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004
25.03.11 낙성대 스타벅스
1시 40분, 오후예배 찬양 시작 15분 전이다.
반주자 누나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집에 갔다는 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연락을 받은 것이 없었다. 수차례의 전화는 응답이 없다. 예배 시작 5분 전, 방송실을 담당하시던 집사님이 반주가 가능한 아내 집사님께 가보라 하셨다. 유초등부실에 앉아계시던 집사님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집사님~ 혹시 오늘 반주 가능하신가요?
아, 맞다!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이미 반주자 누나께 대타로 부탁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리더에게 전달되지 못한 사실을 제치고 예배 시작 직전까지 다른 실에서 앉아계셨던 사실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예배에 대한 태도가 다들 왜 이리도 가벼운지. 정죄하는 마음이 너무나 컸다. 여러 해를 함께 교제한 집사님이라 그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오후에 부모님과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깨달은 부분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한 예배를 드렸는가?
좋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신 예배는 무엇인지 솔직하게 돌아보았다. 이 자리에 찬양을 풍성하게 더하는 반주자가 계신다는 사실이 감사제목이다. 사실 예배 자체가 기적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지금 허락된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 그리고 같이 함께 예배드리는 기적을 누리는 것이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한 사실이었다.
나는 너무도 사랑이 부족했다. 집사님은 첫곡의 키가 일반적이지 않아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첫곡을 과감히 생략했다. 찬양시간 시작이 지연되었기도 했고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집사님과 예배를 위함보다 내 마음의 교만이 앞섰음을 안다. 이 사건 직후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감정의 흔들림 없이 찬양을 하게 하셨다. 마음에 어떠한 불편함 없이 자유하게 찬양을 드렸다. 이는 분명 주중의 예배를 위한 기도의 응답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교제 가운데 나의 죄악을 발견하게 되었고 회개했다. 그리고 참 은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런 죄인을 사용하시다니.
예배는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로 예배하게 하셨다. 각자 믿음의 분량이 다르나 한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예배 가운데 이웃사랑이 없었는지 돌아본다.
예배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같이 찬양을 풍성하게 드릴 동역자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함께 예배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