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파씨바 Apr 30. 2024

불행히도, 노안이다.

동안(童顔)인데, 노안(老眼)

#1. 아무리 안 보여도, 휴대폰 폰트는 키우지 않으렵니다.


몇 년 전, 친한 후배의 폰을 우연히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스무살 무렵 대학교 1년 후배로 만나, 한없이 귀여워하며 이십년을 넘게 친하게 지낸 후배 녀석의 휴대폰의 폰트 사이즈가, 여든이 되신 우리 아버지의 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글씨 사이즈 정도의 크기라고 하면 되려나.


나: 야, 무슨 할아버지도 아니고 이렇게 크게 봐.

후배: 이렇게 키우지 않으면 하나도 안 보여요. 형, 형도 키워요. 얼마나 좋은데.  


'바꿔볼까? 안 그래도 안 보여서 답답했는데... '


순간, 나도 달콤한 유혹에 빠져 텍스트 사이즈를 시원시원하게 바꿀까 하다가,

그것마저 바꾸면,

나 스스로를 너무 늙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아 바꾸지 않았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가장 작은 폰트 사이즈를 유지한 채 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점점 더  안 보여 폰으로 텍스트를 칠 경우 오타는 점차 늘어나고 있고,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질못 이해하는 경우도 점점 많이 생긴다.


그래도, 난 버텨보련다.


하지 않고 버티다 버티다, 하얘진 머리와 주변의 성화에 못 이기고 결국엔 머리 염색은 하기 시작했지만,

두고봐라, 폰트 사이즈 만큼은 끝까지 안 키우련다.



#2. 큰 글자 책


어느 순간부터 책을 보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책의 글씨 크기가 너무 작아,  잘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큰 글자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책 활자 포인트가 9-10 포인트인데,

이 큰 글자 책은 고령층과 저시력자를 위하여 16포인트로 키웠다고 한다.



내가 읽은 첫 번째 큰 글자 책은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이었다.


우와, 정말 최고다!


글자 크기가 크니 정말로 쏙쏙 들어온다.


아래와 같이 보이는 것이다.


보통 책:

안보인다 안보인다 안보인다 안보인다


큰 글자 책:

잘 보인다 잘 보인다 잘 보인다 잘 보인다



앞으로는 무조건 큰 글자 책이다!



#3. 내 맘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hey, 아니, 안경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해.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한다.  


모니터를 볼 때에는 안경을 써야 한다.

쓰지 않고는 모니터의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휴대폰을 볼 때에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

벗지 않고는 휴대폰의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발톱을 깎을 때에는 안경을 써야 한다.

쓰지 않고는 발톱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손톱을 깎을 때에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

벗지 않고는 손톱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4. 이 술, 몇 도야?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의 모임.


못 보던 술 종류가 있어서 시켜서 맛을 보고 모두가 만족해한다.


한 친구가 내게 우리가 마시는 술이 몇 도냐고 물어본다.

도수 확인을 하고 답변을 하고 싶은데, 깨알같이 적혀있어서 영 안 보인다.


다른 친구가 술병을 가져간다.

안경을 살짝 내려 초점을 맞춰보지만, 그 친구 역시 도수 확인을 해내지 못한다.


나머지 모두가 병을 돌려가며 도수를 확인하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쉽게 도수 확인을 하지 못한다.


그 푸른 시절에 만났던 우리 모두, 

어느덧 노안이기에.



#5. 명함을 받았는데, 보이지를 않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명함 디자인을 컨펌받을 때,

당시 40대 후반이셨던 상사 분은 시안을 가져갈 때마다,

폰트 사이즈를 더 키우라고 했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며 폰트를 키우고, 키우고, 또 키우다 보니,

명함은 한없이 촌스러운 느낌이 되고 있었다.


당시 상사 분의 나이가 되어가니, 

그 때 그분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마음 먹고 폰트 사이즈를 키우지 않은 일반적인 명함의 경우, 

읽는 것이 도통 쉽지 않은 것이다. 


디자인이고 뭐고, 일단 잘 보여야 <명함>의 가치가 있는 것일 텐데... 


오늘 오후에 새롭게 만난 업체에 인사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명함에 있는 이메일 주소를 알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휴, 폰트 좀 키워서 명함을 만들지.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폰 카메라를 열어 명함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진을 확대해서 명함 속 텍스트를 확인한다.


<큰 글자 책>처럼 

<큰 글자 명함>도 따로 나오면 좋겠다. 



노안, 정말 뭐 하나 쉽지 않다.





                    

이전 09화 다행히도, 동안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