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파씨바 Apr 23. 2024

다행히도, 동안이다.

노안(老眼)인데, 동안(童顔)

#1. 어려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난 늘 이렇게 말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후드티 등의 편안한 복장으로 근무를 해도 무방하기에 그런 복장에서 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이야기지만, 한창 자랄 나이에 갑작스레 확 닫혀버린 성장판으로 인한 크지 않은 키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들이 봤을 때 성장판이 아직 열려있어야 할 것으로 느껴지는 키,

아니 성장판이 아직 닫혀서는 안 될 키,

그 "키"가 바로 내가 동안이라고 불리는 "Key"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남한테 좋은 소리를 듣는 것, 아니 남들 앞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대단히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인 나로서는,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보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워, 항상 빠르게 화제를 돌리거나, 어려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A: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 아, 저, OO 년 생입니다.


A: 나이 꽤 많으시네요. 그렇게까지는 안 보이는데... 어려 보이신다는 이야기 종종 들으시죠? 좋겠어요.


나: 어려 보이는 건 전혀 좋은 게 아니에요. 어린 게 좋은 거지! 공부 더럽게 못하는 사람보고 똑똑해 보인다라거나, 돈 한 푼 없는 개O지한테, 돈 많아 보인다라는 것하고 뭐가 다르겠어요.


늘 이런 식으로 넘어가곤 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어려야" 좋은 것이지, 어려 보이는게 뭐라고.



#2. 어머님, 몇 살이세요?   


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를 받았다며 "제기차기"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제기 차는 것을 가르치고 영상을 찍으려고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소싯적 "제기" 좀 찼던 나 아니던가.


아이가 어렸을 때 63 빌딩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제기차기 이벤트(제기 10개 차면 3등으로서 뭘 주고, 20개 차면 2등으로서 뭘 주고, 30개 차면 1등으로서 아쿠아리움 입장권인가를 주는 이벤트)가 있어서, 바로 참여해 30개 차고 구경하던 분들께 박수 받고, 최고의 상품을 받아왔던 내가 아니던가.  


아이에게 제기를 가르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나도 저랬을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 몸이 안 따라주니, 내 맘이 답답했다.


아이가 빨리 배우고 익혀서 빨리 영상을 찍고 좀 쉬고 싶은데 도통 진척이 안 된다.

제기랄, 제기.


그때 한참 어려 보이는(아마도 2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기 엄마와 아장아작 아기가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우리 제기 차는 모습을 한참을 쳐다본다.  아마도 "제기"라는 물건과, "제기 차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기는 그 자체가 신기했으리라.


코로나 시절이어서, 나와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제기를 차고 있었다.


그 아기 엄마에게는 내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마스크 위로 노출된 부분(안경 + 펌한 뽀글뽀글한 머리)과 크지 않은 키, 그리고 그날도 여전히 그랬을 캐쥬얼한 복장 뿐이었으리라.


그러니 그랬겠지.

그러니 그랬을 거야.



아기 엄마: 우와, OO아, 이거 처음 보지? 얘네 제기 차는 거야~


얘네라니!!!!


이 어머니, 나보다 스무 살쯤은 어릴 텐데...


"어머님, 몇 살이세요?"를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3. 학생 아버지입니다, 저


차에 가져다 놓을 물건이 있어, 차에 물건을 갖다 놓고 몇 걸음 옮기지 않았을 때 저쪽에서 "어이~!!!" 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본다. 분리 수거장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경비 분께서 내 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아닐 텐데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또다시 "어이~!!!!!!" 하는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린다.


누가 다른 사람이 있나 싶어 뒤를 봤는데, 분명 나 밖에 없으니, "어이!!!!"는 나를 부르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이때도 코로나 시기여서, 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네??? 저요???" 하고 경비 분께 다가서니, 도움을 청하신다.


경비 분: 학생, 이것 좀 도와줘.

나: ("학생"이 아니고, "학생을 키우는 아버지"임을 말씀드릴까 하다가) 아, 네,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종이 재활용을 넣어놓는 큰 포대에, 누군가가 책을 너무 많이 넣어서(보통 책들은 끈으로 묶어 따로 빼놓는다),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그 큰 포대가 옮겨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근데, 계속 반말을 하신다.


경비 분: 혼자 힘으로는 이게 도저히 안 옮겨지네. 이거 나랑 같이 저기까지만 옮겨주면 돼.

나: 아, 네.

경비 분: 고마워!



같이 낑낑 거리며 큰 포대를 옮기면서, 내가 학생이 아님을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말씀드리지 않고 가기로 한다.


잠깐 힘을 썼는데도 워낙 한여름 땡볕이었기에 땀도 나고,  마스크도 답답해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경비 분께서 적잖이 흠칫 놀라시는 게 보인다.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며,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생각해 본다.



난 마스크를 쓰면, 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는구나, 아싸!

그런데 마스크를 벗으면, 내 나이로 보이는구나, 제길!



그렇다면, 난 "하관"이 늙어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얼굴 중 하관을 제외한 파트가 어려 보이는 것인가?



이전 08화 라파엘 지갑 속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