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별 Jun 16. 2024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

어떤 연서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

가족 친구 지인 연인 부부 남매 형제자매 선배 후배 동창 동기 동료 상사 직원 계약서상 갑을 관계 임대인 임차인 옆집 사람 위층 사람 아래층 사람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 학생과 선생님 친하지는 아니지만 같은 반인 애들 다른 반이지만 친한 애 애인 전여자 친구 전 남자 친구 남자사람친구 여자사람친구 동성친구 이성친구 그냥 아는 사이 얼굴만 본 사이 이름만 아는 사이 팔로워 팔로잉 맺은 인스타그램 친구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사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사이 과거에는 좋았지만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사이 나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가끔 보기도 하는 사이 언제 한번 보자는 말만 삼 년째인 사이 세상에는 많은 사이가 있겠지만


나는 당신과 어떤 사이가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과 단골손님으로 저는 부족해요 많이 아쉬워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너무 궁금해서 너무 알고 싶어서 당신의 친구를 통해 당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어요 당신이 안다면 몹시 불쾌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미안하다고도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가 따로 만나볼 기회가 없어요. 당신을 만나려면 당신이 일하는 시간에 당신이 있는 카페에 가는 방법밖에 없고 잠깐의 인사, 혹은 운이 좀 좋다면 간단한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게 다인데 그마저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볼 수가 없어요.


사실은 오늘도 친구를 만나서 당신의 이야기를 좀 했는데

이번 글의 주제가 주제인만큼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에 대해서 당신에 대한 글을 쓸 수밖에 없네요. 별 수 없네요.


저는 당신과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걸 알아요. 잘 알아요.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고 인사도 하고 가끔 스몰토크도 하고 나이도 알고 그런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딱 거기까지만. 당신은 그런 거죠?


고등학교 때 이후로 짝사랑은 오랜만이에요. 상대가 모르게 혼자 좋아하는 건 짝사랑, 상대가 알지만 혼자 좋아하는 건 외사랑이라던데 고백한 적도 있었으니 저는 엄밀히 짝사랑이 아니라 외사랑일 테죠. 아,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거북하시겠죠?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호감, 호기심, 설렘, 좋은 인상.. 이런 쪽이 더 나을까요?


그렇지만 고마워요. 제 고백을 받고서도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서 다행이었고 좋았어요. 좋아하는 카페에서 고소한 커피를 계속 마셔도 되어서 좋았고요. 오랜만에 다시 찾아갔어도 편하고 친근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사실은 이 글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주제를 보자마자 당신이 떠올라버려서.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여서 다행인 사이도 있고,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여서 슬픈 사이도 있는데 출퇴근하면서 매일 마주치는 전 남자 친구는 전자이지만 카페에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당신은 후자예요. 아,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많이 슬프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당신을 보면 제가 기분이 좋아요. 그게 다예요. 아, 역시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라요. 저는 또 언젠가 내키면 찾아갈게요. 그때도 어제처럼 반갑게 맞아주시고 바쁘지 않으시다면 제게 또 말을 더 걸어주세요. 저는 사실 보기보다 수줍음도 많고 버벅거려서 당신이 저를 먼저 알아보기를 기다리기만 한답니다.


아무쪼록 꼭 건강하게 지내세요.

작가의 이전글 내가 아주 슬플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