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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주 Sep 04. 2018

저는 '도시난민' 이희성입니다

Ep. 7 : 행당6구역 철거민 이희성 씨

어느 날 집 문이 부서져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사 간 옆집의 창문은 깨져 있고, 밤마다 쇠지렛대를 들고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도 모자라 강제퇴거를 당했다면, 갈 곳 없는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할까? 

가정에 불과할 것 같은 이 상황은 이희성씨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행당6구역에 거주하던 이희성씨는 2015년 4월 28일 집을 빼앗겼다. 구청, 경찰,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그는 현재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에 놓여있다.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고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공받지 못한 그는 더 이상 자신이 겪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거문제 활동가’로 나섰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지난 8월 27일,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에 한 컨테이너로 찾아갔다.      

필자(왼쪽)와 이희성씨(오른쪽)

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시난민 희성씨’로 주거문제를 알리고 있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고 있는 이희성이라고 합니다.      


Q. 주거문제 활동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2015년 4월 28일에 제가 살고 있던 행당6구역에서 강제퇴거를 당했어요. 제가 사는 곳이 없어지다 보니까 주민등록번호도 말소된 상황이에요. 퇴거당한 그 후부터 강제퇴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나중에 주거문제 활동가로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2015년에 열린 정책박람회에서 서울시에 청년기숙사를 요청했어요. 그 때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람들에게 나의 문제도 알리고, 주변에 일어나는 주거문제도 들으면서 주거 운동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옥바라지 골목 철거 반대단체들과 연대를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많은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주거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주거문제의 당사자면서 동시에 활동가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주거문제 활동가로 활동 중이에요.     


Q. 당시 행당6구역에서 겪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2011년 7월 즈음에 그동안 해온 토목 일을 그만두었어요. 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이 되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내 여유를 가질 수도 없었고, (일하면서 생기는)상하관계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서울 쪽으로 왔어요. 새 직장에 다니면서 집을 구해야했죠. 그런데 직장 주변은 집값이 비쌌어요. 그래서 멀리 알아보다가 행당동이 집값이 저렴하다고 들어서 그 곳에 집을 구했죠. 

집 주인은 좋은 분이었어요. 월세도 올리지 않았고, 간섭도 없었고요. 그 때까지만 해도 재개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재개발이 늦게 진행될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이주기간이니 떠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입자들이 떠날 수 있게 유예기간을 주는데, 집주인이 미안하지만 12월까지 돈 잘 마련해서 나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10월 즈음에 (집주인이)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을 하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재개발 조합에서 집주인에게 천만 원 이주비용을 줄 테니 세입자를 내보내는 한에서 비용을 주겠다고 말한 거예요. 심지어 세입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압박했더라고요. 

당시에 저는 마땅한 집을 못 찾아서 당장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11월 즈음부터 용역들이 동네에 들어와서 빈 집 유리를 깨부수기 시작했어요.    

  

Q. 아직 이주기간이 안 끝났는데 집을 부수었다고요?

네, 12월에는 저희 집 문도 부서져 있었어요. 어느 날에는 비어있는 윗집 수도관을 깨서 저희 집에 물이 차기 시작했어요. 저는 옷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단들이 집에 있었는데, 그 원단들도 물에 젖어서 다 상했어요. 추운 겨울이라 물이 얼어서 보일러가 고장 났고요. 더 이상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밤새 물을 퍼냈어요. 너무 억울했죠. 그래서 재개발 조합, 구청, 경찰에 민원을 넣었는데 조합은 모르겠다고 했고, 구청은 경찰에 말하라고 했고, 경찰은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집을 뺏기는 건 억울해서 친누나의 도움으로 CCTV를 달았어요. 혹시 밤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는데, 밤마다 쇠지렛대를 들고 와서 주변의 빈 집 문을 부수더라고요.            

  

철거가 시작될 때는 아수라장이었죠. 철거 시작 전에 집을 못 들어가게 막기도 하고, 집행관이 “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철거를 집행하기도 했어요. 아직 사람이 있는데 다짜고짜 집을 뜯어내기도 했죠. 

이희성 씨 집으로 흘러내리는 물 흔적과 부서진 문 모습

결국 2015년 4월 28일에 강제퇴거를 당했어요. 당시에 인권위에 민원을 넣었는데, 인권위에서도 별 다른 대응을 해주지 않았어요. 최근에 서울시 측에 물어봤더니 당시 집행과정은 잘못된 일이 맞고, 지금은 이렇게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겪었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라 해결은 어렵다고 하셨어요.  

    

Q. 그럼 그렇게 강제퇴거를 당하고 어떻게 지내신건가요?

    퇴거당하고 100일 동안 성동구청 앞에서 농성을 했어요. 농성을 해도 구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 후엔 지인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고요. 지금 이 곳(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에 온 건 건너편에 계시는 아현포차 때문인데요. 옥바라지 골목 철거문제 이후에 아현포차 노점상 철거문제가 있었어요. 그 때 ‘아현포차’를 알게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 왔다가 경의선공유지를 알게 되고, 여기 컨테이너에서 살게 되었죠. 

성동구청에서 농성했던 모습

      

현재 이희성 씨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 내부

Q. 현재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지금은 청년 의회에서 민달팽이유니온과 청년주거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이 문제를 다룬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올 9월 2일에는 <역세권 2030 주택>에 대해서 발표를 할 예정이에요. 역세권2030은 주거문제의 대안이 될 정도로 수량이 공급되지도 않고, 공공이 운용하는 비율이 낮고, 대부분 민간에서 운용해요. 민간이 운용하는 주택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요. 더구나 8년 이후에는 민간이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정책이에요.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는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지금 <청년부동산>이라고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2명이랑 EBS 작가 2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 사연이 있어요. 학교 기숙사가 부족해서 기숙사 생활을 1년 밖에 할 수 없는 학생, 프리랜서로 활동하느라 소득이 잡히지 않아서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는 작가, 서울이 직장인데 집값이 비싸서 인천에서 통근하는 감독. 이렇게 세 가지 사연을 담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요.      

9월 8일에 청와대 앞에서 ‘국가폭력 토지강제수용 철폐 투쟁 결의대회’가 있어요. 그 때 발언을 맡게 되어서 발언 준비도 하고 있고요. 또, 9월 말에 국정감사가 있는데 그 때 국회의원들을 통해서 저의 문제에 대해 시장에게 물어볼 기회가 생길 것 같아서 준비 중이에요.      


Q.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서울시에는 청년기본조례가 있어요. 거기에는 시장이 청년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요. 그런데, 조례에서 말하는 주거안정을 누리기 전에 서울을 떠나야 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재개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 보상을 받으려면 최소 10년 이상 그 구역에 거주해야 돼요. 그런데 청년들은 10년 동안 살 수 없죠. 2년 계약이 끝나면 더 싼 곳으로, 멀리 떠나다가 결국 서울에서 나가요. 저는 서울시가 재개발 지역에 거주했던 청년들에게 공공임대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산점을 주는 것을 하나의 대안으로 요구하고 싶어요. 이렇게 해서 주거안정의 사례가 만들어지면 청년이 아닌 다른 계층들도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구청이 개입해서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힘들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공공이 개입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 있으니까요. 


Q. 희성 씨에게 주거는 무엇인가요?

주거는 삶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요. 제가 퇴거된 이후 로 잘 곳, 씻을 곳이 없어지면서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졌어요. 머리 감을 곳도 없으니 머리를 다 밀기도 했어요. 성동구청에서 100일 동안 노숙할 때, 하필 메르스 사태가 있었던 때라 많이 두려웠죠. 온갖 벌레도 나오는 상황에서 구청 측에서는 손 소독제 하나 주더라고요. 

나중엔 구청에서 안내판을 입구에 두었는데, 재개발 주민들이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고, 임대주택을 우선 입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치 제가 보상을 더 받으려고 떼쓰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 거죠. 많이 답답했어요.     


성동구청에서 내세운 안내문.  원만한 이주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희성씨는 강제퇴거를 당한 뒤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Q. 집 걱정 없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 이후에 부동산 시장 규제가 완화되면서 세입자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하고 있죠. 가진 자는 계속 부를 불리고 있고요. 

스웨덴은 사회복지사가 주거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한층 더 나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세입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정책도 많이 있고요. 그런 사회가 되어야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국가에서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생각하고 보장해주면 주변 사람들과 돕고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여론을 형성해주면 그 뒤에 행동하겠다고 하는데, 여론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시민단체나 활동가들과 함께 여론을 만들고 정책을 만들어가야죠. 활동가들이 알아서 여론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정부와 함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죠.      


Q.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지금 주민등록 말소 상황이기 때문에 부채가 있어요. 올해 안에는 부채도 해결하고, 주거문제도 해결하려고 해요. 또 하나는 제가 지금 주거상담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박원순시장님께도 ‘청년주거상담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던 적이 있어요. 청년 주거문제는 청년들이 잘 알고, 자세히 상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청년주거상담사가 만들어지면 제대로 된 청년주거대책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올 6월에 UN주거특별보고관이 한국에 왔어요. 그 때 우리나라 재개발 현장이나 주거문제 현장도 방문하시고 저희 컨테이너에도 오셨는데, 나중에 가장 열악한 사례로 저의 사례를 뽑았더라고요. (UN이) 내년 3월에 우리나라에 권고를 내린다고 하는데, 그것에 맞춰서 플래시몹이나 여러 가지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3월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웃음)    





*위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게시되었습니다. http://omn.kr/11c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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