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없는데 원하는 건 있으니,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일전에 나는 썼다. 코미디에 재능이 없는 나는 그럼에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니, 그 계획을 실현할 만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코미디와 웃음에 관한 나름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어떨 때 웃는가. 이에 대한 탐구를 해보고자 내가 가장 최근에 크게 웃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 …………. 다행히도 바로 어제 크게 웃은 일이 있었다. 주성치 연출/주연의 영화 쿵푸 허슬을 오랜만에 다시 본 일이 그것이다. 개봉한지 20여 년이 지난 영화.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DVD로 봤던 그 영화를 어제 다시 본 것이다. 그 영화에서 주성치가 연기한 주인공 싱은 돼지촌의 여주인을 죽이기 위해 몰래 마을 입구에 숨어든다. 그러나 싱의 행동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웃었다. 그게 왜 그렇게 웃겼을까.
먼저, 인물의 행동이 의도에서 크게 벗어난 결과를 얻는 데에 따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의외성에 따른 웃음이다. 특정한 행동은 그에 맞는 결과를 불러들인다. 때문에 우리는 그 특정 행동만 보고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결과를 예상한다. 그러나 코미디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 특정 행동에 맞지 않는 의외의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이 코미디다. 그 의외의 결과가 예상하지 못했을 뿐 그 원인이 된 행동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을 자아낸다.
다음으로, 우월감에서 오는 웃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우월감은 이 영화 장면 속 인물의 바보 같은 행동과 그에 따른 불행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정리하니 내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불행에서 웃음을 짓는 경우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지. 애인과 헤어졌다는 친구의 말에 남몰래 웃음을 지은 적이 없었는지.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말에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는 요한복음서의 내용에 아쉬움을 느끼진 않았는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주디 카터도 자신의 저서에 그렇게 썼다.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그러니 스탠드업 코미디의 주요 소재로 자신의 불행을 써보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적당히 폭력적인 상황에 따른 웃음이다. 이를 양성모독이라고 써보려고 한다. Benign Violation이라는 개념어를 번역한 말로, 피트 맥그로라는 유머 연구소의 연구원이 테드X 강연에서 이 개념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위협적이면서 그 위협이 크지 않을 때, 그 상황에 사람은 웃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위협이 크더라도 그 위협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먼 곳에서 벌어지는 등 여러 요건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를 생각하면 실수로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장면을 모아놓은 홈비디오 콘텐츠 등이 코미디 분야로 분류되는 게 이해가 된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스탠드업 코미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살면서 겪은 어려움과 불행의 경험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불행. 나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