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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y 24. 2019

태국 현지 대가족의 포근한 집

@태국, 방콕

방콕에 도착한 나는 카우치서핑 호스트 포이가 알려준 대로 수완나품 공항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삼센역에서 내렸다. 역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길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결국 포이에게 SOS를 보냈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내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흰 스쿠터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던 나는 포이의 스쿠터 뒤에 올라탔고, 새하얀 스쿠터는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북적거리는 장터를 지나, 하천을 건너면 나오는 포이네 집




어머니, 아버지, 쁜과 뿡이라는 아들 2명, 포이, 쁘리야오, 푸이라는 딸 3명,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른 지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쁜을 제외하더라도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8명의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걸음으로 20초면 닿을 이웃집에는 포이네 친척들도 거주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대가족 문화를 바로 옆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골목 끝에 위치한 아담한 크기의 단독주택



방이 따로 없는 대신 16평 남짓의 거실에서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생활했다. 밤에는 가족들이 각자 이불을 거실에 들고 와서 한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잤다. 다소 좁았지만 현지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지내는 건 특별하고도 포근했다. 포이가 평생 자라온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이 공간은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외국인인 나를 친딸처럼 대해주셨다. 혼자였으면 외로웠을 여행이지만 가족들의 친절함 덕분에 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함께 식사도 하고 티비도 보고 주말이면 근교 관광지를 둘러보며 즐거운 일상을 보냈다. 가족들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던지 그 모습이 내심 부러웠다. 그럼에도 거실에서 대가족이 다 함께 생활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을지 궁금했다.



"포이야. 네 방을 따로 갖고 싶지는 않니?"
"어릴 때는 물론 내 방을 갖고 싶었지.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가족이 한 방을 써서 더욱 돈독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해.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고 싶어!



그래. 네 말이 맞아. 가족은 인생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존재니까. 지탱할 가족이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주는 가족. 포이네 가족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이나 내면에서도 깊은 가족애가 느껴졌다. 우리는 거실에 누워 밤새 수다를 떨다 잠에 들었다.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었던 방콕의 야경








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집에는 화장실이 하나였기에 아침이면 다들 나갈 준비를 하느라 북새통이었다. 샤워기가 따로 없어서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은 뒤, 손바닥만 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몸에 끼얹어야 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부지런한 포이는 이미 출근을 한 모양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포이의 여동생인 쁘리야오와 집 앞 장터에서 망고밥과 팟타이를 아침으로 먹고, 그녀를 따라 대학교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녀가 다니는 대학교는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20분 남짓 가로질러 가야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를 스쿠터로 선착장까지 데려다주셨기에 편하게 선착장까지 올 수 있었다. 비록 작은 스쿠터에 세 명이 타니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그녀 뒤에 찰싹 붙어 있었지만 말이다.




수상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발했다.




곧이어 우리는 선착장에 멈춰 선 수상버스에 올라탔다. 수상버스가 모터를 덜덜거리며 강 한가운데로 뛰어들자 온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짜오프라야강은 뿌연 흙탕물이었지만 넘실거리는 물을 가르며 방콕의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했다. 평범하게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하던 내게는 수상버스를 타고 통학한다는 게 신선하기만 했다. 지각이었던 우리는 수상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가까스로 수업 시작 직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자꾸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외국인이 신기한지 우르르 내 자리로 몰려와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온 거야? 나 한국에 정말 가보고 싶었어!"
"같이 매점에 가지 않을래?"
"너 방탄소년단 알아? 태국에서 엄청 유명해! 나 한국 예능도 전부 챙겨 보고 있어."



그날 이후로도 학교에 찾아가다 보니 어느덧 나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웬 괴짜 여행객이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소문이 났단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심심했던 나는 쁘리야오를 따라 몇 번이나 학교에 나왔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과 반 친구들도 슬슬 내 존재에 익숙해졌고, 현지인 친구들도 여러 명 사귀게 되었다.




방과 후에는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Siam Square에 가서 파르페를 먹었다.




그녀와의 학교생활은 몹시 즐거웠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도 흥미진진했고 반 친구들도 친절했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태국인들은 이름이 독특했기 때문에 새로 사귄 친구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는 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똥꾼, 쀽삑, 뷰, 라라마이, 사모아, 북, 깽 등 특이한 이름을 인사할 때마다 내뱉으려니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나중에는 입에 척척 달라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해진 우리는 방과 후에 방콕의 번화가인 씨암에 가서 쇼핑을 하거나, 짜오프라야강 라마 8세 대교 밑에서 야경을 보며 피크닉을 즐겼다. 무더운 동남아치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강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태국식 샤브샤브를 먹었다.



관광지보다는 현지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현지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모두 특별한 순간이었으니까.




현지인을 알지 못했더라면 혼자서는 찾아올 일이 없겠지. 분명 이런 장소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거야.



짜오프라야강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먹었던 샤브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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