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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Mar 10. 2017

파란병의 비밀, 그 이후

Home is where the heart is

몇년 전에 타웹진에 '슬로우 라이프' 라는 주제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얼결에 첫 글을 쓰고 두번째로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 블루보틀에 대해 썼었다. 파란병의 비밀 - 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나는 오클랜드의 잭런던 스퀘어라고 기차길이 있는 동네에살고 있었다. 부둣가에 있는 물류 창고 지역인데 그 중 몇건물을 로프트등의 트랜디한 주거용 건물로 재건축한 소위 '힙'한 동네였다. 동네 초입엔 여전히 물류창고들이 있었고 이른 아침이면 청과물박스등을 시끄럽게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블루보틀의 헤드쿼터가 있었다.

집에서 정확히 4분 정도를 걸어가면 나지막한 창고 모습의 건물이 보이고 커피콩을 볶는 냄새가 난다.

(사실 커피 볶는 향은 오후에 더 자주 났던것 같다.)
생두를 사다 직접 볶는답시고 부엌 바닥에 껍질 좀 날려본 사람들은 아는데, 팝콘을 살짝 태웠나? 싶은 냄새같은게 멀리서부터 엄청 고소하다.

비오는 날 빼고는 늘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서면 흐트러진 머리에 올풀린 스카프 등을 둘러멘 사람들이 서넛 기다리고 섰다.
여기 손님들은 인종이며 남녀 노소 다양하기가 천차만별인데 모두의 공통점은 다들 지금 막 자다 깬것인지, 출근중인지 분별불가한 차림새라는 것이다.
눌린 뒷머리, 목늘어진 스웨터. 이름모를 나라의 토속품일것 같은 독특한 백이라든지.

그런걸 암케나 막 걸치고 선 사람들의 집합소다. 나 역시 집에서 입는 꽃무늬 실내복 위에 아끼는 트렌치코트를 겹쳐입고 눌린 머리를 남편의 뉴스보이햇으로 감추고 커피를 사러 나서곤 했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지금이 몇월며칠몇시인지 아무도 가늠못할 패션이다.

늘 두명정도의 바리스타가 번갈아가며 나와있는데 나와 남편이 들어가면 활짝 웃으며 우리 커피를 기억해주곤 했다. 아침 인사도 나누고 쓸모없는 농담따위를 건네며 여유롭게 어깨를 둥글게 돌려 공기와 뜨거운 물을 공중에서 섞어낸 한잔의 커피를 내려 내민다.

이렇게 시작하는 아침이 매일 고마웠다.

이 지구에서 젤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정성스레 내려준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아침 산책을 하곤 했었다.

얼마 후 우리는 그 동네에서 이사를 갔다.
그 몇년 사이 블루보틀은 $70 million (한화 800억원가량)의 펀딩을 받았고 스페셜티 커피 컴퍼니 중 이런 돈을 투자받은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라 그 뉴스만으로도 전보다 더한 유명세를 탔다. 베이지역에 가게 수를 늘린것은 물론이며 뉴욕, 로스엔젤레스등 곳곳에 가게수를 늘려갔고 도쿄에도 아오야마, 신쥬쿠, 롯본기등 여러 스토어를 열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커피회사가, 그것도 로컬 중소기업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흐뭇하기도 하고 기쁜일이지만 한편 신맛이 입안에 감도는 것 역시 어쩔수 없다.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던 소중한 동네 맛집이 어느새 전국 체인화가 된 그런 기분. 입안에 생쌀넣고 뽀도독. 하는 기분.


며칠 전 도쿄 출장겸 여행을 갔다가 롯본기에 있는 블루보틀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당장 들어갔는다.

널찍하고 미끈미끈한 분위기에서 콜드브루를 쪼록쪼로록 마시고 있자니 머리가 굵어버린 자식 등판 바라보고 앉은 듯 서운한 마음이 모락모락 안에서 연기를 피웠다.

하지만 괜찮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오클랜드 거기에 있는 "우리의" 블루보틀에 갈것이다. 새로 생긴 블루보틀 카페들에 비하면 으리으리 미끄덩스럼도 없고, 평범하달수도 초라하달수도 있는 좁은 실내에 창문앞에 붙은 바 스툴 세개와 창고 앞에 놓인 테이블 몇개가 전부지만. 울동네 카페인 그곳엔 몇백번의 특별한 아침과 우리의 이야기가 있으니 나에게는 가장 특별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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