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Jul 26. 2024

이제는 OO한 사람이 좋다

내게 남은 사람들

올여름도 어김없이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그들이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아있어 한 해가 바뀔 때마다 관계라는 망 자체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근데 웃긴 게, 좋아하는 사람 기준이 마치 다른 사람인양 생애주기별로 달랐다는 거다. 시간에 따라 가치관이나 관계의 기호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나, 나이대별로 자로 잰 듯 딱 맞는 게 돌아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10대 때는 누가 내 곁에 있었나.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에 집중했다. 나는 주변의 눈에 웃긴 사람, 돋보이는 사람, 리더처럼 비치길 바랐다. 반장을 도맡아 했다.

내게 잘 반응해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당연히 나와 어울리는 이들은 노는 거 좋아하고 시끄럽고 외향적이다.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마치 문제가 있는 양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게 곧 재산이었고, 어떻게든 잘나고 힘센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내가 잘 살고 있는 거라 믿었다.


20대에 들어서자 모든 게 급변한다. 옆자리에서 똑같은 걸 배우던 친구들이 성적에 따라 대학에 가면서 전국각지로 뿔뿔이 흩어진다. 거기서 새로운 환경이 시작된다. 여기선 ‘타인이 보는 나’에서 ‘내가 보는 타인’으로 시점이 한번 전환된다. 군대에 갔다 오고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진다. 이때 어떤 분야든 관심 있는 것에 각자 열정적으로 사는 친구들, 똑똑한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두려 했다. 주변환경이 주는 힘은 그 환경에 적응하고 배우게 만들기에 그 영향력은 상당하다. 왜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은 학군이 잘 형성돼 있을까. 공부하는 환경이면 내 아이도 따라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런 이들이 주변에 많으면 많을수록 인사이트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하루를 더 알차게보낸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내 관심분야를 스스로 찾아 꿈을 향해 달리게 된다.

성격이 어떻고, 나와 어떤 점이 잘 맞고는 크게 중요치 않고 오로지 성실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게 잘 살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게 바른 삶이라 여겼다. 꿈이 없는 사람을 깎아내리며 자기 체면에 빠졌다. 하나 다행인 건, 10대 때에는 타인의 눈을 의식해 그들에게 내가더 나은 사람으로 비치길 원했었다면 이젠 내가 주체적으로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갔다는 거다.


지금 30대는 어떨까. 20대보다 벌어진 삶의 격차로 관계에서 더 무리를 지어 끼리끼리 놀고, 조건에 집착할까?

현대사회가 모두를 이렇게 종용한 건 사실이다. 더 돈에 집착하게 만든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내 곁에 있는 무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내게 기회를 줄 수도 있고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다. 이는 내 주변이 능력과 재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내 주변이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봐라. 내가 힘들 때 손벌릴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도 없고 삶의 위기가 왔을 때 혼자 고독히 싸워야 한다.탑티어에 있는 부류들은 이들을 배제한 채 더 그들만의 무리를 견고하게 형성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많이 바뀔 것이다.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학벌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동시에 갖춘 20대들이 동시에 무수히 나올 것이다. 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30대, 40대를 아주 견고하게 다져나간다. 그들은 30대에 그들끼리 결혼하고 연을 만들고 가문을 만든다. 지금이 초기단계다. 그 세계에 진입하려면 벼락부자는 어림도 없고 튼튼히 쌓아온관계 간 신뢰가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줄 알았던 내 30대는 정반대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수저게임과 치열한 자산 경쟁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SNS에 난무하는 직업과 연봉자랑, 자산자랑이 어쩔 때는 부러웠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여겼다. 돈은 그냥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이젠 그냥 똑똑한 사람도 아닌, 내 말에 웃어주면서 리액션 좋은 사람이 아닌, 그냥 편안한 사람이 좋다. 서로가 쌍방향적으로 편안한 관계. 침묵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그냥 술 한잔 가볍게 부딪힐 수 있는 그런 관계에 더 마음이 간다. 상대의 외적인 조건은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물론 누구나 불편한 관계는 싫어한다. 근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수한 이해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받고, 그 관계는 돈과 생계에 묶여 자연스레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최대한 덜 불편한 관계를 찾게 되고, 그중에서도 서로에게 편안함을 좀 더 바라는 것이다. 바라는 게 많으니 그 개체수는 당연히 작을 수밖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자리에서 시계를 늘 쳐다보게 되는 관계는 이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려 한다. 그게 인생에서 진짜를 챙기는 것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첫 번째다.


자, 그럼 이제 40대는 어떻게 살 것이며, 내 주변엔 누가 있을 것인가. 아직 40대를 겪지 않아서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더 비워질 것이다. 더 가볍게 비우고,가족을 중심으로 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내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걸 벌써부터 조금씩 적응할 준비를 한다. 조금씩 잊혀갈 준비를 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잊혀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 곁에 있을 것이기에 두렵지 않다.




이전 24화 아무도 모르게 돈이 많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