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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천만 원 수익이야. 넌?

내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들

by 홍그리

그 어떤 가게에 가도 사장님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동일하다. 바로 손님이다. 생존과 직결되는 매출을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 물론 비정상적인 사람보다는 정상적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손님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악용한 블랙컨슈머가 최근 나날이 증가중이다. 자영업자들의 기피대상 1순위다.

숙모는 고향 울산에서 설빙을 하시는데 매주 최소 3명 이상은 블랙컨슈머를 만난다고 한다.

어느 날, 환불요청이 들어왔다. 이유를 조심스럽게 묻자,

포스터 사진과 달라서요


포스터에 있는 빙수 사진과, 실제로 받은 빙수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환불요청을 한 것이다. 당연히 포스터에 있는 빙수 사진은 화질 좋은 카메라, 사진 찍기 좋은 플레이팅, 조명, 그리고 마지막 보정까지 했기 때문에 그런 사진이 나온 것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점주에게 말 그대로 해코지를 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이 블랙컨슈머는 받으신 빙수의 사진을 요청하자, 제품을 이미 1/3 정도 먹은 상태였다고 했다.

그런데 숙모 즉 점주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제품으로 바꿔줄 수밖에 없다. 왜냐? 안 바꿔주면 바로 리뷰 테러하거든. 1점 남기면 점주입장에서는 타격이 크기 때문에 일일이 다 전화 돌려서 서비스 주고, 삭제요청해야 한다. 그런 식이다.

자, 그럼 이 분은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원래 성격이 더러워서? 까다로운 성격이라서? 부당하게 본인 이익을 취하고, 상대에게 악의적으로 피해를 주려는 이기적인생각 때문이다. 본인만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내 직장이, 내 사업이, 내 가게가 어떻게 되든 그 사람은 무슨 상관인가.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소위 알빠노다.


회사원, 공무원이라고 또 다를까? 공무원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분야. 바로 민원이다. 이 악성민원은 당연 방문과 동시에 디폴트값이 되어 무조건 걸고넘어진다. 이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대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은 본인이 누려야 한다는 그 당연한 권리보다 상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려 불행하게 만들고자 하는 신념이 더 크다. 얼마 전 동사무소에 서류를 받으러 갔다가 더 절실히 느꼈다. 특히 노년층들은 목소리부터 발성자체가 다르다.

우리가 이어폰을 끼고 말을 하면 주변의 소리의 높낮이가 파악이 안 되어 간혹 크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 등 침묵해야 하는 곳에서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것과 같은 논리다. 그들은 실제로 잘 안 들리기도 하거니와, 본인부터가 그들의 세계에 갇혀 상대에게 윽박을 지르고 마음대로 안 풀리면 악성민원을 넣는 식이다. 공무원 그들은 죄가 없다.


회사원이나 조직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왜냐고? 본인 욕을 할 거거든. 오늘 A와 점심을 먹는다 치면, A와 같이 B욕을 한다. 내일 B와 점심을 먹으면 함께 A욕을 한다. 그들 둘이 밥을 먹으면 내 욕을 한다. 회사생활이 그렇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본인의 영역, 그 영역은 승진이 될 수도 있고, 직책이 될 수도, 업무의 중요도가 될 수도 있다. 그 본인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본인의 영역을 단기간에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본인과의 비교대상을 모두 낮추면서 본인을 돋보이고자 함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 늘 말하는 것이 말을 아끼라고 한다. 그게 표적이 되고, 좋은 먹잇감이 되니까. 특히 본인의 고민이나, 약점은 절대 얘기하면 안 된다. 겉으로 그들은 본인과 같은 편에 있음을 안심시킨 뒤 위로를 해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정보가 새나가 제삼자에게 본인이 그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속으로는 걱정은 무슨, 오히려 극단적으로는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간이 남을 때 종종 보는 커뮤니티에서는 재테크/금융 카테고리에서 주식이 됐든, 부동산이 됐든, 코인이 됐든 수익인증을 할 수 없다. 무조건 손실인증만 가능하다. 수익이 났다는 걸 올리자마자 그 커뮤니티장은 그 대상을 영구적으로 탈퇴시킨다. 애초에 이 커뮤니티에 이런 규칙이 왜 만들어졌냐는 당연히 이를 만든 그 커뮤니티장만 알고 있다. 하지만 추측컨대,

수익인증을 올리면 불특정다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커뮤니티 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염려차원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손실인증을 보고 나면 사람들이,


'아, 나만 돈을 잃는 게 아니구나'

'주식이란 건 참 무서운 거구나'

'지금은 잃었지만, 더 열심히 모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아, 이 사람도 잃었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 친구 중에도 본인의 주식을 늘 캡처해 자랑하는 친구가 있다. 몇 개월 만에 8천만 원을 벌었단다. 물론 본인도 이때까지 주식을 하며 손실을 본 적이 있다.

근데 손실 본건 절대 인증 안 한다. 왜? 쪽팔리고 진 거 같거든. 그냥 진심으로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고 싶었던 것일 수도,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 수도, 본인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얻고 싶었던 것일 테다. 친구니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원래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일이 과연 내게 생겼을 때에는 수많은 소음 속에서 겸손과 평정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금세 잃어버릴 것만 같다. 질투와 시기를 감내해서라도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진다. 이걸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누군가는 이 질투와 시기가 생존본능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본인을 억까(억지로 까내리고)하고 망하길 바라는 심리는 영화관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와 같다고. 그래서 오히려 건강한 것이라 한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한다. 누구는 부정할지 몰라도 현대인의 90%는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 꼭 남의 불행이 아니더라도 큰 관심밖의 문제라 치부하는 세상. 본인만 잘 풀리면 그뿐인 세상. 그래서 세상은 더 춥고, 건조하고, 적적하고, 스산하다. 가족도 등지는 세상에 내가 잘됐을 때 진심으로 나만큼 기뻐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있다면 그건 축복받은 삶이다.


이런 삶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더 잘돼서 복수를 해야겠다’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최고의 복수는 본인이 더 잘돼서 상대방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첫회사를 그만두고 그런 상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나중에 더 좋은 회사 가서 당당해져야지. 근데 실제로 더 연봉을 많이 받고, 잘 풀리고 나서 모임에 가서 꽤 충격을 받았던것이 그들은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연봉이 얼만지,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보다 얼마나 더 잘났으며 그냥 관심자체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만 바라봐주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내가 더 잘되겠다는 그 마음 자체도 어쩌면 ‘샤덴프로이데’를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과 비교해 내가 더 얼마나 1이라도 잘 되겠다는 마음보다 단 1이라도 각자의 내 사람들의 불행에 진정성 있는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 왜냐. 삶은 어차피 고통의 연속이다. 기쁜 날보다 그저 평범한 날, 불행한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차피 그 간헐적인 행복만을 위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똑같은데 그 과정에서 또 서로 까내리고, 헐뜯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무덤을 파는 격이다.

애초에 타인의 좋은 일에 진심 어린 축하를 하고, 불행에 진심 어린 위로를 하는 것. 있는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게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면 나 스스로에게도 스트레스 없고 인생을 꼬아서 볼 일도 없다. 당사자 본인은 반대로 잘 풀렸다 해서 그걸 과하게 자랑할 필요도 없고, 불행을 위로받으려 떠벌릴 필요도 없다.


이 사회는 돈에 환장해 많은 부분이 결여돼 있다. 영혼 없는 안부문자보다, 내 주식이 오르는 것보다, 억대연봉을 받는 것보다 무안공항 참사 합동분향소에 한 번이라도 가는 게 이 차가운 현대사회가 어쩌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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