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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Aug 08. 2020

총리가 둘러본 돈암서원과 파평윤씨종학당

- 이낙연 총리, ‘지역관광활성화’차 논산 둘러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8년 8월 9~14일 휴가 동안 전북 경남 충남 지역의 색다른 관광 명소를 방문하였다. 이번 방문은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시행과 함께 총리부터 솔선하여 국내 명소를 찾는다는 취지로 출발하였다. 


11일에는 전라북도 군산 동국사와 선유도, 익산 미륵사지와 청년몰로 유명한 전주 남부시장을 찾았다. 13일에는 경상남도 솔송주문화관, 일두정여창고택이 있는 함양의 개평한옥마을과 산머루 와인 두레마을, 하동의 도심다원과 박경리문학관을 방문하였다. 


14일에는 충청남도 논산 돈암서원과 파평윤씨종학당을 찾았다. 종학당은 충청 유교문화원 부지가 인접해 있는 파평 윤씨 문중의 교육도장이다. 오후에는 공주 마곡사를 들른 다음, 대전 이응노미술관 관람으로 마무리짓는 휴가 일정이었다.


숭례사에 오르기 전, 손을 씻는 의식.  


돈암서원에서 역사복원을 논하다


이낙연 총리 일행이 돈암서원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30분이었다. 돈암서원 안내는 기호문화유산활용진흥원 김선의 이사장이 도맡았다. 총리일행은 너른 경내를 돌면서 건물 사이의 여유로움을 함께 느끼는 행보를 이어갔다. 목각판을 유심히 관찰하고, 숭례사에서는 예를 올렸다. 전사청을 거쳐 마침내 응도당에 올랐다. 이 자리에는 김선원 사계선생종손, 김명규 돈암서원부원장, 임순중 돈암서원재무장의와 국봉중 논산유림협회장, 양철야 궐리사재장 등이 배석하였다. 논산시에서는 박남신 부시장, 김진수 문화예술과장이 환담에 동참하였다. 


사계 김장생 선생이 강론한 응도당은 찻자리가 되었고, 이 자리의 첫 화두는 화두는 광산김씨 이야기였다. 이낙연 총리는 코메디언 김병조 씨가 친구이며 한학을 한 꼿꼿한 분이라고 쉬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대하여 동석한 논산선비들은 "그렇잖아도 논산유림회에서 초청한 적이 있다"며, 그가 어려웠던 시절 김우중 회장이 대우냉장고광고 모델이 되게 해준 에피소드 등으로 이어갔다. 기아 김선홍 회장, 건양대 김희수 전총장 등 광김 족보가 나오자 총리는 도지사선거 시절 비화를 밝힌다. 광산김씨 문중 어르신이 전화를 걸어 “처가가 광산김씨인지?” 묻더란다. 잠시 흔들렸지만 “김해 김씨”라고 답하였더니, “서운하지만 그래도...”라며 전화를 끊더랜다. 처가니까 그냥 얼버무려 대답하고 싶었던 유혹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밝힌 일은 천만다행'이라고 소회를 피력한다.


돈암서원의  목각판을 설명하는 김선의 원장(좌)와 응도당 앞에서 논산 유림들과 함께(우)


총리는 문화재 복원시 솔직, 정확성, 여유를 강조하였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처럼 몇 십 년 걸리더라도 충분한 고증을 거쳐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공명심에 집단 유혹받을 경우도 있다. 가령 어떤 석탑 자료가 5층인지 9층인지 불확실할 때는 굳이 9층을 고집할 게 아니다. 석재도 그 자리에 있는 돌부터 충분히 살린 다음 부득불 부족분만 보충하는 식으로 말이다. 동석한 기자의 귀에는, “강경 근대화 거리”를 두고서 지적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4서3경 강론하는 '응도당'에서 논산지역 유지들과 여유로운 차담


정직한 재건, 살아숨쉬는 집 


총리의 문화재 사랑은 줄기차다. 한중일 주변국을 볼 때, 유교 문화는 오히려 우리가 종주국이 되었다. 문화혁명 당시 상당수 파괴되었던 유교를 중국은 이제 부랴부랴 되살려내려 하고  있다. 북경올림픽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그들의 스케일을 당해내기 힘들다. 탁구 같은 경기도 따라잡기 어렵지만,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만 해내면 된다.'  그 중 역사에서 밀리고, 보존을 못해서 중국에 밀린다면 그건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이다. 논산시처럼 지자체 내의 역사유물, 무형유산을 지금 당장 보존 계승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친다. 서원이나 고택 같은 문화재는, 시골 빈집처럼 비워두면 폐가와 진배없다. 


유네스코는 군함도 사례에서 보다시피, 유네스코에서 미국이 빠지면서 일본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유네스코 입장에서 돈암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환영할 일이니 준비에 박차를 기해주기 바라며, "유네스코든 어디든 우리가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이 더 필요하다"고 당부하였다. 


이에 김선의 장의는 대제학 7명을 배출한 돈암서원의 지속적인 강학활동을 적절하게 설명하였다. “어르신 공부 많이 했습니다”라는 총리의 호칭에 김선의 장의가 자신의 나이를 밝히면서 정정을 요청하자, “학문이 위인 분을 어르신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차도 잘 마셨다는 인사를 나눈 다음, 노성 종학당으로 향하였다.(관련기사 2면으로 이어짐 = https://nmn.ff.or.kr/21/?idx=1127575&bmode=view )




[파평윤씨 종학당 방문기] 


먼저 주는 사람이 먼저 받는 세상원리


총리가 사립교육기관인 노성의 파평윤씨 종학당을 찾은 이유는 공적이다. 충청유교문화원이 진행중인 지역이어서이다. 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종학당은 인조 21년(1643년), 윤순거가 문중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곳이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970년 윤정규가 다시 짓고 1999~2003년까지 원형 복원 및 주변정비를 해놓은 곳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비경 명소이다. 


도착해보니 돈암서원의 환영분위기와 다소 달랐다. "시골마을에 국무총리가 방문하신"다는 이야기가 아름아름 퍼져 노성면장을 위시한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운집해 있어서다. 이 종학당에는 초중고 과정이 다 있을 만큼, 보기보다 큰 파평윤씨 종가집 서당이다. 조선조 당시 배움터가 전국 360개 고을에 1개 꼴로 있던 상황에서 노성현 한곳에만 이처럼 큰 학당이 10여개소였다니, 이곳 기호학파의 학문 열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노성면 종학당의 비경. 눈 아래 가곡저수지가 가관이다. 


2만평을 쾌척한 노성사람들


그 학구열은 현대판 실천으로 직결되었다. "충청유교문화원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각축전이 벌어졌을 때 파평윤씨 문중은 2만평을 선뜻 내놓았고, 그 결과 노성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 얘기를 듣자, 이낙연 총리는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파평윤씨 윤관 장군 동상을 예로 들었다. 땅을 기증한 자리에 동상이 섬으로써 윤관 관련 사업들이 동상 주변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음을 환기시킨 것이다.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할 때 무조건 달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먼저 내놓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선점 효과가 극명해진다"면서, 노성 파평윤씨의 탁견을 칭찬하였다. 


그러면서 말타고 달리며 4군6진을 개척한 윤관장군이야말로 광개토대왕 다음으로 위대한 인물임을 부각시켰다. 바로 그 윤관장군 덕에 함경북도에서 벼슬하던 조상이 큰 덕을 입었노라고, 본인 집안 이야기로 전환한다.  이원계.... 이낙연 총리의 선조란다. 이원계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친형이다. 고려 녹을 먹던 그는 해동육룡의 길을 버리고서, 자결의 길을 택한다. 동생 이성계의 죄를 대신 받아 세상을 하직하면서, 아들에게는 유언한다. “너는 고려 녹을 먹지 않았으니 작은아버지를 도와라!” 


종학당에서의 담론은 시종일관 미래의 청사진과 조크, 선문선답으로 ‘맑음’ 모드였다.  김종대 자율방법대장, 오영주 의용소방대장 등이 환영하면서 주차 정리해준 종학당에서 총리 환영식은 조촐했다. 꽃다발은 노성면이장단 유만석 단장과 이계한 전단장이 준비했다. 꽃 전달한 이상화 읍내3리장 외에도 이수행(가곡리), 백승정(병사리), 박수인(장구리) 이장이 동석했다. 


종학당 다과회 자리는 내외 인사가 길게 앉을 수 있었다. 면에서는 양준모 노인회장, 김동선 면장, 조관행 전면장, 시에서는 박남신 부시장, 김진수 문화예술과장 등이 자연스레 섞여 앉았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이종수 원장, 이상균 백제충청유교추진단장, 유재현 행정지원부장이 참석하였다. 조관행 충청유교문화원 유치추진위원장도 배석한 자리에서 때 아닌 영남학파 vs. 기호학파 논쟁이 일었다. 

촌에서는 촌티가 더 어울리는 이낙연 총리의 격의 없는 행보와 파안대소^


“당시는 기호학파가 더 유력했는데, 요즘은 경상도에 국학진흥원 등 1조5천억 이상이 투입되었다. 기호학파는 9천억 예산이니까, 이제라도 2조원 대로 높여서 생활 속의 전통문화, 가령 대장간 같은 관광 겸 실생활문화도 노성면 일대에 함께 들여놓는 등 명실상부한 유교전통문화의 중심지가 되게 해달라”는 주문까지 내놓았다. 

이 사업은, 병사리 일원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학술‧연구(라키비움), 연수시설, 수장고 등 연면적 5천㎡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는 게 외형이다.  올 10월에 공사가 착공되고 2020년 8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이다. 


이에 총리는, 유교문화를 여기 한곳에만 집중시켜서 능사만은 아니라면서 종갓집답게 충청권 유교의 중추적 역할에 충실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노성면처럼 지역 이름에 노나라 노(魯)를 쓰는 경우는 희귀하다는 현실이 새삼 부각되었다. 이는 당시 선진국인 중국과 공자에 정통했다는 반증이며, 그래서 공자만을 모시는 궐리사도 노성면에 있다는, 당시 노성현 선조들의 탁견과 학문 깊이에 방점을 찍는 대화가 이어졌다. 


파평윤씨 장남 가슴에 비상착륙해 있는 메뚜기ㅎ


시골면장님이 최곱니다

 

문중에서 김동선 노성면장을 소개시키자 가까이 옮겨앉기를 청하면서, 총리 자신은 장남이라서 공부를 대표로 했고 대신 동생들은 희생됐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동생이 현재 면장인데, 얼굴이 본인처럼 길어서 면장(面長)이 된 거 같다는 조크에..... 좌중의 폭소는 시차를 두고 터졌다. 시골어머니들은 면서기를 최고로 친다. 어느 노모가 안기부장에 올라간 아들을 두고서는, “넌 면서기나 하랬더니 대체 지금 뭣하고 다니능겨?” 이런 조크를 연타로 날리면서도 언중유골, 면장의 현장 역할을 환기시킨다. 면장이 1주일에 한번씩만 직접 둘러보아도 달라지며, 시청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있다는 목민심서 현장 당부이다. 


목마른 이 땅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마음은 한폭의 부채로 승화되었다. 파평윤씨를 대표하여서 윤완식 명재고택종손이 다과를 준비하였다. 집안에서 빚은 떡 백편과 꿀편, 차, 술이 마련된 격조 있는 분위기에서 국내 굴지의 서예가 노정 윤두식 선생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용띠인 총리를 위해 용(龍)으로 시작하는 용과 봉황의 천하태평 기원문을 4자로 완성한 연후, 종손이 낙관하는 화룡점정을 거쳐 일국의 총리에게 선물하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나라가 이렇게 가뭄인 것은 내 이름에 물수(水)가 들어가지만 본인이 부덕해서 그런 거 같다면서도, 마을분들의 충정에 고마움을 표하였다. 


노정 윤두식 서예가(중앙에서 우)가 그려준 부채 활짝~ 민심 활짝~


그러면서 서예가는 다른 예술가에 비하여 욕심 많음을 탓하였다. 일반 예인들은 탐미만 하는 반면 서예가는 뜻과 멋까지 추구한다는 부러움의 일갈이다. 노정의 서예는 노성면 경로당에도 기증이 되고 있다. 


파평윤씨집안에서는 종회장 윤여도(GMT회장), 부종회장 윤윤중, 대종손 윤원섭, 그리고 노성대종중에서는 윤여항 도유사(전 논산시청국장), 윤두식 운영위원장 등이 동석하였다. 누군가 “총리님, 주경야독(晝耕夜讀)이 뭔지 아세요? 농촌에서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독한 술 마시는 겁니다. 집안에서 빚은 술 한잔 드시지요!” 낮술 점잖게 사양하는 총리는 즉각 맞받는다. “그럼 박학다식(博學多識)이 뭔지 아세요? 박학한 사람은 많이 먹는다, 즉 다식(多食)한다죠^^ 술은 밤에 들겠습니다요!”


톡 쏘는 사이다 총리, 늘 여유로운 총리, 수행원이나 경호원도 별로 없이 운동화 차림의 발걸음 가벼운 총리는, 그러나 점심 시간을 코앞에 두고 공주로 향하였다. 그를 일컬어서 노정 윤두식은 도인(道人)이라고 적어주었다. 길 떠날 때 철통경호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총리와 비견되는 행보인 듯싶다.


[글.사진]  이지녕 기자

위 글은  『놀뫼신문』 2018-08-20일자 1~2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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