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잠 Oct 29. 2023

충전과 방전 그 사이





집에 도착해서 씻고 밥을 먹는데

핸드폰도 배가 고팠는지

지금 당장 충전해 주지 않으면

화면에서 비추는 건 네 못난 얼굴뿐일 거라며

무서운 경고 메시지를 날린다.

부랴부랴 충전기를 찾아 꽂아놓으니

지도 행복했는지 소리를 낸다.


충전이 다 되어 갈 때쯤

무언가 빠뜨린 것 같아 허전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스마트 워치가

자신은 챙겨주지 않았다고 삐졌는지

이불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스마트 워치까지 애써 달래 놓으니

이제는 고스란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무선 이어폰이 떠올라서 가방을 뒤적인다.


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내 일상의 부속품들을 다 충전하고 나니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충전해 주지?

어떻게 해야 충전할 수 있는 거지?

휴식이란 나를 충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전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잔잔한 몸부림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 걸까.


이런 기계들 하나만 없어도 불편해하면서

나 자신은 채우지 못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는 게

정말 같잖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도 나 하나쯤 완충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충전기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떤 공무원이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