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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1. 2019

산사를 걷다 - 5

청도 운문사, 양산 통도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오랜만에 기온도 올라가고 화창한 휴일이었던 오늘은 청도 운문사와 양산 통도사를 다녀왔다. 


운문사의 솔밭 길은 경주 남산 삼릉, 서산 안면도의 해송 밭, 풍기 소수사원 솔밭, 봉화군 춘양의 춘양목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소나무 숲길이라고 한다.  


이 멋진 솔밭길을 걷는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다.


오랜 이 숲길에 나를 남기고 나는 이 숲길을 마음에 품는다.


길 양 옆을 터널처럼 만들고 하늘로 높게 치솟아 있는 소나무 숲길을 10여분 걷다 보니 ‘참 좋구나’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런 기분 때문에 산을 찾고 걷는 것이지 싶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 숲길이 간직하고 있는 수백 년 이상의 역사에 나도 무엇인가를 남기는 그런 느낌이다. 


솔바람길. 이 숲길의 이름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올 것 같은 곳이다.


운문사는 비구니 절이고 승가대학이 있는 곳이다. 운문사는 새벽 예불이 유명하다고 한다. 운문사에 들어가면 집채만 한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처진 소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절을 구경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는 돌기와 담장과 벚꽃이 있다. 벚꽃이 피는 봄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길이 될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본당 가까이에도 주차장이 있으나 절 입구 주차장을 이용해야 온전히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운문사 안내문.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운문사가 있는 운문산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세계로 솟은 산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오후 12시에는 타종을 한다. 아직까지는 종의 울림소리를 구분할 수 없지만 그윽하고 오래가는 그 느낌이 좋다.


'처진 소나무'라는 이름을 가졌다. 500년 나이를 가진 나무인데 그 크기가 집 한채이다.


운문사는 산에 있는 사찰이 아닌 어느 마을에 온 느낌을 준다. 


모든 것이 크고 넓다. 이런 곳도 다 용도가 있음이다.


마이너스 100점. 죄송합니다. 


오래된 사찰의 어렵고 복잡한 역사 말고 불당에 새겨진 그림, 현판 글씨의 의미 등을 설명해 주시는 해설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나 문화유산이나 온전히 그 스스로 가치를 가지긴 어려운 것 같다.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삼층석탑, 석등 등 보물이 많은 곳이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닌 것 같다. 


사찰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문양을 만나는데 계속 볼수록 궁금해진다. 용일까, 호랑이일까, 도깨비일까, 사람일까?


일반인은 가지 못하는 곳인데 꼭 걸어 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래에 계곡이 흐르고 있다.


운문사 벚나무 돌담길. 낮은 이 돌담길은 조금은 아쉬웠던 운문사 기대치를 달래준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를 산사의 나라라고 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명산의 최고 명당자리에는 어김없이 절이 있다. 한때는 이것이 불만이었다. 왜 특정 종교가 이 좋은 장소들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산이 좋은 것인데 왜 입장료를 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절이 없었다면? 대형 호텔이나 관광지로 개발되었다면? 종교로서 절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으로, 소중한 문화의 유산이자 문화 콘텐츠로 자연과 어울려 자리 잡고 있는,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즐기면 되지 않나 싶다. 


오후에 찾은 양산 통도사. 워낙 유명한 곳인데 처음 방문이었다. 아직 꽃 피는 봄도 아닌데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주차장까지 가는데만 거의 사십 분이 걸렸다. 그동안 인적 드문 곳을 다녔던 지라,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유명한 시골 장터라면 이 정도 사람이 많을까? 벚꽃이 피는 봄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생각만으로 아찔해졌다. 


사람이 많은 주말이었다. 규모에 놀랐다. 이보다 더 큰 곳이 있었을까?


워낙 알려진 곳이고, 큰 사찰이다. 580여 칸이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축물. 통도사의 건축물은 대부분 오래되고 멋스럽다. 이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내가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듯하다.


봄을 알리는 홍매화에 사람들이 모여 자리를 떠나질 못했다. 연화빵이라는 호두과자를 파는 줄은 수십 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불교 신자들은 줄을 서서 예불을 올렸다. 사찰 구경보다는 사람 구경을 한참 하다가 팥죽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연화빵 한 봉지 들고 사찰을 나섰다. 



그래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시선을 온전히 묶어 두는 것이 너무도 많은 통도사. 언제 다시 와야 할까 싶었다.



내 마음같이 말라있는 계곡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는 단팥죽. 통도사를 맛집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눈 내리고, 영하로 추운 날에 다시 찾아 온전히 보고, 걷고 다시 이 단팥죽을 먹을 것이다.



혼잣말 주절주절.  

'주말에는 크고 유명한 사찰은 가지 말고, 가더라도 트레킹만 하자’ 

‘꽃 피고 단풍지는 계절에는 아침 일찍 가거나 해지기 바로 전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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