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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내가 아주 슬플 때

이런 게 난가...

<내가 아주 슬플 때>



말 많이 잔다. 잠은 바닷물과 같아서 끝이 없다. 얕은 잠을 잘 때는 수면 위에 둥둥 뜬 기분으로 깊은 잠을 잘 때는 심해어가 된 기분으로 그렇게 잔다. 끝도 없고 깊이도 없을 만큼 잠의 영역은 무한대인가. 왜 자도 자도 더 계속 또 자고 싶을까 요즘엔. 아니, 사실 요즘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오래되었다. 몇 달 정도.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걸까. 내가 무슨 병에 걸렸을까. 어떤 병의 전조 증상 같은 것으로 잠이 이렇게 많아진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지만 잠깐 하고 만다.


피곤하면 슬퍼진다. 그래서 하루 중 슬플 때는 언제냐면, 출근할 때보다 퇴근하면서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돌아올 때. 왜냐하면 그때가 가장 피곤하기 때문이다.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하품을 여섯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다가 반대편에서 걷는 행인이랑 눈이 마주쳐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뻔뻔해졌다 이제는.


하지만 피곤하다고 해서 '아주' 슬프지는 않다. 내가 아주 많이 슬펐을 때는 그러니까...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다. 생각해 보면 슬픔이란 순수하지 않은 것 같다. 슬픔은 감정의 혼합물, 복합적인 감정이다. 나는 언제나 순도 100퍼센트의 슬픔만으로 울지는 않았다. 슬픔에는 그 순간의 상황이나 이야기, 분위기나 마음 상태에 따라 그리움이나 분노, 섭섭함이나 미움, 원망이나 화, 억울함이나 답답함, 안타까움이나 자기 연민, 어쩔 수 없음이나 아름다움.. 같은 감정들이 늘 뒤엉켜 있었기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약간의 슬픔을 마음 밑바닥에 마치 수족관의 자갈처럼 깔아 둔 채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슬픔의 근원은, 연원을 모르겠다.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굴러다녀. 이렇게.


그런데 나는 눈물이 많지는 않다. 언제 펑펑 울었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따금 외롭고, 피곤할 때 내 가슴 밑바닥에 있는 자갈들이 조르르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혼자 들어보는 시간이 가끔 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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