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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Apr 12. 2019

이집트에서 라마단 체험하기

@이집트, 카이로

*라마단: 이슬람력의 9월로 전 세계 18억 명의 무슬림들이 종교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 금욕생활을 실천하는 기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음식, 음료, 흡연 등이 금지된다.


라마단*의 첫날이 다가왔고 카이로 시내의 몇몇 음식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다.


'쫄쫄 굶으면 어떡하지. 너무 목말라서 물 마시는 것도 사람들이 눈치를 주면 어쩌지. 배고플 때는 어떻게 참지.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서라도 먹어야 하나...'


먹는 것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중요한 문제였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 기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가 지고 난 후 저녁 7시쯤 아침을 먹었다. 듣기에는 다소 생뚱맞지만, 이집트인들은 하루의 첫 끼를 아침 식사라고 부른다. 특히 라마단에 먹는 아침 식사를 정식 명칭으로는 '이프타르'라고 부른다.


날씨는 푹푹 찌지. 밥은 제때 못 먹었지. 삼시 세끼가 주는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다수의 이집트인들은 낮에는 집에서 조용히 쉬거나 낮잠을 자고, 코란을 읽으며 기도를 하다가 해가 지는 저녁 7시부터 일상을 시작했다. 자정이 되면 번화가는 짜이를 마시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카페에 온 청년들로 붐볐다. 특히 잠들지 않는 헬리오폴리스의 밤거리는 라마단을 기념하는 화려한 조명 장식과 등롱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새벽 1시에는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음식점이 만석이었다. 새벽 3시가 되기 전에, 해가 고개를 내밀기 전에 그들은 식사를 마쳐야 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물담배를 피우거나 짜이를 즐겼다.



Muez Street, Islamic Cairo (@mostafastudio)



해가 떨어진 주로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라마단에는 유독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집 밖에 나와 있었다. 직원 복지를 위해 출근 시간을 늦춰주는 회사도 많았고, 영화관에서도 조조 상영 시간을 정오로 늦춰주기도 했다.


라마단의 또 다른 장점은 친구들, 가족들과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간에는 이프타르를 먹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라마단 첫날에는 디저트 가게에 줄이 끊이질 않았다. 다들 바스부사, 규네페, 크림 망고 등 전통 디저트를 사서 자동차에 싣고, 마치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가족들을 만나러 집으로 향했다.


동네 주민들과 서로 먹을 걸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 퇴근 시간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 보면 신호등 근처에서 사람들이 창문 안으로 간식거리를 건네주기도 했다. 모스크에서도 주민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었다. 즉, 라마단은 나눔의 기간이라고 할까. 라마단 기간에는 평소보다 호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라마단이 끝나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곳곳에서 사흘간 성대한 파티를 한다.



라마단을 밝히는 형형색색의 램프 (@egyptianstreets)



매일 밤이 축제 같았다. 밤늦게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활기찬 시내를 친구들과 쏘다니며 짜이를 마셨다. 주민들은 늦게 잠에 들었고, 어린아이들 역시 밤 12시까지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집에 들어가려고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을 때, 동네 꼬마 아이들이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호기심을 보이며 쫄래쫄래 따라와 같이 놀자며 보챘다. 집에 들어가려던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귀여운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게 되었다. 라마단에는 다들 늦게 잠을 자서인지 아이들만 잔뜻 신이 났다.


그나저나 낮에는 밥을 굶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다 보니 저녁 7시에 아침을 먹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해가 없는 동안 음식을 잔뜩 비축해 놓으니 온종일 배가 불렀다. 아마 내가 이집트의 보수적인 시골 마을을 여행 중이었다면 라마단 기간이 꽤 고되었을 테지만, 수도 카이로에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낮 동안에도 열려 있는 음식점들이 몇 군데 있었다. 또한 이슬람교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들도 있었기에 라마단 동참 여부에 큰 간섭은 없었다.




라마단 기간이라 늦게까지 밖에 나와있는 동네 꼬마들






이집트에서 알게 된 여행자와 마디 지역을 걷다가 맥도날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몹시 배가 고팠는데 그때가 마침 저녁 6시 45분이었다. 맥도날드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모두 햄버거 세트를 시켜놓고 테이블에 놔둔 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것이었다.


'왜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구경만 하는 거지? 아참, 라마단이지!

정각 7시가 되면 바로 먹으려고 미리 시켜놓고 대기하고 있었구나.'


우리는 무슬림이 아니어서 식사를 해도 상관없긴 했지만,

왠지 눈치 보여 다른 사람들이 먹을 때 같이 먹자며 햄버거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시계만 쳐다보며 1분 1초를 기다렸다.


땡-

7시가 되자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기라도 한 듯 사람들은 전부 동시에 햄버거를 집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맥도날드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다음날, 이집트인 친구 코코가 집에서 '접시 파티'를 한다며 나를 초대해주었다. 접시 파티는 초대된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음식을 요리해 오거나 사 와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는 파티다. 나일강 건너편에 사는 코코네 집에는 10명이 넘는 이집트인 친구들이 이프타르를 먹기 위해 모였다. 나는 미처 요리할 시간이 없었기에 코코네 집 근처 노점에서 꼬치 요리와 고기를 싸 먹을 피타 빵,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를 포장해 갔다. 코코의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라마단이라 술을 마시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에 다들 소파에 둘러앉아 술 대신 차를 밤새 홀짝였다.


차를 줄곧 마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아침 햇살이 떠오르고 있었다.




코코네 집에서 이집트인 친구들과 접시 파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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