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미워한 것>
일생을 살면서 '죽도록' 미워한 것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어떤 대상을 미워하다가 미워하다가 나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어 버렸으니까. 나는 그 사람에 대한, 20대 초반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내 마음이 활활 타올라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분노와 미움이 내 정상적인 사고를 가로막아버렸고, 내 밝았던 면과 환했던 마음을 뒤덮어버렸다. 그 일을 겪은 뒤에 나는 한동안 먹는 걸 거부했고 누워 있어도 잠들 수가 없었다.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고 웃음과 말을 잃어버렸다. 어떤 비극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에 그 일에 대해 말로 설명한다거나 글로 풀어쓰는 것은 너무나 무참하게 느껴졌다. 말과 글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는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미움과 분노 때문에 내가 타서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잿더미가 된 뒤에는 차게 식어서 누구도 내 존재를 모르게 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렇게 잿더미가 되고 바람에 흩어져 버릴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많이 불안정했다. 스물셋, 그해 나는 엄마와 함께 정신의학과를 찾아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첫 연애에 '실패'했다고 느낀 후에 길지 않은 세 번의 연애가 찾아왔지만 첫 번째 연애의 여파가 다음 연애들에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 연애가 큰 충돌로 인한 대지진이었다면 나머지 연애들은 다 그 사건의 여진 같았다.
살면서 '죽도록' 미워해 본 적이 없다는 건 분명 큰 행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상을 죽도록 미워하는 것은 마치 내가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불행하고 슬프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의 파고가 계속 넘실대는 것과 같아서 살아갈 때 멀미가 난다. 누군가를 너무 많이 미워하다가 내가 화르륵 다 타버릴 것만 같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내가 지닌 에너지를 쏟다 보니 에너지는 금세 소진된다.
이 모든 게 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났기에 일어난 일이라며 나를 아주, 아주 여러 번 자책하고 탓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수없이 되뇌고 자기 최면을 걸어보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해 봐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었다. 불안정한 내 모습, 전과 다른 내 모습, 예전처럼 환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본 친구들도 내 곁을 떠났다. 가족들도 나를 안타까워할 뿐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보란 듯 잘 살아내고 싶었고, 누구보다 멋지게 극복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참패했다. 링 위에 올라간 권투 선수처럼, 녹다운되었다. 너무 미운 그를 향해 계속 편치를 날렸는데 타격감은 0.1도 없었다. 한 방의 어퍼컷을 생각하며 계속 미워하고 또 미워했지만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것만 같았다.
그가 망하기를 바랐다. 망가지고 무너지기를.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의 불행을 위해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