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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씨바 Apr 09. 2024

독수리, 곰이 되다.  

半鷲半熊(반취반웅),  이제 반은 곰, 여전히 반은 독수리  

#1.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 되다.


학창 시절 스포츠를 워낙에 좋아해, 온갖 스포츠를 종목 가리지 않고 즐겨보던 내게,

이상하게도 야구만큼은 관심 밖이었다.


축구, 농구, 배구는 물론이고 핸드볼, 탁구, 수영 등까지 모조리 좋아했었는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야구는

잘 봐지지도 않고,

본다 하더라도 큰 재미를 못 느꼈고,

그렇기에 딱히 응원하는 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 관련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92년도쯤이었을 것이다.


장종훈 선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연습생 출신의 장종훈 선수 이야기는 내게 너무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날부터 난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 되어,

종종 야구를 보게 되었다.

(이글스의 팬이 되고보니, 난 어렸을때부터 독수리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치원 때 우리 반 이름이 (유치원 반 름으로는 이상하지만) 독수리반이 아니었던가.)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던 친구들과 종종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기도 했고,

영광스럽게도, 1999년 20세기 마지막 한국 시리즈 우승을 잠실야구장 현장에서 지켜보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마음속 영웅이었던 장종훈 선수가 조금씩 기량이 떨어지고,

한화 역시 순위가 많이 떨어지게 되면서,

난 또다시 야구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누군가 만들었던 "한화, 이러니까 꼴찌지!"라는 제목의 10분 가까이 되는 영상에서 한화 선수들의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들과, 그 밑에 달린 야구팬들의 진심 어린 비웃음을 보고 나서,

야구를 끊겠다고 결심을 하고 이후로는 야구를 거의 보지 않았다.




#2. 아빠가 한화니까, 너도 한화 응원해야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의 친구들 무리가 모두 야구를 좋아해,

아이도 야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아빠가 20년 넘게 응원했던 팀이라며, "한화 이글스"를 같이 응원하자고 했다.  


아이와 직관도 몇 차례 가고,

중계로도 꽤 많이 봤는데,

우리가 본 모든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는 정말 단 한 번을 이기지 못했고,

아이 역시, 아빠의 꼬심으로 응원하게 된 팀이 단 한 번을 이기지 못함에 많이 속상해했다.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진 것은 야구뿐이 아니다. 이맘때 우리는 겨울에 농구장을 많이 다녔는데,  우리가 응원하던 농구팀은 서울 삼성 썬더스였고 우리가 경기장에 갈 때마다 삼성은 아깝게도 아니고, 대단히 크게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가 내게 응원하는 야구팀을 바꾸라고 했다.

서울 사람이니 서울 팀 중 하나로  고르면 된다고.


야구팀을 바꾼다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한화의 우승을 같이 했던 20년 팬으로서, 지금 아무리 꼴찌라도, 끝까지 응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훅 들어온 충격적인 제안에,

난 한참동안 답변을 못하고 얼어있다가,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하며 간신히 넘어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음속 심한 갈등으로, 1-2주는 힘들게 지냈던 것 같다.




#3. 독수리, 곰이 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아이를 위해 팀을 바꾸기로 했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자! 이제 우리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자! 직년, 재작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최강팀이니, 이제 맨날 이기는 경기만 보게 될거야!!!"


응원할 거면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두산베어스 어린이 회원부터 가입해 주고,  

그 시즌의 잠실 첫 홈경기 일정 중 주일 경기의 좋은 자리로 예매를 했다.  



2017년 4월 9일,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고, 두산 유니폼을 입고, 두산 모자를 쓰고 잠실 야구장을 찾았다.


아이 인생 최초로,

직관 응원팀 승리를  느끼고 올 수 있겠다!


상대는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이었다.


드지어 경기 시작ㅣ!!!!


경기가 시작되고 전년도 우승팀의 화끈한 승리를 기대하며 응원하기 시작했지만, 경기는 우리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당시 최강팀이었던 두산은 우리의 응원을 받은 탓인지 약팀으로 변해있었고,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두산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경기에서 졌다.


그것도, 아깝게 진 것도 아닌 대패!


안타수 3 vs 19!

점수 2 vs 13!


그야말로 대패였다.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2회 초, 두산이 7:0으로 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야구도 농구도 맨날 져. 단 한 번도 못 이겨!!!"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주르륵주르륵 흘리며 서럽게 울었고, 그 뒤부터는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야구장에서의 독서라니...




#4. 한화 베어스: 한자로는 반취반웅 (半鷲半熊)이려나.  


鷲: 독수리 취

熊: 곰웅


지금은 두산 베어스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만,

아직도 맘 한편에는 빙그레 팬으로 지냈던 20년 추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난 어떤 야구팀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늘 "한화 베어스"라고 답을 한다.


그리고 두 팀이 맞붙을 때면,

"상도" 상 직관을 절대 가지 않는다.


이제는 두산 베어스의 팬이지만,

여전히 한화 베어스의 팬이었던 추억이 있기에.


한화 베어스, 혹은 두산 이글스, 파이팅!!!!!!!


(정말 묘하게도, 하필 오늘, 두산과 한화의 3연전이 시작이다. 안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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