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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씨바 May 07. 2024

니들이 과밀을 알아?

과밀학급 자녀를 둔 아빠의 진짜 라떼 이야기


#1. 아이의 반이 과밀학급이라고 한다.


교육부에서 정한 교실당 최대 학생 수를 기준으로 최대 학생 수를 초과한 경우 '과밀학급'이라고 한다.


최대 학생 수의 기준은 지자체마다 28-30명으로 상이하지만, 교육부에서는 학급당 28명을 초과한 경우 과밀학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 정의에 따르면, 우리 아이가 과밀 학급에 다닌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각 학년 별로 총 5-6개반 정도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 학년은 한 반에 대략 31-32명 정도인데,

과밀 학교로 유명하다고 했고,

아이 역시 반에 너무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한 학년에 5개 반, 그리고 한 반당 30명 정도면, 한 학년에 총 150명 정도인데 과밀 학교, 그리고 과밀 학급이라니....  




#2. 아빠 일 학년 몇 반이었는지 알아?


난 총 3개의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이사는 한 번 갔는데,

첫번째 학교에서 두번째 학교로 간 것은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없던 학교가 다 지어져 우리 단지 학생 전체가 한 번 전학을 간 때문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형의 중학교 진학 시점에 맞춰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서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 내가 살던 단지는 당시 신축이었던 터라 단지 내에는 초등학교가 없었고, 아직 짓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집과 그리 가깝지 않은 옆 아파트 단지에 있던 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내가 살던 아파트도 그렇지만, 옆 아파트는 지금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이다. 재건축이 되어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가던 그 입학식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 운동장에는 정말 빼곡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내가 배정받은 반에 줄을 섰다.

 

18반.

난 1학년 18반이었다.

 

적어도 한 반에 70여 명은 되었을 시기이니,

한 학년에 1천 명은 너끈히 넘었겠지.

(입학식 때 운동장에 있었던 1학년 입학생이 1천명이고, 부모 중 1명만 따라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2천명이 한 운동장에 있었던 것이다.)


학교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애들은 많고...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이해를 못 하겠지만,

한 학년 내에서도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누어 운영을 했었다.

 

친한 친구들과 오전 반, 오후 반으로 갈리어 나뉘면,

등하교 길에서나 만나서 잠깐 인사만 하고 같이 놀기 쉽지 않았던 그 시절...

 

1학년 18반이라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고 웃기지만,

더 웃긴 것은,

내 기억으로 18반이 마지막 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뒤에 두어 반 더 있어서, 20반, 혹은 21반까지 있었던 것 같다.


어마어마했던 시절이다.



#3. 과밀학급이 뭔지 알려줄게.


초4가 끝날 즈음,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당시 신축 단지들이 어마어마하게 지어졌던(지금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곳으로, 재건축으로 하나씩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아파트는 지어져 입주는 시작했으나, 옆 단지의 학교는 아직 지어지고 있었던 터라,

여러 단지의 아이들이 모두 한 학교로 배정을 받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전학이 너무너무 싫었는데, 새롭게 만난 반 친구들 모두 새 단지에 입주해서 새롭게 온 친구들이라, 모두가 서로에게 낯설고 처음이어서, 적응이 그나마 쉬웠던 것 같다.)


내가 새로운 학교에서 새 출발을 하던 5학년 초반에는 대략 70명 정도로 시작했던 것 같다.

이미 교실은 꽉 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입주는 계속되고 있고, 옆 단지에 짓고 있던 학교는 공사를 계속하고 있으니,

새롭게 입주하는 친구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전학을 왔다.


70명, 71명, 74명, 76명, 80명....


전학 온 친구들이 너무 많으니,

같은 반인데도 이름을 모르는 친구들이 생길 정도였다.

(더 심해지니, 같은 반인지도 모르고 한참 놀다가 다음 날 '어? 너 우리반이었네?"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급 인원수는 늘어갔고,

심지어는 더 이상은 교실 내에 있는 책걸상에 다 앉히지 못해,

일부는 교실 뒤에 전쟁 난민처럼 쪼그려 앉아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옆 학교는 아직도 짓고 있었고,

우리 학교에서는 다른 반 친구들과 서로 자기 반에 몇 명이 전학 와서 이제 몇 명이 되었다며, "학급 인원수 부심"을 부리는 것이 유행처럼 있었던 것 같다.


인원은 계속 늘었고,

결국은 내 기억으로 90명을 넘어(이때부터는 교실 앞 공간에도 학생들이 쪼그리고 앉았다), 97명, 98명까지 갔고,

결국 1명이 더 전학을 와 99명까지 달성하게 되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  100명 달성을 이루게 되면, 다른 반 친구들에게 제대로 "학급 인원수 부심"을 부려보겠노라고 설레어하며 "100명 달성"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때쯤,

옆 학교가 다 지어졌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반의 30% 정도가 한꺼번에 모두 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의 교실과 그때의 교실 크기는 다르지 않을 텐데,

30명이 과밀로 느껴지는  요즘 사람들이

그 당시 100명 가까이 들어가서 앞뒤 공간까지 꽉 채워 있던 그 당시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일까?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했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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