 이 비보가 도덕적이지 않은 방향, 불법적인 행동으로 발생한 결과라면 그 소문은 더 삽시간에 그리고 강력하게 퍼진다.

얼마 전, 지인이 큰 거짓말을 해 또 다른 친구에게 금전적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며칠 안돼 나를 포함한 지인 모두에게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위로와 동정 없이 그들이 바로 손절하는 걸 보며 느끼는 것이 비보의 귀책사유가 만약 본인에 있다면 그 비보는 웬만해서는비밀이 될 수 없다.


다음은 낭보를 보자. 비보와 반대로 기쁨을 나누면 질투와 시기가 된다. 근데 그 기쁜 일이 본인에게 생겼을 때에는 수많은 소음 속에서 겸손과 평정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본다. 금세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진다. 질투와 시기를 감내해서라도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진다.이걸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배우 류승수가 <라디오스타>에서 나온 명언이 있다.

아무도 본인을 모르고 돈만 많다는 것이, 질투와 시기 없이 경제적 자유를 결국 누리고 싶다는 것인데, 실제로 그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본인이 그 기회를 저버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하자. 이런 낭보 속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얼른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자랑해서 알리고 싶다. 인터넷, SNS에 빨리 올려서 자랑하고 싶다. '아무도 모르고 나 혼자 돈이 많게'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큰 수고스러움과 용기와 인내, 평정을 요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단 한 명, 그 아무에게도 평생 말할지 않을 자신 있을까? 그런 사람은 손에 꼽을 거라 본다.

사람은 결국 인정의 욕구가 충만해야 성취와 보람을 느끼고, 삶의 만족을 찾는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말을 하지 않으면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모순에서 괴리감이 생긴다.


인스타그램이 왜 20대, 3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걸까? 내가 지금 호텔 수영장에서 놀고, 명품을 사고,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외제차를 몰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그 심리를 일찌감치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파악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박을 친 것이다. 작게는 어느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것부터, 길게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삶의 모든 생애주기 안에서 사실 본인의 행복을 타인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순간이 온다. 그걸 말하지 않고 참는 것 이게 가장어렵다.

물론 낭보가 있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건 좋다. 좋고 그것이 당연히 옳은 일이다.

어젯밤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부재중전화가 두통 와있길래,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상황상 받지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임신 사실을 확인해 결혼날짜를 잡았단다. 평소 임신을 바랐던 친구라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이렇게 타인의 축하를 받으면 본인의 기쁨은 두 배, 세배가 된다. 단 누군가에겐 질투와시기가 함께 오기에 관계에서 이슈가 생기는 것이다.


나 혼자만 기쁜 일을 홀로 만끽하는 것과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것. 여러모로 이건 선택의 문제겠지만 전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유스러움이 그 사람에게 자리할 것이다. 기쁨의 정도에 따라 그 여유는 다를 테지만 이는 단순한 경제적 여유를 넘어 총체적 여유겠지. 그 사람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앞으로 평생 모를 테지만 그런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말은 아끼면 아낄수록 더 진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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