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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Apr 26. 2019

성지순례길에서 돌아보는 현대판 신사참배

- ‘김대건신부 사목성지성당’ 건립이야기까지

지난(2017년)  4월 21~22일 강경제일감리교회와 옥녀봉에서 “지역경제관광활성화 및 기독교성지한마음대축제”가 열렸다. 22일 오후 2시에는 논산시장, 의장 등도 참석하는 논산시 공식 기독교 성지순례코스 기념행사였다. 

 

나바위성당의 마애삼존불


성지순례코스는 지자체가 자체로 개발하기도 하지만, 대개 특정 종교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불교의 경우, 군산의 사례는 특이하다.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여전히 건재하여서, 아이러니하게도 내방객들에게 묘한 휴식을 주는 분위기이다. 기독교 축제장에 들어가기 앞서, 지난 번 기자를 안내해준 향토사학자 김무길 선생을 먼저 만나 강경의 경우를 질문해보았다. “일본사찰이 강경에도 세 개쯤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는 르뽀이다. 


일본절만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사찰도 사라진 곳이 있으니 바로 나바위성당 자리에서다. 성당을 돌아 화산(華山)으로 올라가면 “평화의 모후” 성모상이 우뚝하다. 100여 년 전 신부님과 스님이 자리다툼으로 갈등했고, 결국 바랑을 짊어지고 떠난 스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신, 성당측은 예를 갖추어서 암자가 있던 마애삼존불 안내판을 예쁘게 설치해놓았다. 



김대건 신부는 어찌하여 인천 직항을 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여기 금강 굽어보는 나바위로 흘러왔을까?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떠나 42일간 숱하게 풍랑 위기를 넘긴 김대건 신부 일행이 최종 도착한 곳은 용두산! 그 용두포에서 나암포로 들어가는 수로를 거쳐 나바위 암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845년 10월 12일 밤 8시. 한국에 첫발을 디딘 10여명의  국내외 신부와 교인들이 향한 곳은 강경이었다.


나바위성당 앞에는, 그러나 순례 3~4코스를 익산미륵사지쪽으로 지침하고 있다. 그 코스에 여산성당과 숲정이순교성지 등도 있지만, 원불교 관련 성지도 빼먹지 않고 있다. 그 안내판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가니 마침 미사중이다. 1897년 설립하고 1907년 완공된 성당 건물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아넬신부가, 건축공사는 중국인이 맡았다고 하니, 강경에 일본인은 물론 중국인 거주지가 있었다는 설명이 실감난다. 성당 내부는 한국 전통 관습에 따라 남녀 자리를 구분했던 칸막이 기둥이 그대로 직립이다. 시골성당으로 보기에는 상당수의 신자들이었다. 미사중 김선생은 스테인드글라스를 가리키며 속삭이는데, 저작권이 있다는 귀띔였던듯싶다.


익산시청이 제작한 코스 화살표를 거꾸로 하여 강경쪽으로 가니, 읍내 한복판의 강경 성당 역시 뾰족 우람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18호인 나바위 성당에서 강경 읍내까지는 순례코스로 걸어서 40분거리이다. 강경성당 주변은 공사중이었고, 본당 내부는 나바위 성당처럼 칸막이 기둥들이다. 남녀7세부동석의 유교는 옥녀봉에 ㄱ자 교회를 탄생시킨다. ㄱ자 건물 얘기는 잠시 미루고, 읍내 거리에 있는 김대건 신부 유숙지로 향했다. 



김대건신부 사목지 주변의 아마튜어 근대거리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의 또다른 이름은 성 안드레아이다.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교주와 다불리 안토니오 신부를 모시고 우리 해방 100년전인 가을 밤, 이곳 강경포구에 도착 유숙하였던 것이다. 당시 구순오의 집으로 이곳에서 약 2주간 머무렀다.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 나라 천주교의 교두보를 마련한 곳이다. 이 터 앞에는 ‘김대건 신부 유숙지(사목지)’라는 안내문만 서 있지, 거리는 스산해 보인다. 


거리는 한산하다. 야심작으로 조성해놓았다고 하는 강경근대문화의 거리는, 나쁜 의미에서 ‘시대의 역행’ 같다. 충남최초의 신축 강경노동조합 건물에 들어서면 대뜸 느낌이 온다. 근대문화유산은 삼척동자에게 물어봐도 유지 보전이 정답이거늘, 그 귀한 건축물들 철거하고 최신식 영화세트장 같으니 말이다. 로칼가이드의 비분강개가 필요없는 현장에서  터지는 신음소리, “아흐~ 저 국고의 낭비라니...” 강경순례길에 동행했던 송PD의 탄식이다. 예전 그대로인 연수당 건축을 지나면서, 김무길 선생은 눈썹치마, 까치발 같은 우리말 건축 용어를 들려준다. 신축 발상이 어디 공무원만들의 시행착오랴~? 시에서 건물을 구매하려고 했다면, 그 때 그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한 몫 챙기려 했던 마음이 또아리 틀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스친다.


중략(... 이 부분을 이어서 보려면 https://nmn.ff.or.kr/17/?idx=514870&bmode=view)을 하면서, 이 대목을 빼내는 대신에 김대건 신부성당의 최근 동향을 끼어넣습니다. 





[강경카톨릭성지순례]


강경에 ‘김대건신부 사목성지성당’이 세워지기까지


강경은, 알고 보면 우리 나라 기독교 성지(聖地) 중의 성지이다. 개신교는 한국에서 한옥으로는 제일 오래된 북옥감리교회(1923년 건축),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1896년), 우리나라 최초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성결교회(1924년) 등등 기독교 문화유산 및 정신적 모체가 강경에 다 있는 듯싶다. 


김대건 신부의 첫발 나바위와 구순오


카톨릭은 더하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한국 땅에 첫발 디딘 곳이 옛 강경현에 속했던 나바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수환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영화 “저산너머”가 논산 상월에서 세트장을 마련하고 크랭크인하면서 논산에 천주교시대를 열어가는 분위기다. 강경에서는 결실이 하나 맺어지고 있는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사목성지 축성식이 그것이다. 5월 11일 오전 10시 30분, 강경성지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강경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첫 사목성지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해 10월 12일 저녁 8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금강을 거슬러 강경 황산동네에 내렸다. 구순오 교우의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그토록 바라던 고국에서의 첫 미사 등 성무활동과 복음전파를 시작하였다. “마침내 여러 날이 걸려 강경이라는 항구에 도착하였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교우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서울 1845.11.20. 김대건 신부 열여덟 번째 서한 중 일부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846년 6월 5일 연평도 부근 순위도에서 체포되었고, 그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등록문화재 650호 강경성당


이렇게 김대건 신부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1883년 당시 충청도 지역을 관장하던 두세 신부(Doucet, 정가미)에 의해 강경공소가 설립됨으로써 본격적인 발아를 시작한다. 1897년 강경지역에 화산본당(현 나바위성당)이 설립되었고, 1899년 강경포 교안사건을 겪으면서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1921년 논산본당이 설립되었고, 1946년 8월 현재의 강경본당이 분리 설립되기에 이르른다.


1946년 8월 논산 부창동 성당에서 분리 신설된 강경 성당건물은 1961년 2월,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완공되었다. 특이한 구조 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성당 건축물이다. 1988년 조성옥 신부가 성당내부 개축을 하였지만,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보존·활용 여건이 양호하며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2015년 등록문화재 650호로 지정되었다.


최근 프랑스의 노트르담 사원의 화재로 종교문화재가 유실되면서,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천문학적 가치를 새삼 실감하는 분위기다. 성당 복원화 사업은 2016년 17대 여준구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한 이후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성당바닥 마루 복원과 성당정문 동문 설치를 시작으로 1년 후인 2017년 12월 성당제대 전면부가 복원되었다. 작년말 성당지붕교체, 정면출입구, 성가대, 성당정문 외부계단을 보수했고, 올해 4월에는  성 김대건 신부 야외광장까지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김대건신부 사목성지조성과 생명나무


본당과는 별도인 “성 김대건 신부 사목성지조성 1차 사업”은 2009년 15대 이종대 신부가 부임하면서부터이다. 그해 10월 12일, 황산포에서 구순오 집터까지 전 신자가 도보순례를 하였다. 2014년 7월에는 구순오 집터 주변 토지를 매입하였고, 9월에는 성 김대건 신부 사목성지 관련 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 

2016년에는 주변 부지까지 매입하였고, 다음해인 2017년 12월에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며 전시도 완료한다. 작년 5월에는 교육관과 사제관을 완공하였고, 올 봄 4월 주차장과 야외광장 조경까지 완료함으로써 오는 5월 11일 사목성지 축성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2차는 2021년까지 “구순오 집, 라파엘호 복원계획”이다. 구순오집터 기념동산 조성과 강경포구 기념비까지 설치한 다음 도보순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강경성지성당 → 구순오집터 → 강경포구 → 나바위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사목성지 조성과 성당 복원화 사업비는 대전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소관이다. 천주교인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유지되는데, 매월 1회 후원회원을 위한 생미사를 봉헌중이다(강경성당 사무실 041-745-1298). 올 봄 4월 주차장과 야외광장 조경에도 수많은 이들의 후원이 있었다. 그 중에는 줄기차게 나무를 기증하는 신도가 있어 화제다. 루카형제로 불리는 김형근 씨. 강경에서 늘봄젓갈판매장을 운영하는 그는 수익금이 쌓일 때마다 주변 독거노인들을 챙기는데, 단순 후원이 아니라 가가호호 찾아다니면서 돕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이번 야외조경에 오엽송, 주목, 소나무, 반송, 향나무, 연산홍 등을 몽땅 심었다. 조형소나무는 인근세도공소에도 심었다. 헌금도 참으로 귀하지만 나무기증은 성장을 거듭할 생명체이어서인지, 굵고 짧았던 김대건 신부의 생명을 품고 있는 듯하다. 




낙조와 함께 하산하면서


이번 강경축제 예배에는 장경동 목사가 강사로 나섰는데, 장목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이다. 이 교단에서는 매년 5월 10일을 신사참배거부 기념일로 정하고 2016년부터 기념예배를 강경 옥녀봉에서 드리기로 결의하였다. 작년 오후 2시에 옥녀봉에서 기념예배를 드렸다. 일제가 침례교단을 해체하게 된 배경은, 침례교단이 일제의 국체명징(國體明徵)에 위배되는 불온사상을 지닌 교단이라는 함흥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올라가 보니 위용을 자랑했을 신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종무소가 매점으로 오르는 이들을 반긴다. 신단에 있던 장대석, 신성시됐을 돌들이 이제는 비올 때 징검다리  돌 등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김 선생의 설명이 새삼스럽다. ‘신사’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의 신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다. 일본은 한일 병탄이 이루어진 1910년에 전국에 11개의 신사를 세웠고, 1919년 말에는 전국에 36개의 신사를 세웠다. 일제말기, 일본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여 천주교, 개신교로는 장로교, 감리교, 안식교 등이 신사 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결의하였다. 무진박해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새남터로 끌려가 순교한 김보현의 손자 김추기경도, 한국 교단을 대표하는 한목사도 그 당시 신사참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근대사전시관장인 감리교 소속 윤석일 목사는 침례교 역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소속 교단인 감리교의 과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나바위에서 조응한 천주교와 불교, 일본사찰과 한국사찰의 흥망, 교육 현장에서 유교와 개신교의 조우, 개신교 ㄱ자 예배당과 천주교 칸막이로 상징되는 유교문화, 일본신사의 확장과 개신교의 이분법......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물결 속에서, 정치권력과 종교신념이 교차하며 넘실댔을 옥녀봉을, 금강 낙조를 뒤로 하면서 하산하였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놀뫼신문』 아래 두 기사를 합체한 것입니다. 카톡릭에 집중하기 위해섭니다. 

1) [강경사람과 근대역사문화순례] 성지순례길에서 돌아보는 현대판 신사참배(2017-05-09)

https://nmn.ff.or.kr/17/?idx=514870&bmode=view)  

2) [강경카톨릭성지순례] 강경에 ‘김대건신부 사목성지성당’이 세워지기까지(2019-04-23)

https://nmn.ff.or.kr/17/?idx=1830510&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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