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경 Apr 05. 2019

히치하이킹 배우기

@아르메니아, 예레반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던 중 리투아니아에서 온 멜리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히치하이크 고수'였는데 무려 스페인부터 아르메니아까지 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1년 간 히치하이크했단다. 그때 무렵 나는 변태 택시 기사를 만나서 택시에서 뛰쳐나와 고속도로 갓길에서 히치하이크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었다. 다행히도 착한 운전자가 태워주셔서 안전하게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다시는 히치하이크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



"절대로 히치하이크는 하지 말아야지...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이야기를 멜리사에게 해주자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히치하이크하는 법을 손수 가르쳐주겠다며 이란까지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나는 다음 여행지로 이란에 갈 예정이었고, 히치하이크를 배울 수 있다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되어 멜리사와 3주간 동행을 하기로 했다.



히잡을 쓴 채 히치하이크를 하는 멜리사와 나



대망의 히치하이크 첫날, 아침 일찍 만난 우리는 수도인 예레반 외곽 도로에서 바로 히치하이크를 시작했다. 나는 히치하이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된 표정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는 반면,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여유 있어 보이는 웃음을 얼굴 한가득 담고 있었다.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올리자마자 차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너무 순식간이라 이게 맞나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속삭였다.


“우리 이 차를 히치하이크하는 거야?”






맞나 보다. 멜리사는 얼른 타자는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모험이 시작되는 건가 보다. 그런데 우리가 탄 차는 알고 보니 국경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였다.


분명 멜리사가 운전자와 얘기를 잘한 것 같은데 목적지 전달이 잘못됐나...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손짓, 발짓으로 운전자 아저씨에게 알린 후에야 유턴을 해서 건너편 도로에 내릴 수 있었다. 몹시 한적한 길이라 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30분 만에 국경 방향으로 가는 차를 만날 수 있었다. 차는 울퉁불퉁한 시골 도로를 달려 이란까지 곧게 이어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 무렵 나는 히치하이크를 막 시작한 초보자였기에 어떤 차를 타야 할지, 어떤 운전자와 함께 동행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가 나를 위해 차를 멈춰주는데, 인상이 좋지 않다고 호의를 거절하는 건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멜리사는 '히치하이크의 첫 번째 법칙, 확신이 서지 않을 땐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차를 세워주는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호의를 베풀 거라고 확신한다면 그건 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야.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고, 만약 그들의 호의가 너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온다거나 호의에서 숨겨진 악의가 느껴진다면 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가르쳐주었다.



히치하이크하는 멜리사와 저 멀리 보이는 아라라트 산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국경 마을인 메그리까지는 366km.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고속도로답지 않은 울퉁불퉁한 도로 상태 때문에 차로 최소 7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더한다면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벌써 두 번이나 히치하이크에 성공한 우리는 오늘 안에만 이란에 도착하자며 마음 편히 다음 차를 기다렸다.



그때 우유를 배달하던 작은 트럭이 멈추더니 우리의 목적지를 물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에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손가락으로 메그리를 가리켰다. 트럭 운전사는 같은 방향이라며 다음 마을인 아레니까지는 태워다 줄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멜리사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 그가 창고에서 꺼내다 준 딸기 와플과 초코우유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했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국경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이란에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사방이 전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여기서부터는 고산지대라서 다음 마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몹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해발 3,000m 고지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가파른 도로는 멀리서 봐도 꽤 험해 보였다. 


오후 5시. 한참을 기다려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길 건너편에서 막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트럭 운전사를 발견했다. 우리는 재빨리 그에게 달려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묻고, 차를 얻어 탈 수 있냐며 부탁들 드렸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행이다. 나와 멜리사는 원숭이 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린 10톤 트럭을 타고 도로 위에 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트럭 운전사들은 긴 시간 동안 혼자 운전하면 외롭기 때문에 인형을 차에 매달고 다닌다고 한다. 






트럭은 달리고 또 달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길은 위태로워 보였다. 커브를 돌 때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무서워서 절로 숨을 참게 됐다. 다행히도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프로였던 운전사는 굽이진 산길을 능숙하게 주행하셨고, 가끔 가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잠시 차를 세우고는 사진 찍을 시간을 주시기도 했다. 험난한 산맥을 지나자 온통 붉은 꽃으로 덮인 광활한 들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국경까지 얼마 남지 않은 구간은 전에 지나쳤던 가파른 도로와는 달리 평평했다. 반나절을 길 위에서 보낸 나와 멜리사는 마침내 국경 마을 메그리에 도착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는 어떤 운전자를 만나게 될까.

첫 히치하이크의 떨림과 설렘 그리고 호기심을 안은 채 이란에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 히치하이킹 TIP >

나라마다 다른 히치하이킹 문화에 유의하자

구글 지도로 ‘출발지’, ‘목적지’를 선택해 경로를 탐색하자

히치하이크 레터를 만들거나 현지 언어를 공부하자

마을 중심보다는 외곽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 또는 휴게소가 히치하이크를 하기에 좋다

태워주고 싶은 사람이 되자

오랜 시간 기다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차를 타기 전, 타고 가면서 운전자와 어디에서 내릴지 상의를 하자

운전자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 해도 차에 타기 전 짧은 대화를 나눴을 때 느낌이 좋지 않으면 거절해야 한다


< 조심할 것 >

의심스러운 운전자의 차는 절대 타지 말 것

차에 타기 전, 꼭 운전자와 눈을 마주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자

옷차림에 주의하자

운전자에게 혼자라는 인상을 주지 말자

안에서 차 문이 열리는지 꼭 확인하자

차 안에서의 분위기를 현명하게 조율하자

동행을 구해보자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는 히치하이크는 언제나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히치하이크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안전하게 한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지 문화와 언어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으며, 일반 여행자들은 놓치기 쉬운 현지인들만의 히든 플레이스에 가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버스를 타면 그냥 지나칠 법한 경유지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다. 물론 오랫동안 차를 기다려야 할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히치하이크에 성공하면 뿌듯하다.


이전 02화 두근두근 카우치서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