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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10. 2024

행복한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홍그리의 단어들

정답이 없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걸 피드백 삼아 늘 더 나은 결과물을 얻는 데에 희열을 느낀다. 내가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어떤 풀이 방법을 쓰든 그것이 누군가는 창의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가령 정답이 5인데 6이라 하면 그건 잘못되고 틀린 거다. 이게 내가 싫은 포인트다. 정답이 아니면 빨간 펜으로 줄을 그어버린다. 다른 답을 적은 사람은 잘못된 것 같다. 그래서 늘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나서는 그 빨간 줄을 이어 별표모양으로 만들곤 했다. 그러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근데 글쓰기는 달랐다.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할 때면 내가 어떤 글을 쓰든 담임선생님은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어쩔땐 혼을 내시고, 어떤 날은 위로와 격려를, 어떤 날은 칭찬을 해주신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피드백이 나는 기다려졌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좋다. 의견이 서로 다를지언정 틀림이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내 생각을 얘기하면 그뿐이다. 그럼 세상은 다양한 의견의 합치 속에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도 늘 그래왔다고 믿는다.


누군가 내게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든 글에 넣고 싶고 보고 싶은 단어를 떠올려보면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결국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오히려' 다.  이 세 단어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평생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단어다. 특히 요즘 같은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혹은 스스로에게 희망을 불러올 수 있는 단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적 의미는 '비록 사실을 어떠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지금 현실은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에 맞닥뜨렸지만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신념으로 어떤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보통 뒤에 어떻게든 상반되는 말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앞이 부정적이었다면 뒤엔 긍정, 뒤가 긍정적이었다면 앞이 부정문이 오는 식이다. 앞이 부정적인 상황이 왔다면 어떻게든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고자 하는 것, 꿈꾸는 것을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숭고한 정신이 돋보이는 단어다. 나도 이때에만 이 단어를 쓴다. 그래서 참 좋다.

'00은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00은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다'

처럼, 사실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빼고 사용해도 무방하나, 붙이면 글쓴이의 더 강한 의도를 드러낼 수 있다.영어 ‘Nevertheless’나 ’in spite of‘처럼 번역투로는 한국어의 의미전달을 100% 하기 어려워 두 개의 단어를 하나로 묶어 관용구로 자리 잡았다. 보통 관용구는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 때에만 정해지는 편이다.

우리 삶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당장 5분 뒤에도알 수 없다. 이번에 발생한 시청역 참사만 봐도 그렇다.‘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는 이 아무도 예측할 수없는 인생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본인에게 있다는 걸 암시하는 단어라 마음에 든다.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바라는 꿈, 목표, 환상은 대개 진부하다. 하지만 세상은 보다 더 진부하다. 어떨 때는 이 진부함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왜냐? 이 세상 대부분의 일을 굳이 확률로 따져보자면 진부한 게 7 정도고 좋은 일, 행복한 일은 3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지속적인 고통 속에 간헐적인 행복만 따라올 뿐이다. 그 작은 3을 위해서 7을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암시가 필요한데 그게 이 단어다. 그 진부함에, 그 고통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전전긍긍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힘을 주는 단어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허들을 없애주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서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과 내 행동뿐이다. 타인의 생각과 평가, 천재지변, 날씨, 자연의 움직임, 전쟁, 국가 정세나 경제상황 이 모든 것은 외적변수일뿐. 외적변수가 바뀌어도 그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다리 하나만 놓아주면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어떻게든 영원한 것은 없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찰나의 순간일 뿐, 언젠가 다 지나간다.


두 번째는 '어차피'다. 어차피(於此彼)는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한자어다. ‘이렇든, 저렇든~’ 이란 뜻이다. 뭘 하든 상관없다는 것. 답은 대개정해져 있는 상황이니 무슨 행동을 하든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상관없을 때 쓰는 단어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매사에 매달리기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마음이 편하다.

가령,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 '어차피 지금 해도 안될 일', '어차피 헤어질 사이', '어차피 의미 없다'처럼 결국인생은 내가 원하는 뜻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매일 갈림길을 마주하는 일상,  이미 벌어지고 선택해 버린 길에서 초연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긍정적으로생각하게 해주는 단어다. 그래서 좋다.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아니, 어차피 그렇게 될 거였으면 왜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어차피'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게 더 좋은 것 아니냐고. 근데 그 과정에서도 배운 게 분명 있다. 어릴 적 한 달에 3만 원 내고 선생님 집에서 신문사설에 본인의 생각을 쓰는 연습을 했는데 어느 한 날은 집중을 못해 적을 내용이 없어 망설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용 이해가 어려우면 억지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일기라도 써서 어떻게든 분량을 다 채우라고 하셨다.  다 채우지 않으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당시는 선생님의 고집처럼 보였던 그 경험도 생각해 보니 지금 어떤 주제가 와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쓸모없는 경험과 지식은 없다. 그 쓸모를 내가 찾으면 된다.


마지막은 ‘오히려‘다. 오히려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 ‘. 자기 암시의 마침표를 찍는 단어다. 내게 어떤 일이든 잘 된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내 인생 롤모델은 노홍철이다. 그는 본인이 하고 싶은걸 모두 다 이뤄내면서 산다. 스위스에서 집을 빌려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구독자와 부산 어묵투어를 하고, 북극에 가고, 카페를 차리고, 유튜버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머릿속에 생각한 걸 모두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는 여행 중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좋다는 말을 했다. 여행 중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도 오히려 감성적이고 좋다고 했다. 그 긍정마인드는 여행을 더 빛나게 했고, 함께 여행하는 주변사람들도 행복하게 했다. ‘오히려’라는 단어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단어라 참 좋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매일 불평불만에, 타인과 세상에 탓을 돌리고 비관하는 사람에겐 절대 기회가 주어지지않는다. 지금 내 삶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오히려 좋게 흘러갔다. 순간순간 좌절했던 일도, 길게 보니 내게 맞는 일과 환경을 찾기 위한 작은 성장통정도 그뿐이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는 건 내가 행복해지는 암시를 하는 데 이렇게 큰 역할을 한다.


글을 쓰고 읽는 여러분은 어떤 단어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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