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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6. 2024

아침에 먹은 것

나의 고양이에게

<아침에 먹은 것>

오늘 아침에는 다디단 참외 두 알을 과도로 깎아 먹었다. 참외는 6일 전쯤 자취방에 들렀던 엄마가 락앤락에 사각형으로 정갈하게 잘라서 담은 수박과 함께 가져다준 것인데 깎아 먹을 시간이 없어 내내 잊어버리고 있다가 휴일인 오늘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느긋하게 깎아 먹었다. 껍질은 부드럽게 깎여 나가고, 참외를 길게 사등분으로 잘라 한 입씩 베어 먹으니 달콤하고 시원했다. 두 알을 다 먹기엔 배가 너무 부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다 먹고도 더 먹고 싶을 만큼 맛이 좋았다.


참외를 먹을 때는 언제나 미남이를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참외를 사 오면 미남이는 주방에서 좀 떨어진 내 방에도, 심지어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참외의 달 큰 향 향기를 맡는지 어떻게 알고 야옹~야옹~수십 번을 야옹거렸다. 참외가 있는 걸 알고 있으니 어서 빨리 자신에게 대령하라는 의미의 채터링과 재촉하는 울음소리. 미남이는 목소리가 너무나 예쁜 고양이였고 미남이가 그렇게 재촉하며 울어대면  엄마는 마음이 바빠져 참외를 빨리 깎느라 손을 베이기도 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싱크대에서 참외를 깎는 엄마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엄마의 종아리에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비비면서 제발 어서 나에게 참외를 달라! 참외를 대령하란 말이야!라고 냐옹거렸다. 드디어 참외를 급하게 다 깎고 미남이가 먹기 좋게 거의 다지다시피 잘게 조각내어 잘라서 미남이 전용 접시에 담기가 무섭게 미남이는 아웅 아웅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먹어버리곤 했다. 참외 4분의 1을 깎은 걸 1분도 안 돼 먹고는 또다시 참외를 달라며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보챘다. 그러면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남은 참외의 2분의 1을 잘라 또다시 잘게 조각내어 주곤 했다. 미남이는 두 번째 접시 역시 1분도 안되어 다 먹고는 접시 밑바닥에 묻은 과즙까지 남김없이 할짝할짝 핥았다.


미남이가 고양이별로 간 이후로 여름에 참외를 볼 때면 먹으면서 언제나 미남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 맛있는 참외를 올해도 나 혼자 먹는 게 미안하고 곁에 있었다면 내가 먹을 참외까지 빼앗아 먹었을 참외귀신 미남이가 생각나서 슬프면서도 그립고 웃음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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