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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Sep 02. 2024

겸손할 필요 없는 이유

자존감은 어떻게 잃어가는가

겸손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닌, 고작 내가 고등학생정도까지만 해도 그랬다. 잘하는 게 있어도 드러내서는 안 되고, 은연중에 내보여야 했다. 본인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품격과 예의를 갖춘 사람이며, 사회에 더 잘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컸다. 그렇게 배워 현대사회에 생긴 부작용은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다. 한 조직에 속한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나 알바생이나 학생들이나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내가 보는 그들’이 아닌 ‘그들이 보는 나’가 중점이 된 사회에 산다. 지나친 겸손이 익숙해지며 실제 각자가 잘하는 분야가 있어도 숨기고 마침내는 그것이 본인이 잘하는 거였는지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겸손의 익숙함과 사회의 압박 속에 각자의 정체성이 흐려져간다. 그 정체성은 자존감 하락으로 곧장 이어진다.

“나는 실력이 없어서 안 될 거야”

“내가 이걸 어떻게 해?”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낮추며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 치부해 버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부작용은 단지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만 가져오지만 이 경우는 더 심각하다. 전자는 능력부족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일을 시작해 볼 수라도 있고, 그 과정에서운이 받쳐주면 작지만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결여됐다는 건 그 일을 시도할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 그냥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루저로 평생을 산다. 당연히 현재에서 발전된 모습을 기대할 수도 없다. 지나친 겸손이 불러온 현대인의 패착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현대인이 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면접을 봐도, 초면인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면 본인을 드러내야 한다. 면접에서 겸손만 떨고 있다면 면접관은 면접자의 능력을 끌어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마치 숨기는 사람과 그걸 파헤치고자 하는 사람처럼 언매치한 상황이 벌어진다. 당연히 그 면접은 아주 높은 확률로 떨어진다. 이 외 사회생활에서 스피칭능력을 키우고, 표정관리, 옷차림, 외모에 우리가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도 사실 이 사회의 무리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표출하기 위해서인데  현대사회는 겸손한 사람이면 그 겸손한 ’태도‘에 집중하지 않고 겸손으로 평가절하된 ‘능력’에 더 치중해 버린다. 왜일까. 왜냐면 이 피 튀기는 경쟁에서 이 ‘겸손한 사람’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더 큰 이득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겸손은 현대사회에 미덕이 아니다. 겸손은 각자의 자존감을 무너지게 하는 패착이다. 겸손, 죄책감, 부끄러움, 실망, 상처, 이런 감정은 인간의 약한 감정에속한다. 그 어떤 강인함과 날카로움을 지니지 못한 그저 약자의 감정이다. 반대로 공포, 분노, 패기, 무모함, 절박함과 같은 감정은 인간의 강한 감정이다. 본인에게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줌으로써 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감정이란 거다. 눈뜨고 코베이는 현대사회에서는 전자보다 후자의 마인드가 본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고, 경쟁에서 살아남는데 훨씬 유리하다. 근데 우린 이를 모른척한다. 이걸 말하면 선량한 이미지를 잃고 상대에게 불편하고 정 없는 ‘악역’ 이미지만 주거든. 이 불편한 진실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찾아온다. 아무도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 주식이 앞으로 폭등할지, 폭락할지 100% 예측할 수 없다. 서울 부동산이 앞으로 더 떨어질지, 올라갈지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도 그저 시장에게 주어진 상관관계에 따라 판단하고 분석할 뿐이다. 집값이 올라가면 서울의 공급부족 즉, 아파트 총량자체가 애초에 부족했다고 말한다.  상승세가 좀 둔화된다 싶으면 살만한 집이 없다고 말한다.  집값이 떨어지면 장기침체니, 지역별 공급격차가 발생하는 논리로 금세 바뀐다. 전문가 하기 참 쉽다. 기자들이 왜 기레기라고 욕먹는지 조금은 짐작이 가는가?

반도체 대장주도 마찬가지다. 오르면 신문 1면에는 실적개선에 반도체 수요증가를 말하고, 주가가 떨어지면AI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말한다. 그냥 다 갖다 붙이면 되는 세상이다. 왜냐하면 당사자들도 이렇게 말을 해야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해야 기자라면 쓸 거리가 생기고, 애널리스트라면 쓸 보고서가 생기고, 본인의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본인의 소신을말하면 일감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외면하고,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된다.  

자, 여기서 뭘 느꼈는가? 이렇게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고, 읽히는 대로 읽고, 말하는 대로 듣는다. 나와있는 정보대로 생각한다. 즉, 겸손을 겸비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이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본인을 낮추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여러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라고 절대 생각 안 한다는 거다. 그냥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 그냥 그 사람은 그 능력이 없는 거다. 보이는 대로 생각해 버린다. 가령, 누군가 겸손한 A한테 말한다.

“액셀을 잘 다루시네요!”

“하하, 아닙니다. 저는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라고 하면 속으로 ‘아, 이분은 엑셀도 잘하시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네’가 아니라 이젠   ‘아, 잘하는 게 아니구나. 괜히 칭찬했네’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지나친 겸손의 온전히 피해는 그 당사자한테 간다. 결국 그 사람에 대한 혹은 한 현상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존재해야만 현실적으로 겸손한 사람도 더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온다. 근데 지금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왜 그럼 사람들은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평가할 수밖에없는 걸까.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 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양한 요소와 원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결론은 현 상황에 대한 분석력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다.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결국 현대인들의 자존감이 박살 난 것도 애초에 나서지 않는 문화, 과도한 경쟁, 겸손이 미덕이라는 관습이라고 원인을 내가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00 해서~ 00 했다’라는 상관관계가 아니라, 정확한 인과관계가 더 중요하고 우리는 거기에 집중해야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자친구가 전화 와서 “퇴근했어?”라고 묻는다.  ”응, 나 퇴근하고 친구들이랑 맥주 한잔하고 있어“ 남자친구가 답변했다고 하자.

근데 여자친구는 이 한마디에 화가 났다. 자, 도대체 뭐때문에 화가 났을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각자 무수히 많은 답변들을 떠올릴 것이다.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성별 간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심지어 여자라도 여자끼리도 정답을 못 맞히는 경우도 많다.

 

A: 퇴근했냐고 되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B: 본인에게 말도 없이 퇴근 후 친구와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

C: 나와 놀아주지 않고 친구랑만 놀기 때문이다.

D: 먼저 전화하지 않고 늘 본인이 먼저 전화하기 때문이다.

E: 술 마시지 마라고 했는데 술을 마시고 이씩 때문이다.


자, 이 답변들 중 정답은 뭘까? 모른다. 본인만 안다. 남자는 이 여자의 화를 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화가 난 명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에 따른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도 똑같다. 인과관계를 따져 원인을 해결하려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위의 예시에서는 여자가 화가 났다는 결과는 같았지만 모두가원인에 따른 판단을 다르게 한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정책이나, 회사규정, 인간관계, 부동산, 주식, 재테크 이 모든 것도 여기에 상충된다. 이 중 핵심적인 원인을 꼽는 것에 우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겸손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현대인들에겐 어쩌면 이런 ‘과도한 겸손’이라는 원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막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간은 유한하다. 지금의 어린아이도 언젠가는늙고 죽는다. 즉 뭐가 됐든 그 유한한 인생 안에서 남는건 결과뿐이다. 겸손은 현재로선 긍정적인 결과보다 과거를 후회할만한 일을 하나 더 만들 뿐이지 않을까. 결국 겸손 떨면서 조용히 할게 아니라, 덜 조심스럽고 더 대담해야 한다. 그게 곧 삶을 좋은 방향으로 계속 변화시키는 길이고, 작은 기회 하나라도 더 가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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