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과 몰입노동에 대하여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조선업이 난리다. 또 방산산업, 그리고 현대차, SK하이닉스 반도체 등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강점을 보인 산업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같은 산업군인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회사 임원들이 주말에 출근하고, 이례적인 사과문을 내놓고,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게 비단 움직이는 세계 경제와 트렌드만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나의 산업에서 누군 망하고, 누군 잘 나가고. 같은 환경에서 다른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역량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건지를 들여다본다.
온갖 불황이라는 뉴스 속에서 낙담하고 한숨을 쉬기보다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은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브잡스나, 일론머스크 등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몰입을 중요시하며 실천해 왔다. 오늘은 수능이다. 모든 수험생이 각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 속에서도 나는 내심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그중에서도 몰입과 집중력이 뛰어난 이들이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오래 앉아 있는다고 될 문제였으면 학교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을 것.
매사에 모든 것이 이렇다. 하나의 목표를 설정했으면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결국 몇 시간, 몇 퍼센트를 '몰입' 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앞서 말한 일론머스크나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가가지지 않은 집중력을 가졌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량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아주 짧은 순간에만 각자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 짧게 몰입한 시간에 거의 모든 결과물이 나온다.
축구선수를 예로 들어보겠다. 리오넬 메시는 경기를 하는 90분 동안 60분이 넘는 시간을 거의 걸어 다닌다. 그리고 운동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폭발적인 집중력과 몰입력으로 득점을만든다. 한 번이라도 메시의 골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슈팅력이 세지도 않고, 그냥 굴러갈 정도로 차는데 들어가는 골도 많다. 그게 진짜 몰입이다. 오로지 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 나머지는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걷는 거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는 이처럼 매 순간 뛰어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얼마나 '골 결정력'이 높은지에 따라 발탁된다. 전체 경기 플레이가 안 좋았든 골 다섯 골 넣으면 아무도 뭐라 못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쓰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글이 다 써져 있다. 이것도 짧은 순간에 내가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말에 대해 몰입한 것이다. 입시나 고시공부를 할 때 순공부시간을 타이머로 체크하는 것과, 대기업과 같은 곳에서 담배도 못 피고 화장실도 못 가는 집중근로시간을 만드는 것도 같은 논리다.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책상에 앉은 열 시간 모두 집중을 못한다는 것과, 회사 근로시간 8시간을 전부 일에만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을. 휴식은 무조건 필요하다.
자, 그럼 몰입의 중요성은 이만하면 됐다. 그러면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다. 먼저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실행해야만 한다. 이건 사실 당연한 거다. 몰입하고 싶은 대상을 찾지 못했다면 백날 중요성을 얘기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 부연설명은 하지 않는다. 다음은 몰입시간을 늘리기 위해 전체적인 시간, 파이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이게 키포인트다. 한 시간 몰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 정도는 책상에 앉아 있어야 최소 한 시간은 몰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몰입은 어쨌거나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책상에 앉는다고 해서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본인 분야에서 성공한 대부분 사람들도 이를 공감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결부시켜 보면 주 52시간 근무제의 허와 실이 가장 먼저 보인다. 과연 52시간의 일률적인 규제 안에서 우리는 근무시간에 있어 몰입하고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까. 모두가 위기라고 하는 이 상황에서 개개인의 워라밸 챙기고, 삶의 질을 높인다고 과연 이 나라가 더 부강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의문이 든다. 결국은 개인이 몰입경험이 많아야 조직에 창의성이 생기고, 그 조직이 많은 나라는 힘이 생긴다. 미국처럼.
52시간 근무제도 자체를 애초에 왜 만들었나. 당시 주 52시간은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근무시간이많아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규제를 적용한 것이다.
근로 시간 1위는 멕시코, 2위는 한국. 나는 멕시코에 2년간 살면서 이를 절실히 느낀 것이 이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일요일만 보고 산다. 주 6일은 기본이고, 집과 일 두 가지밖에 삶이 없다고 보면 된다. 여행을 갈 시간이나, 개인 여가시간을 즐길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며, 근로자의 권리나 보호 자체가 미비하기 때문에 이를 어길 수도, 큰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이를 반면교사삼아한국은 이렇게 되지 말자고 법으로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전자 주가를 봐라.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고, 외국자본은 다 빠져나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더더욱 강한 나라만 살아남는 약육강식 사회가 됐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세가 펼쳐질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삼성전자라는 이 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이 상황에, 반도체산업을 국가산업으로 보호해야 할 이 위기상황에 정률적인 52시간 제도의 개혁얘기가 없다는 건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변수는 많다. 52시간 규제를 풀면 개인의 삶은 더없어지고, 직장생활은 더 수직적으로 변화할 것이며, 서로 눈치 보고 야근을 일상화하고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물론 다른 방면으로 돈 더 벌어서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부작용과 예상치 못하는 병폐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 근데 이런 거 다 챙기면 안주밖에 더 되나. 어쨌든 정책이나 나아가고자 하는 이 나라의 방향은 개인과 사회를 윈윈 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 몰입을 얘기한 것이다. 몰입노동을 경험한 자는 프로젝트나 본인의 과업에서 월등한 퍼포먼스를 낼 것이고, 나아가 그 조직과 국가는 산업경쟁력을 가지는 데 이바지한다.
근로자가 더 일해서 사업이 잘되길 바라는 사업주와, 본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근로자의 시차. 그리고 일을 더 한다 해서 몰입노동을 경험하는 수가 정률적으로 늘어나고 산업경쟁력이 강화될 거라는 원론적인 예측.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사회도, 이 국가도 '균형'을 답으로 이미 정해놓은 이 풀리지 않는 숙제 앞에선 부족한 것이 보인다.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에서 그런 천재들이 나오는 데에는 그들의 성취감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사회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주되, 몰입노동으로 개개인이 성취를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기반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본다. 그게 개인과 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꽃이 피기 위해선 아낌없이 물을 줘야 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일단 씨앗을 뿌려야 한다. 겨울에 배고프고 춥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가을에 곡식과 방한복을 준비해야 한다. 경쟁국을 차치 하고라도 근데 우리는 지금 조선업과 반도체, 국가기반산업을 지키기 위해 지금 어떤 씨앗(제도)을 뿌려놨나. 어떤 물을 주고 있나. 이 피할 수 없는 난제를 더 이상 회피하느라 시간을보내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