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잠 Nov 05. 2023

점심은 혼자 먹어도 괜찮을까요?





치솟아버린 물가를 감당하기 힘들어

매일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같이 고민하던 주사님에게

이제는 도시락을 싸 오겠다고 통보해 버리고

아침마다 조금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챙겼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을 싸 온 꽤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허기를 달랜다.


이제는 제법 다른 동료들과 많이 친해졌기에

점심시간이 즐거울 거라 생각했고

한동안은 정말 즐겁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왁자지껄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다가

누군가 내게 "주사님은 어때요?"

라고 묻기라도 하면

외향인들에게 간택당한 내향인이

한 곳으로 쏠린 모든 이들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 내 모습을 보고서.


일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었으니

충전하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여전히 업무의 연장이어서

방전되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다 망가지는 기분.


사람들과 대화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 나인데

뭐가 그리 버거웠는지 점심시간만 되면

속이 얹힌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분명 가득 채우긴 채운 것 같은데

휘발유로 채웠어야 할 곳을

경유로 가득 채운 그런 느낌.


혼자 먹겠다는 말을 내뱉지 못해서

종일 끙끙대다 고백하듯

"점심은 혼자 먹어도 괜찮을까요?"

라며 힘겹게 털어놓았는데

점심때마다 아스라이 요동치던 감정들이

그제야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사람에 지쳐 혼자 먹는 선택을 한 나보다

겨우 이 한마디를 못 꺼내서

한동안 마음 고생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던 어느 날.






작가의 이전글 용기 내지 못할 만큼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