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벽을 넘어서는 글쓰기
지난해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곧 있을 항암 치료를 앞두고 도쿄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의 나는 미래에 그 어떠한 일도 떠올릴 수 없는 처지였다. 언제 다시 여행을 하게 될지 몰라서, 또 어디로든 가고 싶어서, 무리해서 이틀정도 도쿄에 머무는 일정을 잡았다. 그때 비행기에서 읽은 책이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였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때 보뱅의 목소리는 큰 위로였고, 책과 사랑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주었다.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살며시 물이 든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것에 작은 변화가 닥친다. 당신의 목소리와 눈빛이, 걸음걸이와 행동거지가 달라진다.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혀 혹은 거의 쓸모가 없다. 사랑이 그렇고 놀이가 그런 것처럼. 그건 기도와도 같다. 책은 검은 잉크로 만들어진 묵주여서, 한 단어 한 단어가 손가락 사이에서 알알이 구른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일까. 기도는 침묵이다. 자신에게서 물러나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작은 파티 드레스』, p.77
치료 후 일 년이 조금 넘은 지금, 가을의 길목에서 보뱅의 책을 꺼냈다. 『환희의 인간』은 개인적으로 추천을 많이 받은 책이다. 그럼에도 한참 책장에 묵혀둔 책이었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 많은 이 시점에서야 드디어 찾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첫 문장부터 마음이 멎어버렸다.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이 문장을 마주치고 나서야, 내 안에 얼마나 큰 벽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나는 문을 그리는 대신 그 주변을 계속 맴도는 중이었다. 그러다 지쳐 주저앉아 울어버리곤 했다.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p.21)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또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창밖으로 개머루덩굴이 보인다. 색색의 숨결이 풀밭을 가로지른다. 꽃은 영원으로부터 내리는 첫 빗방울이다. (p.70)
사랑이 올 수 없는 불가능 속에서 사랑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밤보다 더 격렬한 단어로, 밤보다 더 어두운 단어로 글을 썼다. 밤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더 깊은 어두움으로 밤이 흩어지기를 바라면서. (p.76)
사실, 난 가끔 내가 정상인지 의문스러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늘 아니오, 이다. 하지만 나는 이 대답이 걱정스럽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 눈의 창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이 가진 힘인 것이다. 한번 나타나기만 하면, 단 한 번만이라도 나타난다면 모든 것은 구원받는다. 그렇다면 두 번은 어떻겠는가.(p.103)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날 위한 천사가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