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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18. 2024

도파민, 얼만큼 중독되셨나요.

익숙한 것의 매력도

친구의 아들과 밥을 먹는다. 이제 두 돌이 갓 지난 애기는 이런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늘 떼를 쓰며 운다. 이럴 땐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면 기가 막히게도 울음을 그치고 온 정신을 거기에 집중한다. 친구 부부는 집에서나 평소에는 절대 보여주지 않고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한단다.

우리 모두가 안다. 이런 36개월 미만 아기에겐 유튜브 영상이 독이라는 걸.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무언가를 습득하는 데 있어 예를 들어 책은 활자가 전두엽으로 가 사고작용을 해 능동적인 상상을 이끈다. 반면 영상은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 전두엽이 깨어날 여지가 없다. 그저 수동적이고 단순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도 똑같다. 책 읽는 것보다 유튜브 영상 보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내가 직접 읽어 내려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아기의 상황을 우리에 빗대어보면 결국 도파민으로귀결된다. 술이 나쁘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계속 먹는다. 충분한 옷과 신발이 있는데도 늘 새로운 걸 사기 위해 쇼핑몰을 들락거린다. 즉, 도파민은 일종의 보상시스템으로, 인간의 만족감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뇌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근데 이 도파민을 언제 느끼는지를 보면 이 아기처럼 익숙한 것이 아닌 늘 새로운 것에서만 대체로 느낀다는 것이다. 더 새로운 것을 자극적으로 인식하며 거기서 행복을 느낀다. 새로운 옷, 신발, 사람, 그리고 경험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축적된 옛 경험의 중요성은 하나둘 퇴색되며 인간은 나날이 더 새로운 것이 없는지에만 혈안이 된다.

사업도 마찬가지. 기업은 타업체보다 늘 더 새롭고, 자극적이며 빠르고 트렌디한 걸 상품을 내놓으려 근로자들을 갈아넣는다. 쿠팡배송에 이기기 위해 네이버는 주문한지 한시간만에 상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결국은 이 늘 새로운 것이 본인을 갈아넣는다는 걸 모른 채. 그냥 전세계 모든 것이 이 ‘새로운 것’에 사활을 건다.

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게 본인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멈출 수가 없다.

절대 누가 뭐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왜? 왜냐하면 일종의 담배처럼, 마약처럼 그렇게 도파민에 이미 절여져 중독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경험했고 한번 맛본 건 너무 지루하거든.

원래 똑같은 걸 반복하는 데에 인간은 굉장한 노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평소에는 가지지 못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수능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재수, 삼수를 하는 사람, 전문직 자격증에 재도전하는 사람,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똑같은 기회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 한 번도 직종을 바꾸지 않고 정년퇴직하는 이 세상의 아빠들, 자녀를 낳고 둘째, 셋째를 가짐으로써 또다시 그 힘든 육아를 선택하는 엄마들이라던가, 하물며 한낱 여행을 가도 같은 장소를 두세 번 가는 사람들까지.

이들은 오랜 인내심과 관심 그리고 노력으로 이뤄진 이 익숙함이 새로운 도파민보다 본인에게 더 값지다는걸 안다. 유무형의 본질을 떠나 늘 New만 쫓는 것보다익숙함 안에서의 또 다른 새로움을 이들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겐 이런 친구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가자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거기 저번에 갔는데 또 가서 뭐 해”

여행을 가려고 하면,

“거기 여행 저번에 갔다 왔는데 또 가서 뭐 해. 새로운 곳 가자”


여행을 가든, 산책을 가든 자주 가는 그곳에서의 반복경험은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 안 보이던 새가 보이고,새로운 영감이 있고, 예상에 없던 이벤트가 생기기도 한다. 그 여행지는 경험하는 순간 또 다른 매력을 그렇게 선사한다. ‘동일함’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본인이 경험하고 있다는 ‘ing’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늘 중독되어 있던 도파민이 엔돌핀으로 변화함을 몸소 느낀다. 스스로에게 술과 영상, 담배 같은 부정적 도파민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다.

한낱 가죽구두 하나를 신어도, 향수를 뿌려도, 시계를 차도 내게 딱 어울리고 맞는 게 있다. 아무리 누군가 이쁘다고, 꼭 해보라고 추천해 주는 게 나한테는 필요 없거나 안 맞을 때가 있다. 그게 다 아무리 비싸고 값진 들 결국 본인 인생엔 가짜들이다. 이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은 본인이 원하고 바라는 것에 집중하게 해 주고,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한다.


누군가는 매일 테니스를 배우라고 한다. 누군가는 매일 내게 골프를 배우라고 한다. 이를 하루빨리 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 혹은 나이가 들었을 때 후회할 거란다. 노년에 인간관계 유지를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나 뭐라나. 근데 그게 본인과 맞지 않고, 도파민은커녕 낭비라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애초에 돈과 시간은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해봤자 후회뿐이다.

이젠 새로운 도파민보다 익숙한 것에서의 엔돌핀, 이 편안함이 삶을 더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만들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 물론 남들이 해 본건 해보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그렇게 다수가 같은 얘기를 하는 건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그 조언은 그만한 선택지가 그거 말곤 많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고, 본인만의 다른 걸 찾았다면 거기에 익숙해지면서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면 그뿐이다. 공부를 잘해야만 살아남는다라던지, 20대 땐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 어학연수를 가야 하고, 연애를 많이 해봐야한다라던지, 30대 초반에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 라던지, 30대 후반까진 자녀가 몇 이상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가 정한 원론적인 정답에 매몰돼 새 퀘스트를 깨듯 접근하지 않고, 본인만의 익숙함을 이젠 찾아야 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 그 취향이 각자의 개성과매력을 결정짓는 미래의 핵심 키가 된다고 본다.


“이거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요즘 주변에서 내가 실제로 꽤 듣는 말이다. 남들에게도 듣지만 내 스스로에게 자문할 때에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최근 이 자체를 경계하려 노력을 많이 한다.

왜냐. 나이가 들면서 보이는 것이 모두 다르고 특별해 보이나 사실 결국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비슷한 걸 경험하면서 그렇게 산다. 또한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안 해본 것보다는 해본 것이 많아지기에 같은 경험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40대를 지칭하는 ‘불혹’만 봐도 그렇다. 그 어디에도 혹하지 않지 않나.

이런 생각은 자칫 인생에 허무와 공허를 낳고, 모든 것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불상사를 낳는다.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그것만큼 무서운 게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건 영혼이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살다 보면 좋은 차, 좋은 집, 주변에 좋은 사람들, 돈이나 주식, 직업,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결국엔 변하는 부수적 성격의 주체임을 깨닫는다. 결국 본인의 가치관만이 변화하는 것들 사이에서 올곧은 형태로 남게 하는데, 새로운 도파민에 취하지 않는 이 태도가 오늘날, 각자의 가치관에 꼭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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