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을까
친구가 회사에서 실수를 했는데 윽박지르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푸념을 한다. 그 푸념을 들으며 스치는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완벽한 사람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우리 모두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나뉘어 있다. 이는 학교에서부터 드러난다. 누구는 영어에 강점이 있고 내 옆 짝꿍은 수학에 강점이 있다. 누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가진 스포츠선수일 수도 있고, 머리가 뛰어나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예술적 지능이 뛰어나 아티스트 혹은 가수가 됐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한쪽에 특출 나게 커온 사람들도 실수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신뿐이다. 어느 것을 잘하고, 못하고, 착하고, 못나고를 떠나서 실수는 그냥 필연적인 것이다. 서로 불완전한 인간들이 결국 만나 조직을 이루고, 회사를 만들고, 그나마 본인이 흥미 있는 분야의 직무에 가서 조직에 기여하며 사회에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우리가 하나 간과하는 것은 일을 잘하거나,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실수를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들도 모두 실수를 한다. 심지어 집에 와서 요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부분에서는 조직 안에서의 ‘본인’보다 내가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근데 누군가는 회사나 학교에서 인정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이미지메이킹이다. 이미지메이킹? 남눈치 잘 보면서 산다고? 아니다. 이미지 메이킹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타인이 본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욕을 하는지 안 하는지,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본인의 적당한 선에서 가정과 일을 분리해 가면을 쓰고 살거나, 본인이 엄격하게 정한 규칙대로 그대로 살뿐이다. 멘탈도 강해 남들이 욕을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본인이 하는 일에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거기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소위말해 줄을 잘 탄다는 것이다. 대개 사회생활하면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은 남눈치도 많이 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를 끌어내려야 하기 때문에 험담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험담을 한다고 해서 본인이 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시간에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시간을 할애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이런 사람들이 학교에서 ‘장’을 맡거나, 회사 혹은 사회생활에 있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란 걸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앞서 말한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스포츠선수나, 예술가나 이런 이들은 굉장히 드물고 대개 회사를 다니는 일반인의 레벨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냥 그중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본인과 잘 맞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타인에게 (크게) 신경을 안 쓰며 무던하게 살아가는 길. 이 두 가지가 집 밖에 나와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모든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나. 어디서 발생하는지 위를 파고 들어보면 결국 사람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이 아니라고? 혼자 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내가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일마저 결국 사람이 만든 거다. 그 일을 기한을 넘겨 하지 못한 본인을 탓하고 있다면 결국 본인도 어찌 됐건 사람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 가보면 알겠지만 90% 이상의 사람들이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내가 A를 하고 그 A를 연달아 B가 하고, 이런 식이다. 모든 일은 아주 촘촘히 연관되어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일을 나누어서 체계적으로 하는 ‘분업’ 시스템이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옛 선조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팀이나 TFT팀이 있다면 이는 더하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공동의 목표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사람사이에 일적으로 더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일적으로 부딪히면 본인 감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순간 상대가 감정적으로 싫어지기 시작한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이라고만 단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이 관계는 아주 높은 확률로 돌리기 힘들다. 일 적으로만 생각하기엔 이미 내 감정선이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한 조직에 친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일적으로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차피 같이 동기로 입사를 했는데 나중에 누가 먼저 승진하고 떨어지고 이런 걸로 남이 되는 경우도 많이 봤고, 친구사이에서도 내가 대기업에 다니고 누구는 중소기업에 다녀 연봉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 질투하고 시기하고 그렇게 깎아내리면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그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자본주의에서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게임이다. 누군가가 완벽했다면 사람에겐 질투와 시기라는 감정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꼭 일적으로 뿐만 아니라도 한 조직에 있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있는데 사람 생각하는 건 다 (어느 수준에 도달한 이상)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는 거다. 내가 A를 생각했으면 남들도 다 A를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선택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다들 그냥 비슷하게 생각한다. 선배나 후배들한테 물어도 그 대답이 절대적인 정답이 아닌 경우도 있다. 본인의 소신대로 그냥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어차피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다. 그 조직에 속해있는 본인은 우월한 것도 아니고, 부족한 것도 아니다. 결국 친분이 있는 관계 즉,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관계 몇 명 믿고 가는 것이다. 사회생활이나 관계에서는 본인만의 선만 철저히 하면서 넘어오는 사람 거르고, 내가 안 넘어가고 그냥 무던하게 줄타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줄을 타는 사람에게 오징어게임처럼 내가 먼저 밀지도 말고, 밀침 당하지도 않으면 그뿐이다. 그럼 골인지점까지 그렇게 같이 가는 거다. 그 줄타기 속에서 내 것에 집중하면서 본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시간을 쏟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구한테 더 특별히 잘해주거나, 누구한테 더 특별히 차별하지도 않는다. 너무 착하게 굴면 기어오르고, 누군가만 더 못되게 굴어 본인에게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게 사람의 본능이기에. 참 간단하면서도 실제론 행하기엔 어려운데 서서히 그걸 알아가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기 시작한다.
자, 이 글을 읽은 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사회성이란뭘까. 사회성은 결국 '연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성선설을 믿고 누군가는 성악설을 믿는다. 어떻게 태어나든 무엇이 정답이든 사람의 인성과 관계없이 사회생활 자체는 그냥 연기일 뿐이다. 누가 더 연기를 더 잘하냐의 싸움이다.
누군가는 그 사람이 됨됨이와 인성이 사회생활에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근데 그 됨됨이와 인성은 대개 10살까지 다 이미 정해진다. 늦어도 15살까지는 본인의 온전한 자아가 확립된다.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어릴 적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부모가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는 노력으로 바뀐다. 연기 하나로 능력 없는 사람들도 높이 올라갈 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도태될 수 있다. 이미 주변에서 많이 겪었을 것이다.
초중고 12년 공부하느라 그렇게 악착같이 살고, 독서와 사유하고, 더 나은 경험들을 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만나고 이 일련의 모든 과정들도 결국은 이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국가에서 초중고 돈 들여가면서 그렇게 공립학교 짓고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사회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