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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y 03. 2019

술독을 비우자 우드스탁 페스티벌

@폴란드, 코스트신나트오드롱

*우드스탁 페스티벌: 미국 뉴욕 주에서 1969년에 개최된 최대 규모의 록음악 축제. 3일간 진행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60년대 록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었고, 자유분방함과 시대정신을 지닌 팝 음악가들과 50만 명의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반전, 사랑, 평화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남았다. 이후 우드스탁의 자유정신을 이어받은 페스티벌이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던 길에 만난 슬로바키아 록밴드




동유럽 최대 록음악 축제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폴란드에서 매년 3일간 열린다. 슬로바키아에서 알게 된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슬로바키아에서부터 무려 3일간 히치하이크해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코스트신나트오드롱 (kostrzyn nad odrą)에 도착했다. 넓은 들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고, 공연이 열리는 무대를 제외하고도 만 평이 넘는 들판은 온통 텐트촌이었다.



다들 술에 취하기 위해 작정했는지 주차된 캠핑카에는 양주와 맥주 궤짝이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고, 어디를 가던 빈 맥주병이 사방에 굴러다녔다. 관중들은 술이 깰 만하면 마시고, 또 마시고, 끊임없이 마셔댔다. 가지고 온 술을 없애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오직 술 마시는 데 전념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1분 1초라도 술이 깨어 있었던 적이 없는 듯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오리지널보다는 페스티벌 규모가 작을지언정 아무튼 술은 죽어라 마셔댔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술에 취해 주변을 서성이는 광경은 꽤 신기했다.





3박 4일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빠질 수 없는 텐트. 어디서든 알록달록한 텐트와 캠핑카를 볼 수 있다




페스티벌 첫날, 나와 세명의 친구들 리암, 셀린, 마틴은 어디에 자리를 잡으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유쾌한 폴란드인 무리를 만나게 되어 함께 어울리기로 했다. 높이가 3m쯤 되는 나무 막대에는 폴란드 국기가 걸려있었는데 그 옆에 우리가 가져온 텐트를 설치하고, 텐트 안에 짐을 정리해두고 막 밖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둥글게 늘어선 텐트 앞 잔디에 자리를 깔고 음주를 즐기던 폴란드인 도미니카가 내 가방 앞주머니에 있던 태극기를 가리키더니 물었다.


"이것도 여기에 다는 게 어때?"

"그럴까?"


전직 치어리더였던 그녀는 배시시 웃더니 마틴의 어깨 위에 올라가 서서 폴란드 국기 옆에 태극기를 멋지게 달아주었다. 폴란드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 두 개의 국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수많은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무대. 크라우드 서핑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축제 분위기에 점차 익숙해진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밤새도록 술만 마셨다. 언제 잠에 들었던 건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텐트 안이 너무 뜨거워서 잠결에 뒤척이다 벌떡 깨어나 보니 낮 12시였다. 텐트 밖으로 얼굴을 쏙 빼놓고 밖을 쳐다보니 폴란드인 무리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니 맥주 한 병을 손에 쥐여 주었다. 밤이건 낮이건 술자리는 끝나지 않는구나. 어제 그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아예 잠을 자지 않은 건가. 여하튼 재밌는 광경이었다.



맥주 몇 모금으로 칼칼한 목을 축였다. 맞은편 텐트에서 눈을 비비던 남자애는 배가 고픈지 휴대용 버너 위에 철밥통을 올려 즉석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고, 소시지도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근처에 마트가 없기에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에 음식을 잔뜩 싣고 왔다. 이동식 편의점처럼 트렁크에서는 식량이 끊임없이 나왔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실컷 먹고 마셨기 때문에 배는 부를 만큼 불렀고, 대낮부터 마신 술로 인해 정신은 알딸딸했다.




부스에서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판매한다
친구들과 함께 밤이건 낮이건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술기운이 조금은 가셨다. 술병을 내려놓고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무대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작은 키 탓에 무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틴은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주었다.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무대 앞이 훤히 보였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관중 속으로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크라우드 서핑이라고 불러야 할까. 난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누웠고 관객들의 손길이 살며시 내 등과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들은 하나의 파도였다.



크라우드 서핑은 나를 잠시 무대에서 멀리, 그리고 가까이 움직여주었다.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 황홀한 기분과 함께 나는 완전히 콘서트에 심취할 수 있었다. 하나 5분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황홀경을 헤매던 나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쾅, 관객의 머리 위에서 발끝으로 떨어지며 땅에 부딪혔다. 머리가 얼얼했다.

떨어트릴 거면 미리 말을 해주든가!



아무래도 머리에 커다란 혹이 날 것 같았다. 뇌진탕이 아닌 게 다행인 건가. 이러다가 갑자기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어떡하지. 공연이고 나발이고 후유증이 걱정돼서 툴툴거리며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자고 일어나니 우려와는 다르게 큰일은 없었다만 머리에는 예상대로 거대한 혹이 생겨버렸다.





열광하는 관중들 속에서 신나게 방방 뛰며 공연을 즐겼다




머리에 거대한 혹을 달자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술을 조금 줄였다. 멀쩡한 정신으로 있다 보니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기록하고 싶어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평소에는 술을 마시느라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신경도 안 쓰던 폴란드인 친구들이 웬일인지 호기심을 보였다. 다들 술병을 잔디에 내려놓더니 일기장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일기 쓰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친구들은 내 다이어리에 폴란드를 추억할 만한 것을 남기겠다며 주머니에서 잡동사니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미 쓴 버스표, 지폐, 스티커, 마을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테이프 등. 너도, 나도 달려들어 갖고 있는 것을 붙이고 글을 적어 일기장을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주었다. 


내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그들은 일기장뿐만이 아닌 내 마음에도 잊지 못할 추억을 달아주었다. 외국인인 나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들의 추억을 절대 잊지 않을게, 친구들아!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함께 했던 폴란드인 친구들
우드스탁 페스티벌 마지막 날, 빈 맥주병이 잔뜩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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