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지를 만든다는 것
현대인에게 빠질 수 없는 덕목을 하나 꼽자면 나는 가장 먼저 절충이 떠오른다. 삶에서는 어느 정도 여지가 필요하다. 직장인이나, 학생이나, 청년이나 모두에게.
어릴 때 좋아하는 이성친구에게 몇 번이나 고백한 적이 있다. 비참했던 어릴 적 짝사랑으로 기억된다. 열 번넘게 고백하고 따라다녔는데 결국 차였다. 비록 당시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일곱 번, 여덟 번째 그 여자 아이는 한 번쯤은 뒤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정확한 행동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아이가 내 남자친구가 될 자격이 있나?'를 봤지 않았을까 한다. 그녀도 본인의 이상형의 기준을 두고서도 고집을 피우지 않고 한 번쯤은 뒤돌아 여지를 준 것이다. 그게 상대에게는 고통일 수 있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본인의 상황이나 가치관의 절충안을 어쨌든 찾아보려 애쓴 것이다.
어릴 적 연애 말고, 20대 30대 사랑은 더 가관이다.
실제 소개팅을 가보면 본인 수준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기준을 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키, 외모, 자산, 노후대비, 몸매, 직업, 성격, 사는 곳까지 이 모든 게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연애를 할 수있다는 논리다. 물론 사랑에 있어 당연히 이성관계는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법이다. 사람은 늘 성장의 욕구와 인정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본인보다 못하다면 결혼을 굳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중에 최소, 아니 2~3개만 본인이 포기할 수 없는 걸 골라야만 결혼할 수 있다. 아니, 결혼까지는 아니라도 최소 사귈 수 있다.
이처럼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대부분이 왜 실제 최종목표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돈만 버리는지를 살펴보면 결국 본인의 기준을 끝까지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Plan B라고 주로 말한다. 좀 더 우발적인 사태 혹은 미래에 있을 비상사태를 대비할 땐 ‘Contingency plan’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도 늘 강조해 왔는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결국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라는 것이다. 내가 A에 투자했을 때 A가 폭삭 내려앉으면 내 자산은 그와 정비례하게 폭삭 줄어든다. 반대로 늘어나면 당연히 늘어나겠지만, 현금을 비축하지 않고서야 바로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투자대상 혹은 포트폴리오를 무한급수대로 늘린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위험의 감소폭은 줄고, 새로운 자산을 편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꼭 돈뿐만이 아니다. 가령 내가 이번 학기 휴학을 하고 전문직 공부를 시작하는 상황이라 해보자. 또 다른 옵션을 넣으면 알바를 해야 하고, 여행을가고, 공부까지 한다고 했을 때 핵심적인 본인의 본래 목표가 사라지고, 그걸 모두 이루는데 시간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럼 어떤 일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에 늘 언제든지 많든, 적든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할까?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삶이 넉넉한데 미리 다른 대안을 남몰래 준비해 둬야 하나? 언제든 수가 틀어지면 도망칠 수 있도록?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어떤 경우의 수든 현재를 방해하지 않는 한 과하지만 않다면 바람직하다. 무작위로 많은 대안은 앞서 설명했듯 내 노력과 시간, 경제적 비용이 증가하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으나 이를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본인의 '핵심정체성'을 잃지 않는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다. 즉, 매사에 절충안을 마련한다는 조건은 무언가를 굳이 버릴 필요가 없을 때 현재 환경에서 최대한 함께 끌고 가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선택이어야 한다. 억지로 굳이 의무감을 가지고 만들 필요도 없다. 굳이 버릴 필요가 없을 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를 보는 데 수시면접으로 서울대/연세대가 일정이 겹쳤다 해보자. 당연히 연세대를 버리고 서울대를 갈 것이다. 이는 일정이 같다는 선택지가 결국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연세대라는 하나의 옵션을 버려야 한다. 취업 면접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면접일정이 같다면 당연히 하나를 버리고 급여/안정성/직무적합성 등을 모두 고려하여 본인이 조금이라도 더 원하는 곳에 하나를 버리고 면접 보러 갈 것이다.
자, 근데 취업이 요즘 많이 어렵다. 나 때도 그랬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취업이 쉬웠던 적이 없다.
대기업을 취업준비 중인 한 취업준비생 A가 있다. A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 경우, 대기업 준비는 확률이 낮기 때문에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함께 공기업 경영학 시험준비를 할 수 있다. 이런 게 절충이라는 이라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핵심 정체성'을 잊지 않은 채 내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내가 한쪽으로 치우친 균형 잃은 선택의 경험으로 얻은 시사점이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겠다.
대학생 때 학교 안에 있는 스포츠센터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포츠센터는 학교 안에 있었지만 교외 근로로 분류되어 시급이 높았고, 수영이나 헬스를 무료로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나는 근로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늘려 무리해서 돈을 벌고자 했다.시험기간에는 무리한 일정 탓에 공부를 하는 데 피곤이 쌓여 목표했던 학점관리를 하지 못했다. 물론, 돈은 많이 벌었다. 근데 이때 집 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 돈을 벌러 온 건가, 공부를 하러 온 건가?'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내는데 현타가 왔다. 전형적인 목표의 핵심 정체성을 잃은 선택지다.
미국에서의 인턴 회사를 선택할 때에도, 스페인어를 배울 국가 멕시코, 콜롬비아 중에서 고민했던 경험들 모두 조금이나마 내 당시 상황에서 좀 더 큰 가능성을 열어두는 선택을 했다. 매사가 그렇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사실 동일한 원리다. 작가가 글 하나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글 하나로는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출판사 투고 이외에도 신문이나 칼럼에 기고를 할 수도 있고, 인터뷰할 수도 있고, 커뮤니티에서 강연을 할 수도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독서모임을 할 수도 있고, 본인의 글을 레터로 발행해 유료로 보내기도 한다. 가끔씩 쓰기 싫은 글을 제안할 때에 마지못해 수용하기도 한다. '작가' 하나의 직업에도 이렇게 수많은 선택지를 만들어 인생에 절충안을 찾을 수 있다. 저 위의 모든옵션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작가라는 정체성을 잃는 것도 아니고, 꿈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경제 관련 인플루언서가 있다고 해보자. 본인의 전문성에서 영역을 넓히고자, 연예계 관련 소식도, 해외축구 소식도 추가했다고 하자. 슈카월드가 해외축구 중계를 하는 꼴이다. 자, 구독자가 더 늘어나고 팬덤이 더확장될까? 장담컨대 대부분이 그 인플루언서를 떠날 것이다. 왜? '핵심정체성'을 잃었거든. 그 정체성만 잃지 않은 채 저울질을 하듯 그렇게 아슬하게 여러 방면에 걸치면 된다.
예전같이 한 가지 목표만 보고 놓지 않고 백날 달려 나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포기도 용기고, 그 포기를 근사하게 포장한 것이 균형, 즉 절충안을 찾는 것이다.
왜 이런 관념이 더 짙어지는지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이가 들면서 이 선택지는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지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게 이 기회가 온다는 확률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자 포기할 건 포기하고, 기회가 올만한 곳에서의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그 기회를 만드는 방법을 우리는 매사에서 배우고 있다. 인생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든, 지식함양이 되든,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든 무엇이든 함께 가는 쪽으로 가야 한다.
경제와 나라정국이 이렇게 힘든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아집과 고집으로만 현실을 버티기에는 우리는 너무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되냐. 한없이 조급해진다.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으로 다른 무언가를 새로 도전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시선을 밖으로 서서히 넓히면 선택지들 속에 서서히 진짜 원했던 하나의 선택에 대해 더 확고해진다. 절충을 해봤기 때문에 가치관이 제대로 자리 잡아 그 이후엔 다른 선택지에 대해 완곡한 거절과 제거도 쉽게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후회라는 감정이 솟구칠 수 있다. 후회는 마치 머랄까. 불순물 같은 것.
회사로 치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그런 아저씨 같은 것이다. 조금 지나면 그 본래의 물질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고인 물로 결국 남게 되는 거라, 어떻게든 빨리 해치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되풀이될 리 없으며, 아무 대책 없이 모두가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빨리 이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 생각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
후회라는 감정이 돌아온들, 그래도 지난 절충의 시간 그리고 확고했던 인고와 선택의 시간이 존재했기에 그후회를 빨리 벗어던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더 강해진다. 후회가 왔다한들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냥 벗어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기에. 그냥 날씨 같은 거다.
한 신혼부부가 있다. 돈이 없어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악착같이 일 년간 일만 했다고 가정하자. 일 년 뒤 이들에게는 여행도 한번 못하고 일만 해서 아무런 추억하나 없다며 신혼생활의 후회만 자리할지 모른다. 자, 근데 반대로 신혼 일 년간 여행만 다니고, 돈을 있는 대로 다 쓰고 놀러만 다닌 부부가 있다고 하자.일 년 뒤에 그들은 한 푼도 모으지 못한 그들 스스로를 후회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후회는 온다. 그건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고, 회사 합격했다고, 승진했다고, 자격증 합격했다고, 결혼했다고, 다 끝이 아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깊은 고뇌가 자리한다. 왜? 그 가진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인은 더 견고하게 지켜내야 하거든. 그럴수록 조금이라도 이 고뇌를 빨리 떨칠 수 있도록 본인에게 더 합리적인 선택지들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