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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6. 2024

어린 시절 하면 떠오르는 얘기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어린 시절,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요즘 학교 폭력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여섯 개의 폭력>이라는 제목의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나는 학교 다니던 시절 어떤 아이였는지 생각하게 보았다.


대체로 말이 많지 않은 아이였다. 수줍어하고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고, 주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기보다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만 교류하는 아이였다. 성적은 대부분 상위권이었고, 집안 형편은 안정적인 중산층이었다. 외모도 키도 옷차림도 평범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우리는 삼총사처럼 친하게 지냈다. 6학년 때 나와 S, 그리고 H는 같은 반이었다. S도 나처럼 수줍음이 많았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코미디언처럼 웃음을 선사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도 가까웠고, 우리 둘 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첫째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다. H 역시 적극적인 성격인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청순한 외모와 온순한 성격이었고, 미소가 예뻤다. 공부를 꽤나 잘해서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집에서는 나이 차가 좀 나는 오빠를 둔 막내딸로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우리 학원도 같이 다니고 서로 집에도 놀러 가고 하며 정말 많이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H를 부러워했고 그 부러움이 시기와 질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나는 번번이 수학 시험을 망치곤 했는데, H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시험을 잘 보는 것 같아서였을까. 자리를 바꿀 때마다 인기표를 받았던 H가 얄미워서였을까. 같이 친하게 지내던 S가 H와 더 죽이 잘 맞는 것 같이 보여서였을까. 나는 아빠에게 혼날 때가 많았고, 매를 맞을 때도 있는데 H는 매일 저녁 퇴근한 아빠와 손잡고 단둘이 산책을 하거나 줄넘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을까. H는 모든 것에서 나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낸, 영악한 방법은 흔해 빠진 것이었다. 우리 삼총사에서 H를 걸러내는 것. S에게 H의 험담을 하며 S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고 H를 따돌리는 것. 나는 은근하게 그 작업에 착수했다.


결국 H는 멀어졌다. 아마 H는 알았을 것이다. 원인이 나라는 것도,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는 것도. 하지만 H는 나에게 섭섭해하거나 원망하는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혼자 외롭거나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H가 매일 저녁 아빠와 손잡고 산책을 할 때 우리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리고 H가 조금이라도 슬프거나 울적했다면 나도 조금은 미안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H와 나 사이는 그렇게 벌어졌다.


내가 당시에 H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H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거나 약간은 괴롭게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에도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걸 비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다 가진 H에게 겨우 S를 빼앗아 오는 것뿐이었다. 나는 노력해도 H에 비해 더 나을 것이 없으니 친한 친구인 S라도 내 편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 별말 없이 삼총사 무리에서 탈락된 H는 끝까지 고고하고 우아한 한 마리 학이나 백조 같았다.


시인 박연준의 첫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는 두 소녀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 번 열세 살의 나와 H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악역은, 나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 말할 때 '천진난만한', '해맑은', '순수한'이라는 수식어를 거의 아무런 의식 없이 붙이곤 한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내가 아이였을 때 적어도 나는 그리 천진난만하지도, 해맑지도, 순수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영악했고 나름대로 교활했다. 최선을 다해 인정투쟁을 벌였다.


나는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다른 친구를 외롭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 외로움이 줄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H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H와는 이후로 연락이 끊겼고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었고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때 내가 H를 은근히 따돌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어른이 되어서까지 좋은 친구가 되었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내 어린 시절은 이토록 창피한 일 투성이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창피한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어린이에서 막 벗어나, 청소년으로 들어선 무렵의 이 이야기는 내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타자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잔인하다.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아직까지 나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많다고 느낀다. 아름답고 슬픈 일도 많았던 어린 시절 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써 한 번은 풀어내보고 싶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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