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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권고사직'이 왔다

예상한 듯, 예상 못한, 그래서 덤덤했던 퇴사

by 김황래

코로나 이후,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경제가 침체되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권고사직'으로 인한 강제퇴사였다.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권고사직 브이로그'가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언론사 유튜브에도 소재로 쓰일 정도로 자기 의사와 관계 없는 퇴사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회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매출은 발생하지 않고, 물가가 오름에 따라,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직원들의 월급 및 복지는 상향조정 될 수 밖에 없으니.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인원 감축' 아닐까. 그리고, 제목에서 미리 밝혔듯, 권고사직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 정도면, 그래도 오래 있긴 했지


이직을 하고 4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 지났다. 이전까지는 1년을 넘겨본 회사가 없었지만, 지금 회사에서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4년하고도 몇 달의 시간을 더 보냈다. 나는 직원들 중 가장 오래된 연차의 직원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입사와 퇴사를 지켜봤다. 다양한 이유로 퇴사한 사람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퇴사를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물론 숱한 퇴사의 위기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나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기도 하고, 잘 이겨내면서 회사를 다녔다. 4년의 시간 동안 쌓인 노하우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나는 내 나름대로 주어진 일을 잘 하고 있었다.

333.jpg 3년 근속 후 받은 표창과 선물. 나도 이런 걸 받아보나 싶었다


다만, 오랜 시간 일하다보니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종종 든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일이 너무 과도하게 힘든 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교회 일정들이 매일 빡빡하게 있었고, 그래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삶을 살아간 게 아니었기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벅찰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고 취업도 어려운 지금,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젊을 때 쭉 벌어놔야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가능한 4년 4개월의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외부 미팅 준비를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중,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처음 그 말과 설명을 들을 때에는 약간 혼란스러웠는데, 자리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깊게 든 생각은 '나라서 다행이다'는 거였다. 나는 회사에서 정말 많은 배려를 받았다. 업무에서 큰 실수를 여러번 했음에도 그 때 권고사직되지 않았고, 내가 성장할 때까지 회사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진작 잘렸어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한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감사했다(진심으로).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퇴사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30대 초반의 사람들보다는 경제적인 사정이 나았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집도 내 소유고,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 덕분에 당장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밥을 굶지는 않을만큼 모아둔 돈도 있었다. 게다가 4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의 퇴직금도 있었고, 권고사직 되었기에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도 있었다. 다른 직원분들은 대부분 자취를 하면서 홀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었고, 그 중에는 회사에 입사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회사의 사정으로 누군가가 퇴사해야 한다면, 그것은 내가 되는게 마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금방 권고사직은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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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날, 내 PC를 정리하고 회사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사온 지 얼마 안되었는데


30대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시기


2024년이 되기 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4년이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하여 아주 오랜만에 백수가 되었고, 3년 동안 다니던 교회를 옮겨서 새로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집근처에 있는 볼링장에서 볼링 동호회도 새롭게 시작했다. 인간관계도 모두 뒤바뀌고, 나의 생활 리듬도 확연하게 바뀌게 되었다. 실업급여 덕분에 당장 몇 달 동안의 생활에도 여유가 생겨서 여행도 다니고 가고 싶었던 곳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20대 때에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백수 생활을 보냈지만, 30대는 마음가짐이 좀 다르다. 이 시기가 다시 없을 휴식의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알차게, 빡세게 쉬면서도, 놓치는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는 제주도 올레길 여행 중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아아 하나 시켜두고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다. 이런 휴식이 참 그리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며 더 열심히 쉬고, 더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고 싶다. 걱정 반, 기대 반의 현재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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