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면 팔리는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올 한 해 장사 시작 후 가장 최악을 맞이한 연말은 20 대중 가장 최악의 해를 보낸듯싶다. 사실 내 20대는 순탄치 않았다. 전문대에 들어가 원했던 공부를 하고 나와보니 세상은 내가 꿈꿨던 이상과 너무나 괴리감이 있었고 그 괴림감속에서 나는 정처 없이 답이 없는 답을 찾아 헤맸어야 했으며, 그 끝에 다다른 것이 지금의 모습인데 이마저도 가장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적을 만나 위기 속에 놓여있다.
무언가 잊어버린 느낌은 내가 나를 잃어버린 일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늘 내소 신대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방황하고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망부터 생각하는 겁쟁이로 전락해버렸다. 학창 시절 나는 꽤나 괴짜였다. 줄곧 인문계를 다녔지만 어릴 때부터 요리가 하고 싶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가서 요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 가게를 오픈하고 멋진 세프의 삶을 꿈꿨었다. 그래서 인문계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남들은 아자니 학원이니 다니며 수능을 준비할 때 나는 요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요리학원을 다녔고 일본에 가기 위해 일본어를 계속 공부했었고 수능보다 연 2회뿐인 12월 첫째 주 마지막 시험을 위해 졸업여행 때도 JLPT책을 가져가 혼자 공부했다.
첫 번째 좌절은 터무니없는 학비였다 지금도 비싸지만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라고 알게 된 오사카에 있는 츠지조리사전문학교는 한해 등록금만 3천만 원가량 됐는데 한국에 전문대를 가는 것보다 무려 5배 이상 비쌌다.(금액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때문에 여유가 없는 우리 집에서 그런 뒷받침을 해줄 여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반대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국내 전문대로 진학했다.
두 번째 좌절은 일본 워킹홀리데이였다 마지막에 일하던 게로에 있는 리조트 호텔에서 희망고문만 잔뜩 맛보고 인생의 쓴맛을 보고 씁쓸한 귀국을 택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렸기도 했고 그럴 때야말로 더 인내심을 가지고 버텨야 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다만 그때로 돌아가도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라 뒤끝은 없다 가끔 다른 선택지를 택했을 때의 내 미래가 궁금할 뿐이다.
세 번째 좌절은 공기업 퇴사라 생각한다. 그전에 더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그건 그냥 나의 잘못이고 내 선택이기에 후회는 없기에 그러나 공기업은 내가 요리사로 취업은 더 이상 안 하겠다 마음먹은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요리사의 삶은 정말 열정과 강력한 내적 동기가 없는 이상 정말 권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다른 기술직과 전문직들과 달리 경력이 높아도 인건비가 올라가는 건 회사 직책에 따라 달라질 뿐 사회에서는 10년 차 셰프나 1년 차 요리사나 만들어주는 음식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요리를 안 해본 사람도 비싼 음식점을 만들어 비싼 음식을 팔 수 있고 아무리 솜씨가 뛰어나고 경력이 긴 프로 셰프라 할지라도 5000원짜리 짜장면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기도 어렵고 일한 거에 대한 대가도 작은 편이다. 무엇보다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직업이기에 유사 인류 같은 인간들과 일하게 되는 일도 허다하며 심지어 그런 인간들 밑에서 굴려야 하는 사업장도 많아 나는 요리사를 한때 포기했다.
그런 내가 다시 한번 요식업에 뛰어들어 이제는 내가 오너 셰프로써 내 사업을 내 가게를 열고 호기롭게 불안감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시작한 것인데 결국 1년도 못 채우고 부동산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가는 연말에 정말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최선은 다했지만 혼신을 다하지 않았다일까 찝찝함과 씁쓸함이 밀려온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현재 가게 근처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가게는 2년 계약이지만 원룸은 1년 계약으로 이 계약이 2월 중순에 끝이 난다 때문에 가게를 정리하려는 것도 원룸 계약이 발 묶인 것도 있고 어떻게든 고정비를 줄여보려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기에 이렇게 돼버렸다. 만약 다음 달 말일이나 2월 초까지 가게가 팔려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다면 가게와 원룸을 동시에 정리할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1년간 발버둥처볼 생각이다.
실패를 100번 해야 비로소 성공하는 일도 있다
나는 목표나 꿈이 크기도 깊이도 다다르기에 그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도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분명 어떤 일은 요령 좋은 사람은 실패 없이 성공하는 일이 있는 반면 100년에 한 번 성공하는 사람이 나올만한 어려운 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내가 이루고 싶은 일도 수많은 실패와 고난 속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힘든 것이기에 이렇게 지금 힘들고 괴롭고 마음 아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그래도 알고 느끼는 것과 모르고 느끼는 것은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정도기에 이 악물고 버텨가는 수밖에 없겠다. 터무니없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나의 2020년
어쩌면 해가 바뀌는 건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는 것처럼 별거 아닌 평범한 일이지만, 그 평범한 일상도 매일 다른 일들과 만나기에 오늘의 시간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일들로 가득 채우며 또다시 내일을 맞이하는 준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