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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중간저장이다

저장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by 홍그리

내일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을 미리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기술혁명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의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계획이란 걸 세운다.

근데 그 계획은 하나의 작은 틀에 불과하다. 속은 텅 빈프레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계획은 A가 A1, A2 가 아니라 B나 C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기 않기 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비책에 불과하다. 근데 우리는 그 계획에 대단한 의미부여와 각자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삶을 잘 살고 있는지 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그냥 대비책일 뿐인데.

대부분이 세우는 근사한 계획들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운이 아주 좋거나, 본인의 노력이 최상위거나, 당시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모두 잘 맞아떨어져야만 목적은 달성된다. 심지어 그것이 100%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때껏 내가 경험하고 생각해 왔던 대부분의 삶이 그랬다.

이때까지의 삶이 실망스럽든, 만족스럽든 기뻐할 것도없고 슬퍼할 것도 없다. 실망스러워도 앞으로의 삶에 기대를 걸면 되고, 만족스러워도 미래에 더 신중해야 하거든. 군대 후임이 회사 상사로 마주할 수도 있는 일이고, 회사를 다니다 하루아침에 자영업을 할 수도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꽤나 자주 발생한다.

실제로 연차를 내고 하루 친구랑 놀다가 방송국에 캐스팅이 되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쭉 눌러살기도 한다. 그 경우의 수는 드물다고 반박할지언정, 빈도가 아닌 존재의 유무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는 전혀 다른 얘기다. 내일 복권에 당장 당첨될 수도,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취미가 직업이 될 수도,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 내 이정표가 될지는 조물주도, 신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사촌동생은 미국 석사를 하고자 한국에서 3년을 준비했다. 본인의 전공과 영어공부에만 전념했다. 근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외국인비자취득이 까다로워졌고, 비자테스트를 3번이나 거절당해 또 입학연기를 했다. 인터뷰 1~2분, 질문 한, 두 개로 그 누구도 신경도 쓰지 않는 그냥 간단한 의례적 절차인 비자인터뷰 때문에 본인의 모든 인생계획이 이렇게나 틀어진 것이다. 이를 3년 전 예측이나 했겠는가? 예측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3년을 시간투자하지도 않았겠지.

반려견 스타트업으로 사업성공한 지인은 전혀 다른 산업군에 도전하다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 가 강아지 한 마리를 보게 된다. 거기에 홀려 반려견 관련 일을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돈방석에 앉았다.

그 옆에 공무원준비하던 내 친구는 당시 100대 1을 뚫고 2년간 고시원에만 박혀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근데 지금 경쟁률은 20대 1로 바닥을 기고, 박봉에, 경직된 조직문화에 의원면직이 갈수록 늘어난다. 타 직업군에 비해 전혀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을 그때 예측했을까? 그는 아직도 매우 불만족한 상태로 마치 개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출근한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은 약이라고는 아스피린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근데 그가 생명공학, 약학을 독학하고 지금의 셀트리온을 만든 가장 큰 계기는 본인이 제약산업에 애초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우임원으로 승승장구하다 회사에 잘려 '그냥' 하게 된 거다. 그냥. 회사에 안 잘리고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하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이 외 필연으로 꾸며졌으나 사실은 우연을 가장한 성공스토리는 수도 없이 많다. 입 아파서 얘기를 하지 않을 뿐.


자, 그럼 우리가 지금 이 불확실성 앞에서 지금 당장 할수 있는 건 뭘까. 삶이 이렇게나 자기 멋대로라지만, 최소한 내가 정해둔 오차범위로만 가 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듯하다. 그게 지금 내 노력으로 된다고 했을 때가장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건? 기록을 하는 것이다. 기록은 '중간 저장'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미래는 보지 못해도 이때까지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해 준다. 아무것도 관심도 없고, 취미 없는 사람도본인도 사람인지라 뒤를 돌아보면 어디론가 아주 조금은쏠려있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가령, 주말에 다들 티비보고 쉬는데 나는 사우나를 간다거나. 그럼 나는 사우나를 좋아하고, 사우나로 스트레스 푸는 사람이 될 수 있듯. 본인을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다.

여태껏 쌓아 올린 지식이나 인적자원 그리고 금전적 모든 내 자산이 중간저장 되어있다고 생각해 보자. 너무 든든하지 않을까? 다 무너져도 그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도 훨씬 수월하잖아. 다 기록으로 내가 어떤 사유를 하면서 사는지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책갈피 역할까지 하니,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나를 알아가고 삶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글을 쓴다. 가장 작은 노력으로 최대 아웃풋을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왜 쓰냐고 묻는 무수히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인생 전체를 중간저장할 수 있다는 논리에 가장 큰 힘이 실린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문제해결과정과 예상치 못한 변수에 사유할 수 있는 힘이 누적돼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고, 보다 수월하게 묶여있던 매듭을 풀 수 있다.


현재 회사를 다니는 대한민국 2,000만 직장인들은 공감할 수 있다. 심지어 그중, 임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이거나, 채용 단계가 체계적인 기업의 직원이라면 더더욱. 대기업의 채용시스템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1. 서류전형 > 2. 인적성검사(or AI인성검사) > 3. 필기시험 > 4. 1차 면접(직무, 토론, PT) > 2. 최종면접


이 다섯 단계를 모두 통과해야만 쇼미더머니처럼 합격목걸이를 손에 쥘 수 있다. 그 목걸이는 사원증이 되겠지. 온갖 커뮤니티나 온라인에서 월급 300만 원을 월급쟁이 300 충이니 뭐니 무시해도 그 300을 벌기 위해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 저 단계별 한 단계 한 단계 사이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몇백 명, 몇천 명이다.

자, 근데 내가 만약 4단계, 혹은 5단계 1차 면접,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하자. 그 절망감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자괴감과 절망감이 자리하는 가장 큰 원인은 본인이 준비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자존감을 잃어서도 아니고,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듯 희망고문에 힘들어서도 아니다. 바로 이 힘든 단계를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막막함 때문이다. 근데 중간저장이 만약 된다면 어땠을까? 다시 최종면접만 보면 그만이니 부담이 훨씬 덜하다. 떨어져도 또 최종면접 한 번만 준비하면 된다.

수많은 온라인 게임도 레벨을 올리고, 현질을 해 무기를 사고 하는 게 계정자체가 저장이 되기 때문이다. 계속 리셋이 되면 유저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이 게임에 중독될 수 있을까? 모든 게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중간저장이 돼 앞으로 어떻게 이 캐릭터를 키워갈지 더 발전시켜 나갈지 의욕이 생긴다. 그 길은 글쓰기를 할 때 빛을 발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깊은 사유를 해야만 글이 써지기에.


그래서 오늘도 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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