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민원인분이 팩스 좀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민원 업무를 보고 있었던 나는
팩스기 앞에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으니
천천히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오시라고 말한다.
몇 분 아니, 몇 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앞에 서있는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조금은 미안한 표정과
읽어 봐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어림잡아 우리 부모님 또래이실 것 같은데
이렇게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가도
문득 며칠 전 아버지로부터 받은 전화가 떠올랐다.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하려고 하는데
키오스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직원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그 목소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내 앞에 서있는 민원인과
혼자 힘으로 애써봤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해
키오스크 앞에서 헤맸을 아버지가 겹쳐져 보였다.
그때부터 그 모종의 답답함은
내게 다소 번거로운 친절함을 갖춰야 할 이유가 되었다.
이 무심하게 베푼 친절이 돌고 돌아
우리 부모님에게 그리고 언젠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의 나에게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그런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