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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pr 25. 2016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블랙에디션

모든 것은 어느날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책이란 것이 오롯이 저자와 내가 공감하기 시작할 때,  가슴에서부터  알 수 없는 퍽퍽한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만 색에 노란 글씨로 보통의 존재라고 써있는 이 매력적인 책의 첫장에 쓰여진 짧은 글은 바로 그런 공감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거의 특별할 것이 없어진 나이가, 내게도 섬뜩한 자각으로 느껴졌습니다.  기대감이 없어지고 오히려 허물어지는 나이입니다. 무엇을 해도 기억조차 하기 어려운, 젊었을 때의 그 어렴풋한 열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도무지 부질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변혁을 꿈꾸기 보다는 관망이라는 나이가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한달전쯤  존윌리엄스가 쓴 스토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가슴을 조리는 사건도 없고, 시원한 복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소설이 내 마음을 앗아간 것도 보통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저항할 힘도 없고, 불의를 보고도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겁먹은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밀어내어 보려고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 뿐입니다. 그것은 잔인한 일 이기도 하지만 순응해야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직원 중 하나가 내게 비겁하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일어난 모종의 사건에 어쩔 수 없이 억울한 희생자가 되어버린 직원의 일에 나몰라라 외면했던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괜히 득이 될 것도 없는 일에 휘말리기 싫었고, 내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이라 마음으로 적당히 타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겟습니다만, 그 비겁하다는 말에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꼈습니다. 작정을 해도 보란듯이 사직서를 던지기엔 너무 늙어버려 어울리지 않게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가만있는 것은 비겁하고, 또 초라해지고. 그래서 어쩌면 삶에 대한 시니컬함이 더해지는 이유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는 그런 시니컬함이 곳곳에 배여있습니다. 어쩌란 말인가 그냥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인데. 사랑에도 애뜻한 아림이 없고, 3개월을 넘기지 못할 만큼 고통스럽고, 추억이란 핑게로 하이야트 호텔에 가서 허세에 절은 식사를 하고, 퉁명스럽게 엄마를 대하고 그리 많을 것도 없는 친구와 만나 의미없이 취하기도하고,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기도하고, 어쩌면 단단하게 자신에게 갇혀 살고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일상에 대해 담담하게 쏟아내는 그의 글들에서 보통에 대하여 힘없이 내뱉는 시니컬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부분에서 난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나 역시 그런 존재이구나 하는 자기확인이 있었습니다.  아닌척하기 위해 공들였던 많은 허망한 일들이 나이 들면서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일이되고 오히려 있는데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추기이자 꾸밈이라는 진리를 터득하면서 숨기고 싶었던 컴플렉스로 부터 해방되는 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기대할 것 없는 보통의 존재가 살아가야할 삶의 방식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사랑해야할 순간이 오면 밀어내지 말고 그냥 사랑하고, 그저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시내 대형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에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그저 좋은 일인가 싶기도합니다.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일치감치 백기를 들어버린다면 그 또한 자신에 대한 기만이겠지만,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면 조금은 허무해지지 않을까리고 되묻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내려놓는 일에 다름아닙니다. 


보통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충실하고, 그러다 조금쯤의 기대감을 가지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나가는 것. 이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나이가 이미 되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것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된다 한들 그리 재미없는 삶이 되지도 않을것 같습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운좋게도 브런치를 알게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라 할 수있습니다. 내가 쓰는 넉두리같은 글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또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다만 브런치 작가들의 글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도 잘 쓸 수있을까 하고 부러워지는 것은, 아마도 머리속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감성이 굳어져가고, 생각의 흔적을 쫓아가지 못하는 서투른 글들에 대한 열등감이 문득문득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마저도 내려놓고 싶습니다. 방을 서재로 꾸며 놓았습니다. 아니 서재 비슷하게 흉내냈다고 하는 것이 더 잘어울릴 거같습니다. 이석원작가처럼 서가를 두개정도 사고 거기에 약 200권정도 되는 책을 꼽고 보니 나름 그럴듯하게도 보입니다.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읽고 쓰기에 적당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TV를 보는 시간도 많이 줄어든 것같습니다. 


 얼마전 세상사는 사람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노무현재단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였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와 미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적은 없습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도 이미 나의 분노는 그저 하루를 넘기지 못했고 소극적이고 그래서 들리지 않는 독백같은 외침이 되고 말았지만 전에는 없었던 이러한 작은 시작이 보통의 삶에도 기댈 수있는 희망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을 나라는 보통의 존재가 해야할 행복한 일이 되기를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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