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암시의 독창성
자기 암시는 종류가 있다. 본인과 타인의 긍정적인 관심과 기대가 뒷받침될 때에 실제 그 일의 능률이나 성과가 오르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던가, 원효의 해골물처럼 실제론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하나 본인이 믿을 때 일이 잘 풀린다는 ‘플라시보효과’, 그 반대인 ‘노시보 효과’ 등 이 모두가 자기 암시의 일환이다.
의사가 가짜 약을 처방했는데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은 수많은 사람들은 실제 이 플라시보 효과로 몸이 회복된 것이다. 뇌를 속이는 과정이다. 이 긍정적 심리상태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의학적 호전 없이 몸 안에 있는 암도 제거한다. 실제 사례도 많다.
근데 이 수많은 자기 암시 중, 대개 우리 같은 일반인은본인 앞에 놓인 당장의 일, 상황에만 이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승진을 앞두고 있는 회사원이라면 연말에 있는 성과평가에 목숨을 걸 것이고, 2호점을 앞두고 있는자영업자라면 당장 올해 매출이 작년대비 얼마나 올랐는지를 염두하고 자기 암시를 할 것이다. ‘2호점을 내면 더 잘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학생은 당장 이번주에 볼 중간고사를 A+받기 위해 자기암시할 것이고, 취업준비생은 준비 중인 자격증시험을 합격하게 해 달라, 면접 합격하게 해 달라, 운동선수는 이번 경기 꼭 이길 수 있다 그런 암시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일차원적이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것만 잘되길 바라는 암시는 사실상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은 뭐? 중간고사 잘 보면 뭐? 기말고사도 또 노력하면서 자기암시하면 되겠네?
개인의 단기적 목표에 있어 자기 암시가 효과를 줄 수 있는 건 고무적이나, 눈앞의 목표에만 한정되어 있어선 안된다. 얼마 전 사업에 크게 성공한 내 친구는 어릴적부터 이 자기 암시를 습관화했는데 결국 본인의 최종 골인지점이 있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바로 ’선한 영향력으로 대한민국 인구 천만명이상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 이게 본인 최종목표였고 그 수단은 나중의 문제였다. 반려견 사업을 하는 친군데, 사실 반려견사업을 하든 맥주사업을 하든 카페사업을 하든 그는 어떤 걸 해서라도 이 꿈을 이뤄야겠다는 생각만이 명확했다. 이건 개인 철학의 문제다. 본인의 자기 암시가 이 최종목표에 만 오로지 매칭되어 있었기 때문에 앞에 놓인 하나의 과제들을 마치 가지를 뻗듯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금전적으로는 이미 이뤄냈고, 실제로 그 꿈을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누군가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 생각할 수 있다. 1년 뒤, 2년 뒤 내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해서 뭐 하냐는 거다. 근데 최종의 내 목표를 생각해놓고 있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행할 행동들에 힘이 실릴 수가 없다. 근거가 없는 것이다. 뿌리가 시들한데 어떻게 가지가 뻗고 꽃이 필 수 있겠나. 코어가 없으면 결국 남는 건 공허뿐이다. 취업준비를 위해 그토록 달려가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지원하고, 학점관리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몇십 개 쓰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나중에 취업하면? 공허하다. ‘내가 이것만을 위해 달려왔나?, 이젠 뭘 해야 하지?‘ 이건 자영업이든, 회사원이든, 운동선수든, 학생이든 모든 경우의 수에 적용된다.
누구나 일이 잘 풀렸으면 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나 돈 많이 벌고 싶고, 누구나 좋은 음식 먹고 싶고좋은 데 살고 싶다. 본인이 그걸 못했다면 본인 자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키워내고 싶다.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자식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를 그렇게 공부시키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부동산에서 금액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가 뭔가. 결국은 입지와 학군 아닌가. 그래서현대인은 더더우구 눈앞에 놓인 것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 지금 더 돈을 백만 원이라도 더 벌어야 해. 남들은 달려가는데 지금이라도 부업을 해야 해.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야 해, 남들보다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해. 끝도 없다. 당장 내가 오늘 A+를 받지 않으면, 당장 내가 좋은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당장 내가 월급이 지금 어느 정도 이상 되지 않으면 막연한 미래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 기준에 한참 못 미칠 거라는 생각이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원래 이렇다.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한없이 조급해진다. 근데 명징한 사실은 이런 마인드는 본인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기 암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자기 암시는 당장 잘되는 '속도'에 초점을 두어선 안 되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독창성'이 더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모두가 획일화됐다. 전부 수도권에 직장을 잡으려 발버둥 친다. 심지어 인터넷에 종종 보이는 벨런스 게임엔 <중소기업 서울 연봉 3,000만 원 VS 지방 연봉 5,000만 원>을 했을 때 놀랍게도 80%가 넘는 사람들이 전자를 선택한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서울공화국이다. 본인은 원룸 살면서 서울에는 어떻게든 와야 하고, 아파트 안 살아도 된다, 집 없어도 된다 혼자 정당화하고. 시골 촌에는 인력이 없어 노인 아니면 외국으로 다 채워져 있고. 얼마 전 후쿠오카에서 만난 친구도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데 본인을 제외한 모두가 외국인이라고 했지 않나. 이게 온라인에서 보는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이다.
심지어 일은 안 하면서, 사업할 거라며 허풍과 허세에 빠져 보통 직장인들을 무시하기 바쁘며, 월 300을 아주 우습게 본다. 그러면서 우울하다 징징대고 주식, 부동산, 코인투기로 한탕을 노리는 나라. 이런 현대인의 암울함을 자기 암시의 잣대에 들이대면 결국 종점은 하나뿐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이 철학으로는 모든 개개인의 목표와 꿈의 최종 목적지는 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희망 없고 암울한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 암시로 독창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꼭 나만 할 수 있는 것 아니어도 된다. 실제로 그런 건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하든 본인보다 그 분야를 잘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좀 더 미시적이고 깊게 접근해 보면 된다. 가령 예를 들어 홍보와 PR에 관심이 있다 하자. 하고 싶다면 어떤 분야, 어떤 홍보를 하고 싶은지 가령, 옷을 좋아해 무신사에서 독보적인 홍보 마케팅을 기획해 본다거나, 커피에 관심 있어 커피원두를 로스팅하는 걸 마케팅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좁혀가 보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라고 해보자. 회사의 홍보팀이라고 하면 평소에 관심 가졌던 CSR에 대한 홍보일 수도, 언론보도에 관한 홍보일 수도, 기업문화에 대한 홍보일 수도 있다. 만약 유튜브를 한다고 해도 똑같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면 보통사람이 잘 안 하는 본인만의 독백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고, 본인의 철학을 소개할 수도 있고, 성격이 아웃고잉하면 인터뷰를 해본다거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본인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자기암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자기 암시를 하기 위해서는 평균이상의 지능과 거시적, 미시적 관점에 대한 정확한 통찰, 시간을 두고 계획하는 본인만의 상세한 철학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당연한 거다. 아무나 그런 생각했으면 모두가 다 성공했게? 좀 더 말하자면 본인의 그 철학을 행동에옮길 수 있는 육체적인 체력과 정신적 건강, 마지막 운까지 작용해야만이 본인이 그리는 종착지에 도착한 본인의 모습이 된다. 하나라도 빠지면 현실적으로 본인이 그리는 모습보다는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바로 이때 자기 암시가 필요한 거다. 좀 더 현실적으로 (안 될걸 알면서도)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스스로 될 수 있다고 암시를 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두 가지가 있는데, 이렇게 본인을 침대에서 일으키는 자기 암시가 없으면 목표가 공중에 떠있고, 점점 담배연기처럼 희미해진다. 꾸준함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두 번째는 모든 분야의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상세한 이력이다. 예를 들어 ‘난 이걸 하는 사람이야’라고 거기에 대한 노하우를 알리고 싶은데 그 분야에 대한 그 어떤 이력이나, 관련 없는 두리뭉실한 일만 해왔다면 신빙성이 한참 떨어진다. 어느 누군가가 본인의 관심분야에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배우고 싶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걸 증명할수 있는 것이 결국 구체적인 본인의 분야의 전문성이다. 이건 늘 바뀌기 때문에 쉽사리 정하기가 어렵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니, 집 앞 분식집도 저번주는 치킨 팔다 이번주는 떡볶이를 파는데 어찌 본인생각이 안 바뀔 수 있겠나.
어떻게 본인의 전문성을 알아가냐. 나는 보통 순서를 정한다. 1순위, 2순위, 3순위. 10년 아니, 최소 3년 후의 본인의 모습을 그렸을 때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것, 행복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건 남들이 권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머리를 망치로 맞을만한 특정한 계기가 있어야만 대개 결정된다. 그 결정적 계기는 본인의 경험이나 책에서 보통 많이 온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어릴 때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없다. 2순위까지만이라도 있는 것이 대단한 거다.
이게 자기 암시를 가장 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이 시대를 잘 살고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